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축제의 순간, 그들은 불태워졌다]
▶축제를 즐기는 순간, 누군가에게는 악몽이 시작된다.
네덜란드의 풍속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카니발과 사순절의 싸움」입니다. 카니발은 사육제라고도 하는데요.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기 전까지의 여섯 번의 주일을 의미합니다. 이때, 주일을 제외한 40일간 금식과 경건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사순절 전에 마음껏 노는 카니발을 즐겼던 것이에요. 이 상황을 풍자적으로 그린 그림이라 할 수 있어요.
냥: 금식하기 전에 마음껏 먹고 즐기자는 날이군요. 그림은 카니발과 사순절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나 봐요.
개:사순절 직전의 카니발은 매우 방탕했을 것 같아요. 그림 속에서도 사람들은 술을 먹고 들떠 있는 장면들이 여럿 보여요. 또 표정들이 하나같이 바보 같고요.
바비큐를 들고 술통에 앉은 뚱뚱보는 카니발을 의미합니다. 반면 기다란 빵 주걱을 들고 있는 마른 인간은 사순절을 의미해요. 두 절기의 대립적인 모습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상황 속에서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거든요.
냥:축제를 즐기는 인간들의 떠들썩한 모습이 여기까지 전해지네요.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의 양면성과 어리석을 함께 보여주는 브뤼헐의 메시지도 말이죠.
축제는 인간들의 모든 광기가 모이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카니발 때 가면을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예요. 가면을 쓰면 누가 누군지 모르잖아요. 이 틈을 타서 평소에 할 수 없었던 부도덕하게 여겨졌던 행동들이 드러나는 거죠. 가면이 자신의 정체를 감춰주기 때문에 인간들은 축제 때 평소보다 더 과잉의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그런데 그 축제의 순간에 악마의 하수인으로 불렸던 고양이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요?
냥: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 그림은 조토가 묘사한 주의 세례 성화의 프레스코화입니다. 조토는 중세시대의 미술을 끝낸 인물로 알려져 있어요. 등장인물의 공간감, 감정을 표현했기 때문이죠. 그림 속 세례를 받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예수에게 세례를 주는 이가 바로 요한이에요. 이 요한을 기리는 축제가 요한 축일입니다. 6월 24일 요한 축일 전날 통금시간 없이 인간들은 마음껏 축제를 즐겼습니다.
냥:점점 불길해지기 시작하는군요.
그날은 검은 고양이들에게 있어 반드시 피해야 할 날이었습니다. 아니 모든 고양이가 그랬죠. 이날에 마녀들이 검은 고양이로 변신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닥치는 대로 고양이들을 잡아 모닥불에 산 채로 태웠습니다. 고양이들의 울부짖는 소리는 마녀의 울부짖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즐거워했다고 합니다. 또 불에 타는 고양이는 악마를 상징하며, 불은 성 요한을 상징하는 성스러운 불로 인식했어요. 이 행사를 즐겼던 왕이 있습니다. 바로 루이 14세입니다. 야생트 리고의 「루이 14세의 초상화」를 보면 화려한 복장의 루이 14세가 등장합니다. 그는 프랑스 절대왕권을 구축했고, 베르사유궁전에서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발산했죠. 그런 그가 이 축제에 직접 참여하여 장작에 불을 붙이고, 춤을 추었습니다.
개:절대적인 권위와 권력을 자랑했던 루이 14세가 참여할 만큼 요한 축일은 거대한 축제였고, 고양이 화형식은 유명했다는 것이군요. 고양이들에게는 반드시 피해야 할 날이었겠어요.
이런 고양이 화형식은 사회적 ‘놀이’로까지 받아들여졌던 것이죠.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이런 화형식이 있었어요. 벨기에 이퍼(Iper)라는 도시에서는 도시 가운데 있는 종각 꼭대기에 살아 있는 고양이를 내 던지는 행위가 인기 있는 풍습으로 정착됩니다. 고양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했던 유다의 분신으로 여겼거든요. 그래서 이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많은 고양이가 종각에서 던져졌어요. 고양이를 많이 종각에서 던질수록 도시에 축복이 내려진다고 믿었던 것이죠. 이런 풍습은 19세기 초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덴마크에서도 파스텔라운이라는 축제 때 많은 고양이가 죽었어요. 통에 고양이를 넣고 죽을 때까지 때리는 거죠.
냥:끔찍하네요. 고양이가 대체 인간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런 것인지 이해할 수 없네요.
▶사회적 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세상은 누구에게나 잔혹하다.
억압된 사회일수록, 사회적 약자와 동물에 대한 박해가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양이의 불행은 축제 때에만 있지 않았고, 유럽인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서 계속되었습니다. 악마를 몰아낸다고 고양이 귀를 자르거나 다리를 부러트리기도 했습니다. 심심하면 고양이를 못으로 박아 놓고 박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끝이면 좋았을 텐데요. 재앙을 막기 위해 고양이를 건축물 자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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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양이를 건축물 자재로 사용한다고요? 그렇게 작은 덩치의 고양이를 어떻게 자재로 사용할 수 있죠?
일종의 ‘제물’이었던 셈이죠. 건물 담벼락에 산 채로 매장하는 거예요. 고양이가 쥐를 쫓아주고, 재앙을 막아준다는 의미였어요. 또 ‘고양이 오르간’을 만들어 즐겼습니다. 우리 안에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두고 고양이 꼬리가 밖으로 나오면 꼬리에 불을 붙이거나, 망치로 때리는 거예요. 그러면 고양이들이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지는 거죠. 에스파냐의 왕이자 무적함대의 주인 펠리페 2세는 이러한 놀이를 즐기며 자신의 아버지 카를 5세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죠.
개:카를 5세면 개를 사랑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아닌가요? 그런 황제에게서 이런 아들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길게는 1200년대부터 1700년대까지 근 500년 동안 고양이는 악마의 하수인으로서 ‘마녀’와 함께 박해의 대상이 되었죠. 불태워지고, 꼬리가 잘리거나 불구가 되기도 했죠. 심지어 검은 고양이의 뇌를 먹거나 심장을 가지고 다니면 투명인간이나 행운을 가져온다는 믿음까지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냥:너무 서글퍼요. 신에서 악마의 하수인으로 떨어진 그것까진 이해해요. 그런데 이렇게 대학살을 당해야 했다는 것이요. 그래도 1700년대 들어 고양이 대학살이 끝났군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원인은 인식의 변화에 있습니다. 흑사병이 끝나고, 인간들은 점차 합리적인 가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17세기 중엽부터 고양이에 대한 태도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영국의 저술가 에드워드 톱셀은 고양이가 마녀의 친구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고양이의 쓰임새에 집중하도록 이야기하죠. 다시 쥐잡이로서 고양이의 지위를 올려놓은 거예요. 이후 1727년에는 프랑스의 저술가 프랑수아 오귀스탱 드파라디 드 몽크리프가 『고양이 이야기』라는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고양이의 지위를 회복시켜 준 것이죠. 고양이의 지위가 본격적으로 회복된 것은 부를 쌓으며 권력을 얻어갔던 부르주아 계층 때문이에요. 그들이 바그다드, 키프로스 등에서 고양이들이 비싼 가격에 유입되자 애완동물로 키웠거든요. 그렇게 고양이는 다시 사랑받는 동물이 되었죠.
냥:시대가 바뀌고, 인식이 변화하면서 고양이의 지위가 회복되었군요. 그런 인식변화가 빠르게 왔다면 그 많은 고양이와 억울하게 학살당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에 마녀로 낙인찍혔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거고요.
‘한 나라의 위대성과 그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으로부터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입니다. 그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기까지 유럽은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던 것이죠. 오해와 광기의 순간이 끝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알았고, 다시 고양이를 사랑하기 시작했으니깐요. 마지막으로 이 그림을 보겠습니다. 소피 장장브르 앤더슨의 「깨어남」이라는 그림이에요. 아이의 예쁜 미소와 함께 품 안에 있는 작은 고양이의 모습이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인간들이 무지몽매함에서 깨어났습니다. 비로소 인간들은 고양이를 품 안에 안을 수 있었죠. 그 순간까지 얼마나 많은 고양이가 불에 태워졌을까요. 그림 속 고양이는 따듯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겠지만 이미 죽은 고양이와 여성들의 넋은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오해와 광기가 가져온 지난 과거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