#12. 소박하지만 소담한 일상
어릴 때, 잠과 지각의 횟수가 비례한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은 나에게 ‘아시아 지각 금메달리스트’라고 항상 놀리셨다. 다행스럽게도 ‘올림픽 메달’은 아니었다. 나보다 더 늦은 친구가 있었으니깐. 엄마는 항상 나에게 말씀하셨다. “죽으면 평생 잔다.” 하지만 나는 잠이 좋았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아리아드네>, 1898.
이 그림 속 여인처럼. 영국 빅토리아 여왕대의 고전주의 화가였던 워터하우스의 <아리아드네>인데, 그림 속 여인은 상당히 피곤했는지 발 밑 표범을 놔두고 푹 자고 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멀리 배가 떠나고 있다. 그렇다. 이 여인은 지금 버려진 상태다. 그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으니...
사연을 알고 나면, 이 여인이 더 안쓰럽다. 여인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남자를 따라왔기 때문이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깊게 잠들었나 보다. 여인의 이름은 아리아드네. 크레타 미노아왕의 딸이다. 그녀는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를 도와 미궁에 있는 이복오빠(?)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테세우스와 함께 미노아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잠깐 들린 이 섬에서 잠이 든 것이다. 아마,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잠을 많이 잤던 이유 중 하나는 꿈 때문이었다. 아리아드네처럼 사랑이 넘치는 꿈도 좋지만, 나는 하늘을 나는 꿈이 정말 좋았다. 의도적으로 자기 전에 하늘을 나는 것을 상상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잠을 많이 잤다. 힘든 일이 있으면 더욱더 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면 문제의 해결책이 나오기도 했다. 꿈을 뜻하는 Dream의 어원 중 하나는 원시 게르만어 Draugmas에서 찾는다. 이 단어의 뜻은 ‘송아지가 뛰어다니는 들판’이란다. 배고팠던 그 시절, 먹을 것이 가득한 들판을 바라보는 것이 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씩 먹으면서, 더 이상 꿈속에서 하늘을 날지 못한다. 그리고 악몽이 늘어나고 있다. 낭만주의 화가였던 헨리 푸셀리도 나와 비슷한 꿈을 꿨나 보다. 그가 그린 <악몽>은 ‘밤의 악마’를 상징하는 백마와 원숭이가 여인을 바라보고 있다. 꿈속에서 만나는 악마라니, 생각도 하기 싫다.
존 헨리 푸셀리 <악몽>, 1781.
어릴 때의 꿈은 ‘비상’이었다면, 지금의 꿈은 ‘무서움’이다. 왜 그런 것일까? 서글퍼졌다. 꿈에서 조차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다. 꿈은 현실의 또 다른 뒷면이라고 한다. 지금의 내 꿈이 불행한 것은 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역으로, 꿈을 행복하게 만들어서 현실을 바꿀 순 없을까? 꿈을 뜻하는 또 다른 어원 중 하나는 ‘drum or noise’라고 한다. 즉, 듣기 좋은 드럼 소리와 같은 것이라는 의미다. 내가 꿈꾸는 모습을 상상하며, 머릿속으로 계속 재현해보라는 것이다. 그렇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나는 잠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없어졌다. 그것이 꿈의 차이를 만든 것이다.
다시, 아리아드네로 돌아와 보자. 버림받은 아리아드네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전화위복’의 삶을 살았다. 꿈에서 깨어보니, 인간이 아닌 신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바쿠스였다. 그녀는 바쿠스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죽은 후에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반면,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간 테세우스는 말년이 좋지 못했다. 한 여인의 꿈을 짓밟은 사람의 최후이다.
나의 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꿈을 키우고 있는가, 짓밟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