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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슨트 춘쌤 Jan 12. 2022

<일상 속 명화 6 : 녹턴>


난시.

내 눈의 숙명이다.


안경을 벗으면,

세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때론,

세상이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 비틀 거리는 것 같다.


안경을 벗으면

불안했다.

세상이 항상 흔들려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안을 붙잡고자,

나는 안경을 쓰고

산책을 나갔다.


하지만

마스크를 계속 끼다 보면,

안개가 안경을 점령군처럼 차지할 때가 있다.


오늘의

내 안경이 그렇다.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그래서

안경을 벗었다.


차라리 벗고

러닝을 하자!


안경을 벗고 러닝을 하다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내 눈의

초점이 흐려지면서,

불빛들이 번져갔기 때문이다.


안경을 낄 때는 몰랐던

또 따른 세상이다.

안경으로 바라봤던 세상과 전혀 다른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빛들이 번지면서

내 눈의 망막을 자극했다.


흡사,

휘슬러의 그림처럼 말이다.


녹턴.

검정과 금빛의 녹턴.

떨어지는 불꽃을 형상화한 이 그림은

많은 평론가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당대 유명한 평론가였던

러스킨은 이것은 그림이 아니라 물감을 뿌린 쓰레기며,

돈을 받고 전시하는 것은 사기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화가 난

휘슬러는 그를 고소했고,

결국 휘슬러는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파산하고 말았다.


휘슬러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그림이 그 어떤 불꽃놀이 그림보다

좋다.


희미한 경계와

번진 물감의 만남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항상 실수와

고민 속에서 방황하는 나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눈이 아닌, 마음을 보는 그림이란 생각이다.


오늘 그 마음으로만 바라봤던 이 그림이

내 눈에 보였다.


더 잘 보기 위해 쓰는 안경을 벗어야만

볼 수 있는

세상을 그대로 그려낸 것 같았다.


만약 러스킨을 만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내 눈으로 본 것과 너무 똑같은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분명 구상적인 그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물감을 뿌린

쓰레기일지 모르지만,

도리어

자신의 쓴 안경을 벗고

오롯이 바라보면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훌륭한

그림으로 바뀐다.


가끔,

내가 옳다고 믿는 안경을 벗어보자.

도리어

그 안경에 낀 것들이

현실을 호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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