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이야기
며칠 전 시인 나태주 님의 강연을 듣는 기회가 우연히 생겼다. 적어도 30분 정도의 시간이 예정돼 있었는데도 나태주 시인의 손에는 그 흔한 종이 한 장 들려있지 않았다. 준비된 원고가 없다는 뜻이다. 강연을 하러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시인은 '뭐든 연습을 많이 하면 오히려 못하게 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강연일지언정 자신은 평소 생각해온 바를 꾸미지 않고 얘기하겠노라는 선언이었다.
그렇게 무대에 오른 76세의 시인은 막힘없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워낙 말솜씨가 출중하기도 했고, 유머러스한 성향까지 더해지니 그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이야기는 꽤 흥미진진했다. 30분 정도로 예상됐던 강연 시간은 이미 1시간째에 가까워오고 있었다. 준비한 원고가 없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로 인해 시간이 지연된 터였다. 누군가 말리지 않았다면 두어 시간은 거뜬히 말할 수 있을 것처럼 에너지가 넘쳤다. 함의와 함축으로 상징되는 시를 쓰는 시인이 알고 보니 달변가라는 사실이 꽤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알려졌다시피 나태주 시인은 초등학교 교사로 40여 년간 재직하다 정년퇴직한 분이다. 물론 시를 쓰기 시작한 건 교사가 되기 훨씬 전인 10대 소년 시절부터라고 했다. 시간을 계산해보면 족히 60년간 무언가를 떠올리고, 그걸 다듬고 다듬어 시로 써왔다는 뜻이다. 본인의 직업을 갖기 전부터 시작한 시를 쓰는 일이 정년퇴직을 할 정도의 기간 내내 유지됨은 물론 퇴직 이후로도 이어져 멈추지 않는 세계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었다.
시인은 말했다.
"무언가 쓰지 않으면 가슴속에 있는 풍선이 점점 부풀어 오른다"라고.
"풍선이 너무 많이 부풀어 올라 터지려고 할 때도 있다"라고.
"그 풍선이 터지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써야 한다"라고.
"뭐가 됐든 써야 그 풍선은 작아진다"라고 말이다.
누구나의 가슴에는 풍선이 있다.
실은 가끔 생각주머니가 머리가 아닌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 주머니가 시시 때때로 커질 대로 커지는데,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갈팡질팡한 시간도 많았다. 원인을 몰랐던 그 증상은, 시인의 표현의 빌리자면 가슴속 풍선에 바람이 가득 차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상태임에 분명했다.
시인의 처방은 '일단 한 글자라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글로 풀지 않으면 가슴속 풍선은 어느 순간 분명 터지고 만다고도 했다.
쓴다는 것은... 오래 들여다본 것에 대한 결과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말처럼 한 글자라도 쓰고 싶지만 뭘 써야 할지 모를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럴 땐 대체 무엇이 내 가슴의 풍선을 부풀게 하는지, 왜 그 바람은 빠지지도 않고 점차 더 차오르는지 알아야 한다. 그건... 나를, 혹은 나를 둘러싼 주변을, 오랫동안 진심으로 지켜봐야 가능한 일이다.
비단 쓰는 행위뿐일까.
회사라는 공간에 오랫동안 몸담다 보면 맡은 일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모두가 속한 조직에 관해, 여러 생각이 켜켜이 쌓인다. 무심코 넘긴 순간마저 지나고 보면 내 안에 겹겹이 쌓여있다. 그런 경험의 축적이나 오랜 생각이 낳은 부산물을 흔한 말로 '스트레스'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사실 그건 가슴속 풍선이 부풀어 오르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내가 사표를 내기로 결심하는 과정 역시 풍선이 터질 것 같다는 위기경보가 울릴 때였다. 곧 터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사표라는 긴급처방을 내렸지만, 만약 그걸 모르는 척하고 더 시간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가슴속 풍선은 터져버렸을까. 아니면 풍선을 다스리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냈을까.
아쉽게도, 가슴속 풍선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자유인이 됐다는 기분에 취해 몇 달간 그야말로 그 순간을 만끽하며 지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몸에 밴 습관은 고작 몇 달의 시간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를 관두고 더는 출근할 곳이 없어지고 업무를 이루면서 맛보는 성취감도 느낄 수 없게 됐을 때, 잔인하게도 풍선이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그 풍선이 사실은 가슴 깊은 곳에 정체를 감추고 잠깐 동안 숨죽이고 있던 모양이다.
어느 날은 '이젠 자유롭게 살겠노라' 자신만만하다가도, 또 어느 날에는 '뒤쳐지는 것 아닌가' 싶은 공허함이 밀려왔다. 그런 상태를 표현할 단어를 아무리 찾아봐도 '일희일비'라는 말 외엔 떠오르지 않았다. 딱, 그 단어처럼 하루는 좋았다가 하루는 비극적인 나날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알고 보면 미숙한. 한낱 미생일 뿐인 사람. 그게 나였다.
무언가를 써야 한다고 결심한 건 일희일비가 반복되다가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싹을 틔울 무렵이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브런치를 택했다. 마땅히 이곳이야 한다고 여겼고,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쓰면서 다시금 깨닫고 있다. 가슴속 풍선이 이제야 작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부풀어 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태주 시인의 말은 옳다. 가슴속의 풍선이 터지려고 할 때 그럴 때에는 써야 한다. 쓰지 않고서는 그 풍선은 터지고 말 테니까.
시인은 또 말했다. 오래 보아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시인의 시 '풀꽃'도 그렇게 탄생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인은 초등학교 교사 시절 미술 수업을 할 때면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래 봐야 한다'라고. '오래 보아야 예쁘다'라고. '풀꽃' 시는 아이들과 보낸 오랜 시간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오래 보고, 오래 생각하고, 오래 느꼈다면, 이제는 쓸 때이다.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쓰는 일이 최적의 처방임을 요즘 몸소 체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