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원희 변호사 _ 법무법인 디라이트
요즘 ICO(초기 코인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국가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을 꼽는다면 단연 싱가포르다. ICO 규모도 미국과 스위스에 이어 세 번째로 커졌다.
한국 기업들 역시 싱가포르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선진적 금융시스템과 그에 따른 신뢰감이다. 그리고 안정된 정치와 영어로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80502000500
최근에는 지리적 접근성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각국 정부가 ICO와 연결된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계좌를 개설할 때나 ICO를 진행한 후에도 현지에 직접 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럴 경우, 싱가포르가 스위스나 에스토니아·지브롤터 등에 비해 왔다갔다 하기가 수월하다.
싱가포르 ICO 시장은 성장세다. 아직 ICO를 직접 규율하는 법은 없다. 가이드 라인만 있다. 스위스와 비슷하게 큰 틀의 ICO 가이드 라인을 기본으로 하고, 실질적인 것은 현행 법령을 따르면 된다. 가이드 라인은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중앙은행이 발표했는데, 최근 ICO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개정작업을 시작했다.
싱가포르에서 ICO를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발행하려는 토큰(또는 코인)의 구조와 성격이다. 만약 토큰이 자본시장상품에 해당 되면 증권선물법(SFA)의 적용을 받게 된다.
싱가포르도 결국 토큰이 증권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대표적인 자본시장상품은 증권(securities)이다. 토큰을 증권이라고 보는 경우는 토큰에 회사의 지분이 포함돼 있거나 토큰 보유자가 회사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다. 또 토큰 발행업체가 토큰 보유자로부터 돈을 빌리고 사채를 발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거나, 토큰이 집합투자상품에 관한 이익이나 지분인 경우도 증권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물론 전체 모집 금액이 500만 싱가포르 달러 이하거나 50명 이하면 예외지만, 대부분의 ICO는 이 기준을 넘어서기 때문에 예외 적용을 못 받는다고 봐야 한다.
발행되는 토큰이 ‘증권’에 해당 되면 그때부터는 절차가 복잡해 진다. 증권 공모를 위한 절차를 따라야 하고 동시에 증권 업무에 필요한 면허도 받아야 한다. 결국 ICO를 하는 실익이 없어지기 때문에 토큰은 반드시 증권이 아닌 비증권으로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ICO를 진행할 주체도 잘 결정해야 한다.
일부 기업은 싱가포르에서 비영리 재단법인을 만들어 ICO를 진행하려고 한다. 그러나 블록체인 메인넷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면 지난 칼럼에서 설명한 것처럼 재단을 추천하지 않는다. 설립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회사는 보통 만드는데 하루 이틀이면 된다. 다만 설립을 위해 필요한 서류 준비와 공증 등의 시간까지 고려하면 넉넉하게 2주면 일정에 무리가 없다.
싱가포르는 최소자본금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단돈 몇 달러로 회사 설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싱가포르 현지인 또는 워킹 비자가 있는 외국인을 반드시 한 명 이상 이사에 포함 시켜야 한다. 또 KYC(Know Your Customer·개인인증) 절차가 까다로워 개인이 직접 설립할 경우 신원조회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토큰을 현금으로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토큰을 암호화폐(가상화폐)가 아닌 현금으로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싱가포르 지급시스템감독법(Payment System Oversight Act·PSOA)상의 ‘가치저장수단’(stored value facility·SVF)이 해당돼 자금세탁방지와 테러리즘 자금조달 방지를 위한 복잡한 확인과 신고절차가 적용된다. 또 토큰 발행업체가 ‘지급시스템’(payment system)을 운영하는 것으로 판단하면 싱가포르 금융기구(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MAS)가 다양한 정보와 자료제출을 요구한다.
싱가포르 ICO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싱가포르 은행계좌 개설이 쉽지 않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많은 은행들이 자금 출처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ICO 관련 기업의 은행계좌를 만들어주지 않고 있다. 은행계좌를 못 만들 경우 ICO 준비를 위한 사업을 모두 암호화폐만으로 하든지 아니면 한국 법인이 싱가포르 법인과 계약을 맺고 위임을 받아 우회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계약구조가 복잡하고 세무·회계 처리도 어려워진다. 결국 백서를 충실히 준비하고 은행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 후 신뢰를 바탕으로 은행계좌를 개설하고 금융거래를 진행하는 것이 정답이다.
지금 ICO를 하겠다고 전 세계 기업들이 싱가포르로 몰려들고 있다. 신뢰할 수 있고 전문성 있는 현지 파트너 로펌이나 컨설팅 업체를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다들 ICO 전문 핀테크 경험이 있다고 홍보하지만, 실제 ICO를 진행한 실적이나 담당자의 경력을 잘 살핀 후 믿을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ICO의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다.
또 일부 기업들은 싱가포르에 회사를 만든 다음에는 별다른 절차나 비용이 없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회사 설립 후에도 싱가포르 회사법에서 요구되는 절차가 많은 만큼 이를 잘 파악하고 따라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스위스보다 비용이 적고 절차도 많이 복잡하지 않고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들에게 최적의 장소다. 그러나 체계적 금융 및 회사법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에 ICO 이후에도 따라야 할 다양한 절차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ICO는 블록체인 사업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서울경제 2018.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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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ight 칼럼링크 : http://www.dlightlaw.com/싱가포르-ico-웃고-시작해서-울고-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