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을 쓴다는 것
1시간.
나에게 주어진 여유시간.
1시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다윤이가 태어나기 전까진
이 1시간이 별것 아닌 시간이라 생각했다.
커피마시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책 읽고 싶을 때 읽는 여유시간.
내가 통제 가능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퇴근 후
1시간은 나에게 있어,
그런 시간이었다.
하지만
다윤이가 태어난 이후로
1시간은 그 의미가 달라졌다.
기저귀 한번,
모유 한번,
등 트림 시키고 나면
내 여유시간은 사라진다.
그리고
찾아오는 잠깐의 시간
속에
난 지쳐 쪽잠을 잔다.
다시
얼마 안가
다윤이가 날 호출한다.
상황의 반복.
1시간의 여유가 절실해졌다.
상황이 바뀌니,
1시간은 매우 큰 시간이었다.
커피 한잔은
내 영혼을 위로하는 음료였고,
암체어에 잠깐 몸을 뉘우던 시간은
내 몸을 위로하는 시간이었으며,
책을 읽던 시간은
내 마음의 배고픔 충족시키던 디저트였다.
막상
1시간의 위대함과
가치를 깨닫고 나니,
인생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하루하루,
한 시간 시간
일 년의 기간이
매번 반복되지만
자신도 모르는 순간
그 의미가 바뀌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이때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나를 위로하고
충전하며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반면
그 시간을 그냥 보낸다면,
흘러가는 물처럼 잡을 수 없다면,
지겨운 일상의 반복처럼 느껴지리라.
요즘 다윤이를 키우면서
역사가 다르게 보인다.
삶이 더 깊게 느껴진다.
역사를 씹는 맛이 달라진다.
시간의 결핍이 주는 대가다.
나에게 지금 다윤이가 자는 이 1시간을
브런치에 쏟는다는 것.
그것은 내 삶의 역사를 풍족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전 여유 있던 시간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던 것은
내일도 모레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없다.
언제 다윤이가 일어날지 모른다.
그 불확실성이 나의 감성을 일깨운다.
그리고
내 안에 쌓여있던 지식들을 조금씩 꺼내
소화하게 만든다.
육아의 장점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래서 신은
인간에게 어린 자식들을 만나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돌아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다윤이 덕분에
1시간의 의미를 깨닫는다.
역사 속 사건과 인물들은
이 시간의 중요성을
알거나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역사에 기록되었다.
시간의 중요성을 알았던 자들은
무엇인가 남기고자 했고,
그 시간을 잡은 기록이 역사가 되었다.
그 얼마나 긴 시간과 사건을
짧은 종이책에 담기고자 했을때,
많은 생략이 발생했을까?
그것을
자신의 시간과 삶을 통해
복원해 본다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전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역사는 그래서 흥미롭다.
내 삶의 육포같은 존재이니깐 말이다.
계속 곰곰이 씹어보자.
그 제한 된 시간 속에
살아갔던 이들의 삶을.
그리고
내 시간에 접목시켜 보자.
다윤이가 준 1시간의 선물은
이런 생각들을 계속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는 역사의 시간에 대해 씹어먹을 수 있는 사유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