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희 변호사 _ 법무법인 디라이트
에스토니아는 암호화폐발행(ICO)에 친화적인 국가 중 하나로 인기가 많다. 외국인도 에스토니아 전자시민권(E-Residency)을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고, 전자시민권만 획득하면 법인을 설립해 ICO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스토니아는 애초부터 외국인도 쉽게 법인을 만들 수 있다. 굳이 전자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아도 된다. 직접 현지를 방문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법인 설립이 가능하다. 또 다른 ICO 친화적인 국가와 비교해도 법인 설립 절차가 간단하고 비용도 저렴하다. 그러다 보니 에스토니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법인을 만들고 ICO를 하겠다고 나서는 업체들을 종종 만난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싱가포르와 함께 가장 선호하는 ICO 국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에스토니아가 정말 ICO 친화적인 국가일까?
에스토니아 로펌들과 일하다 보면 그런 인식을 경계하는 변호사들을 종종 만난다. 에스토니아도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ICO를 직접 규율하는 법령은 없다. 기존 법률을 적용하고 순수한 유틸리티 토큰만 발행이 간편하다. 그 외 토큰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 현지 변호사는 “많은 토큰 발행업체들이 에스토니아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에스토니아가 무조건 ICO 친화적인 국가라고 오해한다”고 푸념했다.
에스토니아는 장벽이 낮다. 여러 면에서 적은 규모의 예산을 가진 업체들이 ICO를 진행하기에 적합하다. 법인 설립에 현지인 이사를 요구하지도 않고 주주에 대한 신원확인절차(KYC)도 복잡하지 않다. 다른 국가에 비해 변호사 비용도 낮다. 여기다 선진국처럼 규제도 복잡하지 않아 검토나 분석도 간편한 편이다.
그럼에도 에스토니아에서 ICO를 진행하기 전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토큰의 성격이다. 에스토니아 증권시장법(Securities Market Act)은 증권의 범위를 딱 정해놓지 않았지만, 종종 미국의 증권감독위원회(SEC)가 적용하는 호위테스트(Howey Test)를 원용해 증권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 경우 상대적으로 증권의 범위가 넓게 해석된다. 특히 증권 중 하나로 ‘머니마켓(money market instrument)’을 규정하고 있는데, 보통은 자금시장에서 거래되는 채무증권을 의미하지만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거래될 수 있는 토큰도 이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런 해석들을 모두 적용하면 순수한 유틸리티 토큰이 아니면 증권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에스토니아에서 ICO를 하려면 발행하고자 하는 토큰이 순수 유틸리티형인지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또 에스토니아는 EU에 속해 있어 EU 내의 금융규제가 그대로 적용된다. 최근 EU 내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금융규제가 강화되면서 에스토니아 은행도 암호화폐를 취급하는 업체들의 은행계좌 개설이나 이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시작했다. 예전과 달리 사업내용에 대한 심사도 까다로워졌고 현지에 직접 가서 개인인증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점점 ICO 하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ICO 상담을 하다 보면 부정확한 정보로 ICO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업체들이 생각보다 많다. ICO 한번 해 봤다고 불현듯 ICO 전문가가 돼 자신의 경험을 정확한 정보라며 얘기하곤 한다. 그러나 현지 로펌에 따라, 사업내용에 따라, ICO를 진행한 시점에 따라, 같은 국가라도 차이가 크다. 특히 시시각각 규제상황이 변하고 있고, ICO에 친화적으로 알려진 국가들이 오히려 무분별한 ICO를 제한하기 위해 규제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한다면 ICO 전에 반드시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해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그럼 이제 결론을 맺어 보자.
에스토니아가 저렴하고 신속하게 ICO를 진행할 수 있는 국가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규제 없이 토큰 발행을 할 수 있는 토큰의 범위는 상대적으로 엄격하다. EU의 금융규제에 따라 은행 거래도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또 에스토니아는 발트해를 사이에 두고 핀란드 아래에 있어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경제 2018.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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