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면,
매미의 울음소리가 우렁차다.
이 울음을 위해
매미는 7년의 시간을
땅에서 보내야 했다.
창밖을 보다,
매미가 매달려 있을 듯한
작은 소나무가 보였다.
소나무를 바라보니,
이 그림이 생각났다.
매미처럼,
유배생활을 해야 했던 인물이 그린 그림.
추사 혹은 완당 김정희.
뛰어난 인재와 능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배생활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의 삶은
이 세한도 하나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 유배생활,
제자 이상적의 관심과 보살핌에
고마워 이 그림을 그렸다.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네. 그대가 나를 대함이 귀양 오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으니 그대는 공자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세한도>
강직과 절개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통해
이상적의 성품을 드러내고,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보여주는 명작이다.
김정희는
이 세한도를 통해
매미로 보내는 유배생활 속에서
후손이 널리 알 수 있는
유산을 남겼다.
그림은 매우 거칠고
소략하며,
추상과 구상이 결합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김정희의 내공이란 생각이 든다.
가장 힘들 때,
그린 그림.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린 그림.
이 그림을 보면서
김정희가 궁금해졌다.
김정희에 대한 박규수의 평이 흥미로워
실어본다.
추사의 글씨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서법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어릴적에는 오직 동기창체에 뜻을 두었고, 젊어서 연경을 다녀온 후에는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옹방강을 쫓아 노닐면서 열심히 그의 글씨를 본받았다. 그래서 이 무렵 추사의 글씨는 너무 기름지고 획이 두껍고 골기가 적었다는 흠이 있었다. (중략) 만년에 제주도 귀양살이로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은부터는 마침내 남에게 구속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법을 이루었으니...
<박규수>
박규수가 추사의 평을
한 부분에서 주목할 점은
제주도에서 '일법'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즉,
추사 나름대로의
'자기만의 글씨'를 얻었다는 것이다.
왜
제주도였을까?
그것은
제주도 때문이 아니라,
유배가 준 역설이다.
유배 덕분에
추사는 자신의 세계를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글씨에 쏟을 수 있었다.
제 글씨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저는 일흔 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천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습니다.
<김정희>
추사의 글씨와 그림의 비밀은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의 병행에 있었다.
이점을 잊고,
추사의 작품만 보고 평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알고
<세한도>를 보면, 이전과 다른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거친듯하지만
세상과 인간관계의 본질을 그린 <세한도>는
김정희가 매미처럼
오랜 기간 땅속에 갇혀
울 날만을 기다리며,
숙고의 시간을 가졌음을 보여준다.
상 : 유배 전 / 하 : 유배 중
무량수각이란
편액 글씨를 김정희는
유배 전과 중에 썼다.
유배 전에 썼던 글씨는
대둔사,
유배 중의 글씨는
화암사의 현판이다.
대둔흥사 무량수전
글씨는
상당히 기름지다.
기름진 만큼,
허세와 오만이 가득한 시절이었다.
그는 원래 있었던
이광사의 글씨를 폄하하고,
자신의 글씨를 편액으로 쓰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유배가 끝난 후
김정희는 대둔사에 이광사의 글씨를
다시 걸라고 이야기한다.(라는 전설도 있다)
유배라는 시간이
김정희의 내면을 더 깊게 만든 것이다.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이후에도
유배 생활을 또 했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봉은사 판전
봉은사의 판전이란 글씨를
쓴다.
모든 것을 초월한
본질적인 경지에 도달한 김정희의 글씨.
무심한 듯
썼지만
그의 험난했던 삶이 담긴 글씨다.
김정희는
매미와 같은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매미처럼 7년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했고,
매미가 나무에 올라 울며 후손을 남기듯,
자신의 작품을 계속해서
개선해나가며 명작을 후손들에게 남겼다.
매미가 매달린
소나무에서
<세한도>가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