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고양이, 로열패밀리가 되다
▶봄꽃처럼 다가온 고양이
‘영혼의 화가’ 반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입니다. 이 그림의 동생 테오가 아들을 낳자 축하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에요. 테오는 반 고흐의 동생이자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습니다. 반 고흐는 살아 생전 단 한 점의 그림만 팔았습니다. 몸도 좋지 않았어요. 수십 개의 질병에 시달렸던 불우한 화가였지요. 그에게 동생은 큰 힘이 되는 동료였죠.
그런 동생이 아들을 낳고, 자신의 이름과 같은 빈센트를 이름으로 줬다는 소식에 반 고흐는 매우 기뻐했어요.
개: 반 고흐는 조카의 탄생을 축하며 그린 그림이 아몬드 꽃이었나요? 다른 여러 축하할 수 있는 그림 주제가들이 있었을 텐데요.
아몬드 꽃은 봄이 되면 가장 피는 꽃이라고 해요. 아몬드 꽃처럼 자신의 조카도 활짝 핀 인생이 되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반 고흐 자기 스스로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고요. 반 고흐는 항상 단란한 가정을 꿈꿨어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여 귀여운 자식을 낳고 싶었던 반 고흐. 하지만 그는 정신병에 걸렸고, 많은 여인들에게 실연당합니다. 점차적으로 희망을 잃어가죠. 그런데 이때 태어난 조카의 존재는 반 고흐에게 있어 큰 희망처럼 보였을 거에요. 자신의 꿈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 만들었을 테니깐요.
냥:반 고흐에게 있어 아몬드 꽃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자신의 열망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림이 다르게 보이네요.
사실, 인간들에게 있어 가족은 큰 의미가 있어요. 행복한 삶에 관한 이야기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가족이죠. 가족이 인간의 삶에 있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개:인간에게 있어 가족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지 몰랐어요. 그런면에서 인간은 신기해요. 자신과 다른 종이라고 할 수 있는 고양이, 개와 함께 살면서 자신을 ‘아빠’, ‘엄마’라고 부르잖아요. 어쩐지 저를 부르면서 쓰다듬는 그 손길이 너무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냥:맞아요. 저도 그 부분이 신기했어요. 저희집 ‘집사’도 자신을 ‘아빠’라고 하더라고요. 모양과 생김새, 종 모든 것이 다름에도 말이에요.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인간의 가족으로 인정받고 있네요. 인간들은 자신과 종이 달라도 ‘가족’으로 인식하면 사랑을 주거든요. 그리고 그러한 인간 중에는 가장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졌던 로얄 패미리들도 있었습니다.
▶아들에게도 그렇게 따뜻했다면 좋았을 텐데….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영조입니다. 조선의 21대 임금입니다. 영조는 조선 후기 문화 르네상스를 이끈 군주로 평가받고 있음을 말씀드렸어요. 조선 시대 어진은 매우 사실성이 높습니다. 실제와 같게 그리기 위해서 화가들이 노력했기 때문이에요. 털 하나 틀리지 않고 섬세하게 그렸어요. 그래서 앞서 말한 변상벽이 고양이를 그리면서 섬세하게 그림을 그리자 영조의 어진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죠.
개:실제 영조의 얼굴이라고 생각해서 보니, 매우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였을 것 같아요. 올라간 눈꼬리를 보니 무서운 왕이었을 거에요.
맞아요. 영조는 상당히 꼼꼼하면서도 성격이 불같았던 왕이에요. 예민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영조는 고양이를 포함한 동물들 앞에서 의외의 모습을 자주 보여줍니다. 영조 13년(1737)에 일어난 일이에요. 영조의 팔이 매우 아파 진료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처방이 매우 엽기적이에요. 고양이 가죽을 팔에 붙이면 영조의 팔이 고쳐진다는 거예요.
냥:그런 말도 안 되는 처방이 어디 있어요? 고양이 가죽이 팔 아픈데 좋다니….
지금 보면 어이없는 처방이지만, 당시에는 매우 진지한 처방이었어요. 나라의 최고 권위자이자 권력자, 왕의 팔이 아프면 조선 최고의 의사들이 치료하였거든요. 그런데 영조는 의외의 답을 합니다. “내가 예전에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궁궐 담당 사이를 왕래하며 보았는데, 그 가죽으로 병을 치료하지 못하겠다.”라고 한 거예요.
냥:영조는 개념이 있는 왕이네요.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왕이 만약에 고양이 가죽을 치료제로 사용한다면, 민간에서도 고양이 가죽 치료제가 유행하게 될 것을 우려했죠. 그렇게 되면 고양이가 멸종될 것이라면서 걱정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치료에 고양이 가죽은 사용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개:왕으로서는 위대한 인물이군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나라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군요. 그런데 영조의 고양이에 관한 마음은 단순히 그런 측면만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어떤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영조가 궁궐에서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조선 궁궐 내 고양이를 사랑하는 분위기가 만연했기 때문일 그것으로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은 영조의 아버지 숙종의 영향이기도 하구요.
냥:숙종이라면, 조선판 사랑과 전쟁의 주인공 아닌가요? 장희빈과 인현왕후 사이에서 갈등했던, 왕. 하지만 잔인하게 왕비들을 폐위시키거나 사약을 준 왕으로 들었어요.
숙종은 매우 카리스마가 있는 왕이에요. 조선 시대에 7명밖에 안 되는 정통성을 가진 왕이죠. 아버지 현종의 외아들로 어머니는 명성왕후에요. 정통성을 가진 적통이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얼마나 고집이 세고 호불호가 분명하겠어요? 그런 그가 변덕을 부리지 않고 사랑했던 존재가 바로 고양이입니다. 그림 속 고양이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의 「황묘농접」입니다. 황묘는 노란 고양이를 의미하죠. 농접은 나비를 놀린다는 의미에요. 즉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가지고 장난친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어요. 이 그림 역시 앞서 말한 것처럼 장수를 기원하는 그림이에요.
▶고양이는 장수의 상징이기도 했다.
냥:그림 속 노란 고양이는 속칭 ‘치즈 태비’라고 부르기도 하죠. 치즈 색깔처럼 노랗다는 거예요. 제 친구 중 치즈 태비가 많아요. 저 친구들은 친화력이 좋아요. 아마 저 그림은 노란 고양이가 나비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그린 걸 겁니다. 그런데 노란 고양이가 숙종과 어떤 연관이 있나요?
숙종이 키운 고양이가 바로 이렇게 생긴 노란 고양이였기 때문이에요. 숙종과 노란 고양이의 만남은 운명적이었어요. 아버지 현종의 무덤으로 능행을 가던 중 만난 고양이가 바로 이 노란 고양이였거든요. 아버지의 영혼이 깃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숙종은 애지중지하며 이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지어주죠. 노란색의 특징을 잘 살려 금손(金孫)이라고 한거예요. 재미있는 것은 이름에 들어간 손(孫)이라는 한자에요. 혈통에 의한 후계를 의미할 때 쓰는 ‘손’자를 고양이 이름에 붙여 준 것이죠. 그만큼 아버지의 무덤에서 만난 금손이는 자신과 형제, 아니면 자식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였다고 볼 수 있어요. 자신의 수라상에 올라온 고기도 직접 먹여 줄 정도로 사랑했죠.
개:카리스마 넘치는 냉혈한의 왕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길냥이(길고양이)를 주워서 이름도 지어주고, 음식까지 같이 나눠 먹을 정도였다니…. 정말 금손이는 로열패밀리였군요.
숙종과 금손이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숙종이 죽자 금손이는 십삼일 간 울며 식음을 전폐합합니다. 그러다 죽게 됩니다. 이를 본 숙종의 아내 인원왕후는 금비를 숙종의 무덤가는 길에 묻어줍니다. 당시의 선비였던 김시민은 이 사건을 시로 남길 정도였죠.
냥:숙종의 고양이 사랑과 금묘의 숙종 사랑이 느껴지네요. 저희 고양이들은 인간들이 아무리 불러도 가지 않아요. 내가 가고 싶을 때만 가죠. 그런데 저 정도면 아마 금비는 숙종을 엄청나게 따라 다녔을 거예요.
역시 잘 아시네요. 숙종이 금묘를 부르면 금묘가 따라왔다고 해요. 심지어 왕만 앉을 수 있는 용상에서 금비가 잠을 자기도 했고요. 숙종은 정치할 때 금비를 쓰다듬으면서 했다고 해요. 그만큼 둘 사이의 관계가 남달랐다는 것이죠. 아마 자신의 친자식이었던 경종보다 더 사랑했을 것 같습니다.
냥:영조가 왜 고양이 가죽을 치료제로 사용하지 않았는지 알겠네요. 아버지가 사랑했던 금묘를 보면서 자랐을 테니, 고양이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났을 거예요. 조선 왕실이 이렇게 고양이를 사랑하고, 가족처럼 대우하는지는 몰랐네요. 어떤 이유가 있나요? 아니면 단순하게 숙종만 고양이를 사랑해서 그런 걸까요?
조선 왕실은 분명 고양이를 사랑했던 것 같아요. 관련된 기록이 상당히 많아요. 조선 초 태종의 아들이었던, 양녕대군은 세자 시절 노란 고양이를 얻으려고 관찰사 출신의 신효창이란 신하를 협박할 정도였죠. 또 연산군과 현종은 궁궐 내 쥐가 많아지자 고양이를 키우고, 잘 관리하도록 명령을 내리기도 했어요. 실제로 잘 지켜지지 않을 경우가 생기면 연산군의 경우 담당 내관을 처벌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궁궐 내에는 많은 고양이가 살았을 거예요. 자연스럽게 고양이는 왕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요. 다음 편지를 한 번 볼까요?
▶진정한 고양이 덕후였던 숙명공주
해석하면, “너는 시집에가 정성을 바친다고 하거니와 어찌 고양이는 품고 있느냐? 행여 감기나 걸렸거든 약이나 하여 먹어라”라고 효종이 자신의 딸 숙명공주에게 혼내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고양이에 푹 빠진 숙명공주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숙명공주는 앞서 살펴본 숙종의 고모예요. 조선 왕실은 이처럼 고양이를 사랑한 진정할 로열 패밀리 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 고양이를 사랑했던 조선 왕실 이야기가 흥미롭네요. 보통 고양이들은 쥐잡이 때문에 많이 키웠잖아요. 그런데 조선왕족들은 고양이의 쥐잡이 역할을 넘어, 고양이를 존재 자체로 사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냥:그뿐 아니에요. 고양이들은 심지어 조선왕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었어요. 저기 보이는 석상이 우리 고양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들었거든요.
조선 왕실에서 고양이를 사랑했던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됩니다. 왕을 구한 동물이 바로 고양이였거든요.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의 7대왕 세조는 상원사라는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갑니다. 그런데 불공을 드리던 중 고양이가 곤룡포를 물고 앞으로 가지 못하게 막는 거예요. 찝찝했던 세조는 상원사를 뒤지게 했고, 불상 뒤에서 세조를 암살하려 했던 자객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고양이 덕분에 세조가 목숨을 건진 것이죠. 고양이에게 목숨을 빚진 세조는 묘전(猫田)을 하사합니다. 고양이에게 땅을 준 겁니다. 묘전에서 나는 곡식으로 길고양이들을 먹일 수 있도록 한 것이에요. 전설에 따르면 공양미의 어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해요. 공양미는 ‘고양미’가 원래 발음이라는 것이죠. 진실 여부를 떠나서 고양이에게 고마워했던 세조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세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명령을 내려 고양이를 죽이지 말도록 합니다. 이것을 기념해 만들어진 석상이 바로 상원사 고양이 석상이지요.
▶고양이는 왕의 목숨도 살린 존재였다.
냥:왕의 목숨까지 구했기 때문에 조선 왕실에서는 고양이가 매우 사랑스러운 존재였을 거에요.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고양이가 어떻게 로얄패밀리가 되었나요?
로얄패밀리하면 영국이 대표적입니다. 영국 로얄패밀리 속 고양이에 대해 알아볼까요? 그림 속 주인공은 영국의 왕 찰스1세입니다. 반다이크의 작품이에요.
▶찰스 1세, 검은 고양이를 믿었지만….
안톤 반 다이크는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의 제자입니다. 루벤스는 그를 가리켜 ‘내 제자 중 최고이다’라고 말할 정도였죠. 그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였어요. 앞서 살펴본 영조의 어진과 같은 역할을 했던 그림이라 보시면 됩니다. 초상화 속 찰스 1세는 어떤 사람이었을 것 같나요?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감이 없고 내성적인 왕이었어요. 거기다 키도 작고 말 더듬이었기 때문에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웠죠. 그런 그가 권력을 잡고, 왕이 되자 점차 독선적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혼자가 되죠. 하지만 그에게 유일한 벗이 있었습니다. 바로 검은 고양이에요. 검은색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어요. 그래서 자신이 키우는 검은 고양이를 애지중지 키웠다고 해요.
개:영조보다 유약해 보여요. 카리스마도 없어 보이고요. 자신감이 없다는 느낌이 드네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찰스 1세는 처형당합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찰스 1세는 자신이 키우던 검은 고양이가 죽자, 얼마 후 내전에서 패배합니다. 그리고 처형을 당했던 것이죠. 로열패밀리로서 운명을 함께 한 왕과 고양이라 할 수 있죠.
냥: 고양이와 운명을 같이 한 왕이라…. 뭔가 소설 같은 이야기예요. 그런데 정말 역사적 사건이라니 흥미롭습니다. 영국에는 정말 고양이를 사랑하는 애묘인들이 많았나 봐요. 제 친구가 러시안 블루예요. 그 친구가 말하길 빅토리아 여왕이 자신의 선조를 사랑해 로열패밀리로 받아들였다고 하더라고요.
▶빅토리아 여왕은 많은 자녀와 동물을 키운 왕이었다.
로코코 시대의 화가 프란츠 빈터할터의 「1846년의 로얄패밀리」라는 그림입니다. 말 그대로 영국 왕실 일원들의 그림이에요. 그림을 보면 5명의 아이들과 여왕, 남편 앨버트 공이 있어요.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로 전성기였습니다. 여왕은 영국의 왕이기도 했지만, 다산과 장수의 왕이기도 했습니다. 무려 64년간(1837~1901) 왕위에 있었으며 4남 5녀를 낳았습니다. 그녀의 자녀들은 모두 유럽 곳곳에 있는 왕실과 결혼했죠.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을 가리켜 ‘유럽의 할머니’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동물을 사랑했습니다. 고양이도 마찬가지였어요. 대표적인 고양이가 러시안 블루입니다. 러시안 블루는 이름대로 러시아 출신(러시아 서북부 아르한겔스크 지역)으로 1860년대 영국으로 전해져, 빅토리아 여왕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러시안 블루는 특유의 청회색의 털과 초록색의 눈을 가지고 있어 우아한 느낌을 줍니다. 고양이 계의 귀족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죠.
냥: 그래서 제 친구가 그렇게 잘난 척을 많이 했던 것이군요. 스스로 귀족의 혈통이라니, 왕실 고양이라니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이유가 있었네요.
개: 빅토리아 여왕은 저희 개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에요. 동물 미끼의 불법화, 과학적 실험을 규제를 목표로 설립한 왕립 동물 학대 방지 협회(RSPCA)를 승인하고 지원했기 때문이죠. 빅토리아 여왕이 고양이와 개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 시대 많은 동물의 권익이 올라갔다고 들었거든요.
공감합니다. 이때 많은 고양이와 개의 그림들이 그려집니다. 찰스 버턴 바버의 「긴장감」이라는 그림입니다. 개, 고양이, 인간이 침대라는 장소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죠.
▶누가 먼저 먹을 것인가?
냥:조선의 숙종~영조시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서 동물을 사랑하면 인간도 번성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림들을 보면서 인간이 고양이를 사랑하고 동반자로 함께 할 때, 진정한 평화가 왔음을 알 수 있었어요.
개: 신에서 인간의 동반자로 내려온 고양이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그 속에서 인간들이 많은 위로를 얻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우리 개와 인간은 어떤 사이였는지 더 알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