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은 어려워

#14. 소박하지만 소담한 일상

by 도슨트 춘쌤

13월의 월급이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옛말이다. 나는 매년 연말정산을 할 때마다 세금을 낸다. 내가 그만큼 소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지만 아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각종 세금 절약 방법이 나돈다. 하지만 나는 13월의 월급은커녕, 60~70만 원가량을 더 내야 한다. ‘도대체 받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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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초, <성전세>, 1425.


이런 나에게 위로를 하자면, 세금은 ‘신의 아들’이었던 예수도 피해 가지 못했다. 마사초가 그린 <성전세>를 보면, 세금을 내는 예수의 모습이 보인다.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 ‘신의 아들’은 어부 출신의 제자 베드로를 시켜 낚시로 잡은 물고기 입 안의 돈을 빼서 세금으로 냈다고 한다.

‘신의 아들’도 피해 가지 못했던 세금. 삶에서는 감정으로 세금을 내는 경우가 많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그것은 연말정산처럼 내가 이득을 보기 매우 어려운 구조다. 연말정산을 하면 손해 본다는 기분이 드는 이유는 ‘많이 썼는데, 왜 세금을 더 내지?’라는 불만 때문이다. 신용카드로도 돈을 썼고, 현금으로 썼다. 총량으로 따지면 나는 충분히 돈을 썼다. 그래서 나는 돈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막상 연말정산을 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들을 교묘하게 피해 간 나의 소비습관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나 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썼느냐가 중요한 것이다’라는 인생의 교훈은 덤이다.

이것은 감점의 연말정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분명, 누군가에게 많은 사랑을 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매몰찬 말일 때가 있다. 어떨 때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내가 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받기도 한다. 이 두 가지 사례는 결혼식 때 확인할 수 있다. 분명 올 줄 알았던 지인이 오지 않으면 감정의 연말정산에서 손해 본 것이다. 반면, 기대하지 않았던 지인이 올 때 감사함이 더 크다.

감정의 세금이 중요한 것은 연말정산의 형태로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은 감정의 세금이 늘어나면 감정의 통장이 흔들리게 된다. 내가 연말정산으로 60~70만 원을 더 내야 할 때 그랬다. 다음 달 월급이 깎이면서, 얼마간은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 감정의 연말정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감정의 연말정산을 제대로 환급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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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토 디 본도네, <애도>, 1305.


14세기 초, 조토가 그린 <애도>는 감정의 연말정산을 돌려받는 방법을 제대로 표현한 그림 중 하나이다. 신이 중심이었던 중세시대,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 그림은 없었다. 그림 속 장면은 예수가 죽을 때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때, 천사들의 모습에 주목해보자. 그들은 허리를 꺾고 슬퍼하고 있다. 감정을 극대화로 표현했다. 이 그림을 봤던 중세인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나는 감정 소비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로애락’의 순간에 맞춰 감정을 드러내는 것. 이것이 감정의 연말정산에서 승리하는 법이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계속되는 감정 연말정산의 피해자가 아닌, 나의 감정을 먼저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말정산의 결과에 큰 분노를 고함으로 표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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