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희 변호사 _ 법무법인 디라이트
최근 들어 “몰타에서 ICO(암호화폐공개)를 하겠다”는 문의가 많아졌다. 지난 3월 세계 최대의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Binance)가 본사를 몰타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후 몰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기 때문인 듯하다. 지난 달에는 홍콩 기반의 가상화폐 거래소 오케이이엑스(OKEx)도 몰타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몰타는 이탈리아 바로 아래에 있는 섬나라로 인구는 40만명이 조금 넘는다. 면적은 제주도의 6분의 1 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다. 영연방 국가로 EU에 속해 있다. 관광이 주된 산업이었던 몰타가 블록체인 산업의 허브로 떠오르는 것은 암호화폐나 ICO에 대한 정부의 우호적 정책과 상대적으로 낮은 세금 때문이다.
몰타의 금융규제기관인 몰타금융서비스기구(MFSA·Molta Financial Services Authority)는 “암호화폐를 규제가 필요한 투자수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몰타에서 ICO는 토큰이 투자수단에 해당 되지 않는다면 별도의 인허가가 없이 진행이 가능하다. 물론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암호화폐 친화정책과 은행의 실무에는 차이가 있어 은행계좌 개설이나 이용에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http://www.etnews.com/20180424000314
최근 몰타 정부는 암호화폐와 ICO에 대한 정책을 담은 3가지 법안을 발의했다. 몰타디지털혁신기구 법안(Malta Digital Innovation Authority Bill)과 가상금융자산 법안(Virtual Financial Assets Bill), 기술협정·서비스 법안(Technology Arrangements and Services Bill) 등이다. 며칠 전 법안이 의회로 이송됐고, 심의를 거쳐 늦어도 올해 상반기 내로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법률시행에 필요한 구체적 절차와 서류 등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고려해도 올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본다.
발의된 법안은 ICO를 통해 발행되는 토큰의 성격에 따라 ICO 절차를 달리하도록 했다.
우선 분산원장(DLT) 내 토큰이 해당 분산원장 플랫폼 밖에서는 재화로서의 효용가치가 없고 다른 재화로 교환 할 수 없으면 비증권형 토큰(Utility token)으로 분류했다. 이런 경우 일정한 요건에 따라 백서를 제출하고 승인을 받으면 ICO를 할 수 있다. 비증권형 토큰도 일정한 기술적 요건과 거래에 필요한 라이선스를 취득하도록 했다.
반면, 분산원장 플랫폼 밖에서도 재화로서 가치가 있거나 다른 재화로 교환 할 수 있으면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으로 분류했다. 이런 경우 EU의 금융상품투자지침(MiFID·Markets in Financial Instruments Directive) 규제를 받게 된다. 따라서 증권형 토큰의 ICO를 위해선 MiFID 요건에 부합하는 사업계획서를 MFSA에 제출하고 인증을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상대적으로 비증권형 토큰보다 엄격한 절차를 요구한 것이다.
몰타에서의 ICO는 앞으로 더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
먼저 법인설립 요건이 까다롭지 않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최소자본금이 있지만 큰 부담이 안 되는 수준이다. 또 현지 이사 선임 의무도 없다. 설립에 소요되는 기간도 길지 않고, 법인설립 또는 ICO 비용 면에서도 싱가포르와 비슷하다. 스위스나 홍콩 등과 비교하면 저렴하다.
여기다 바이낸스가 몰타로 이전하면서 은행과의 거래를 확약 받았고, 향후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는 경우 은행거래도 좀 더 쉬워질 전망이다. 주요 거래소들이 몰타로 이전하는 경우 ICO 이후의 환전절차도 좀 더 간편해질 듯하다. 여기다 외국인 투자법인에 대한 세제혜택도 관심을 둘 만하다.
몰타 등 암호화폐 친화적 국가들이 속속 암호화폐나 ICO에 대한 정책과 가이드라인을 정비하고 나섰다. 절차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잇따르고 있다. 몰타도 ICO 친화적 방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법률을 만들고 있어 추후 더 많은 기업들이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법률에 따른 구체적 절차가 확정된 것은 아닌 만큼 ICO를 결정하기 전에 입법 동향을 잘 살펴볼 필요는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정부는 암호화폐나 ICO에 대한 정책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방선거 이후 엄격한 규제를 내놓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부터 “차차 연착륙해서 ICO를 허용할 것”이라는 기대까지 종잡기 힘든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불투명한 상황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미래를 찾아 글로벌 마켓으로,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에서 기다리지 않고 스위스, 싱가포르, 몰타 등으로 나아가고 있다. 영어로, 외국 정부의 규제를 봐 가며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사업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정부의 전향적 태도변화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러니 하지만, 국내의 불투명한 규제가 한국의 블록체인이나 핀테크 분야에서 뛰고 있는 기업들의 체질을 개선하는데 입에 쓴 좋은 약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또 한국 정부가 해외 여러 국가들의 정책이나 가이드라인을 잘 참고해 발전적인 정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국의 블록체인 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로 나가는 미래를 꿈꿔본다. 누가 알겠는가? 블록체인 분야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1등 기업이 한국에서 나올지.
(서울경제 2018. 5. 07)
기사링크 : http://www.sedaily.com/NewsView/1RZFVIU4AV/GA01
D'Light 칼럼링크 : http://www.dlightlaw.com/whc-column-18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