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비노의 비너스 #올랭피아
집에만 있는지
벌써, 10일이 되어 간다.
10일 동안
집에 있으면서
좋았던 점은
하나의 사물을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요즘
내가 즐겨 읽는 책은
#예술 #역사*사회 #에세이다.
하나의 사물을
이런 관점에서 다양하게 보면 어떨까 싶어,
의식적으로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생활 속 명화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산이 때문이다.
산이는 우리 집 고양이의 이름이다.
산이는 하루 내내 잠을 자거나,
밥을 달라고 할 때만 기어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어' 나온다는 점이다.
평상시는 대부분 누워있다.
기어 나오기 전까지,
산이의 대부분 누워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요염???
몇 가지 키워드를 뽑아 봤다.
#검은색 #건방진 눈빛 #여유 #도도한 자세
이런 키워드를 뽑아서 산이를 다시 보니,
이 그림이 떠올랐다.
마네, <올랭피아>
그림은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 마네의 문제작
<올랭피아>이다.
올랭피아는 시대의 문제작이자,
마네의 생각이 잘 반영된 그림이다.
이 그림은 패러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티치아노의 <우리비노의 비너스>이다.
티치아노 속 여자는 '비너스'의 자세를 하고 있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학설이 있어 여기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비너스'를 생각했다.
왜냐하면,
비너스의 자세로 포즈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웃기지만,
이 자세 덕분에
이 여자는 비너스로 사람들이 본다.
반면,
마네의 그림 속 여자는
실제 당시 살았던 매춘부를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의 도식을 깬 것이다.
비너스 자세 = 비너스 = 가공된 형태로 봤던 도식이
마네에 의해
비너스 자세 =비너스 = 현실 속 매춘부 = ???
이렇게 된 것이다.
그림의 제목도 그렇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당시 흔했던
매춘부의 이름이었다고 한다.
또,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도발적 자세와
발밑에 있는 '검은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있어,
기존의 인식(재수 없는 존재, 여성의 성기)등을 노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기존의 인식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마네의 <올랭피아>는
내가 산이를 보며 떠 올린 키워드와 유사하다.
산이는 나에게 있어,
<올랭피아>다.
기존의 인식을 깨는 그림처럼,
내가 가진 고양이의 인식을 깬 녀석.
이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듯,
나 또한
산이를 키우면서,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갔다.
산이를 가지고,
<올랭피아>를 떠 올리니,
제법 흥미로웠다.
삶 속에서
이렇게 '발견'하고 '연결'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이 날 설레게 만든다.
육아에 지칠 때도 있지만
잠깐
머리를 들어,
주변을 바라보면
이전과 다른 여러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산이와 <올랭피아>를 통해,
내 삶 자체가
미술관과 유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 때,
조금은 뒤로 물러나 인생을 바라보자.
미술관 속 그림을 보듯.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한 후
마음으로 느끼자.
그러다 보면,
나를 힘들게 했던 순간과 감정들이
어느 순간
내 인생이란 미술관의
'명화'가 되어 있지 않을까??
산이가 갑자기 고마워졌다.
사료 한 번 더 주고
쓰담 쓰담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