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백수가 되니 찾아오는 것들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 사표만큼 확실한 처방전은 없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이었는데도 막상 닥치니 당황한 순간이 여러 번이다. 단련한다고 단련될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란 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마음이 기꺼이 증명해주고 있다.
# 가로 8cm 세로 4cm 그것
회사를 관두고 사회적인 '소속'이 없어지고 난 직후의 일이다. 일했던 동종 업계에 몸담은 한 관계자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중간에서 소개해준 분의 안내를 받고 첫인사를 나눴다. 그다음 마땅히 그분에게 건네야 할 가로 8cm 세로 4cm 직사각형 종이가 내 손엔 없었다.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순간 닥친 당혹스러움이다.
한글, 영문, 한자까지 3가지 버전으로 내 이름을 써넣은 그 직사각형 종이로 말할 것 같으면 휴대전화 번호부터 이메일 및 회사 주소는 물론 회사 내 부서와 직책에 이르는 정보를 놀랄 만큼 간단명료하게 정리해주던 '명함'이었다. 회사 다닐 땐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명함을 그대로 둔 채 깜빡 잊고 다닐 때도 많았다. 누군가와 첫인사를 나누거나 나를 소개해야 할 때 미처 챙기지 못해 '앗! 명함이 떨어졌네요'를 연발하던 일도 잦았다. 사실 큰 문제도 아니었다. 그럴 땐 상대방의 명함을 정중하게 먼저 받고선 '제 연락처는 문자로 남겨드리겠다'라고 인사하면 됐다. 이번 만남도 다르지 않았을 텐데, 이상하게 '연락처를 남기겠다'는 말의 무게는 예전과 달랐다.
남보다 빨리 명함이 생겼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호기심 넘치는 신입생 때 친구들은 취향을 찾아 배움을 찾아 이런저런 동아리에 들어갔지만 나는 굳이 대학 학보사를 택했다. 몇 달 간의 수습 기간이 지나자 떡하니 명함이 나왔다. 20살에 처음 생긴 명함, 회사를 관두기까지 장장 20년간 언제나 손 닿을 곳에 놓여있던 명함은 나를 설명하거나 증명해주는 존재였다. 딱딱한 서체로 정보만 가득 적힌 작은 직사각형 종이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그때를 살아가는 '내가' 있었다.
자발적 백수생활을 이어가는 지금, 솔직히 명함이 필요한 일은 거의 없다. 아주 가끔 과거의 일과 연관되거나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들과 관련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기지만 명함이 없다고 딱히 불편하지 않다. 피차 사표를 내고 백수인 나에게 명함을 예상하는 이들도 없으니까.
대체 명함 없는 게 뭐 대수냐고 물을 수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요즘은 명함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일이 오히려 촌스럽게 여겨지는 세상이니까. SNS로 나를 보이는 일이 훨씬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소개라는 데도 전적으로,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명함이 없는 지금의 생활은 오랫동안 체득한 익숙함으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인 것 같다.
# 연기처럼 흩어진 빨간 숫자 '단톡 해방 만세'
4년 전쯤인가. 회사 동료들과의 단톡방, 회사 노조 단톡방, 친구들과의 단톡방, 업계 관계자들과의 단톡방까지, 온갖 단톡방이 한 번에 시끄럽게 울린 때가 있었다.
당시 모 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일명 '퇴근 이후 카톡 금지법'을 공동 발의하자 여기저기서 터진 반가운 울림이었다. 몇몇 국회의원은 단체 카톡을 통한 업무 지시로 사실상 24시간 동안 업무 체제가 이뤄지는 고질적인 근로 과다 문제를 개선하겠다면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드디어! 우리도! 업무 단톡에서 해방된다는 환호가 동시다발 단톡 울림을 만들어낸 것이다.
딱, 거기까지였다.
퇴근 이후 카톡 금지법이 실행된다고 해도 과연 현장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아마추어들은 적어도 내 주변엔 없었다. 특히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다뤄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던 나와 내 동료들은 '신박한 발의'라고 반기면서도 이내 '우리에겐 해당사항 없다'는 사실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곧바로 인정했다.
사표를 내고 나니, 가장 먼저 없어진 건 단톡방이다. 줄잡아 10여 개이던 단체 대화방이 사라진 세상은 그야말로 '단톡 해방 만세'였다. 단톡방도 여러 개인데, 단체톡을 리드하는 사람의 취향이 간혹 카카오톡이 아닌 라인일 경우도 있었다. 맙소사! 그렇게 개설된 라인 단체 대화방도 서너 개나 됐다. 중요하지 않은 단톡방은 무음처리를 해 놓는다 해도 순식간에 늘어나는, 읽지 않은 메시지를 알리는 빨간 숫자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넘어 공포 그 자체였다. 애플 워치를 굳이 장만한 이유도 휴대폰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단톡 확인 때문이었다.
사표를 낸 순간 거짓말처럼 그 수많은 단톡이 한 번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가기' 버튼만 누르면 될 일이었다. 더는 읽지 않은 메시지의 빨간 숫자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됐다. 애플 워치의 기능이 단톡 확인 말고 다양하다는 것도 차차 깨닫는 새 날들이 열렸다.
사실 업무와 관련한 단톡의 다른 이름은 '긴장'이다.
회사 단톡이 울릴 때면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 일 때가 잦았다. 부서장이 단톡방에다 한 바탕 '잡도리'를 벌일 때도 많았다. 내 월급엔 단톡방을 열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의 값도 더해진 게 분명했다.
업무 관련 단톡으로부터 해방된 지금, 고백하자면 간혹 이유 없는 허전함이 밀려올 때도 있다.
출근 전부터 울려대는 단톡이 없는 아침, 새로운 업무 지시와 업무 확인을 요청하는 단톡이 없는 오전과 오후, 일이 터졌을 때 확인을 요구하거나 챙겨야 할 정보를 공유하는 단톡이 없는 저녁의 시간이 너무나 고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사 단톡방이 없어진 지금의 생활은 오랫동안 체득한 또 다른 익숙함으로부터 또다시 멀어지는 과정인 것 같다.
그 멀어짐이 어디로 나를 이끌지 모르겠다. 일단 마음을 맡겨 볼 뿐. 백수가 되니 찾아오는 건 예전엔 미처 몰랐던 익숙함의 빈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