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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Apr 05. 2023

세상은 소리로 가득 차있어요.

사카모토 류이치를 애도하며  

2018년 6월, 한창 논문을 준비할 때였다. 깜빡이는 커서와 분초를 다투며 살던 그 나날 속에서 사카모토 류이치를 처음 만났다. 도대체 쓸 수는 있는 것일까,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대로 지쳐 충동적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류이치의 생을 그린 영화 코다, 푸른 숲에 홀로 서있는 류이치의 모습, 뭔가에 홀린 듯 그대로 티켓을 예매했다. 



비극이 휩쓸고 지나간 후쿠시마. 차디찬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은 피아노 앞에 그가 앉아 있었다. 지난한 아픔을 견뎌낸 사람들 앞에서 그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부드럽지만 구슬픈 선율에 사람들은 잠시나마 고된 삶을 걸어두고 평안을 찾았다. 


소리에 미쳐있는 사람. 세상의 온갖 소리를 찾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 그는 암에 걸렸지만 하루도 쉬지 않았다. 하루 10시간을 꼬박 음악에 흠뻑 취해 보내는 그. 너무 멋졌다. 류이치처럼 살고 싶어졌다. 일과 일상의 경계가 무너져도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저런 건가, 싶었다.


영화관을 나온 후로 류이치의 음악을 계속해서 들었다. 그의 선율을 따라 그의 열정이 거의 사그라질 뻔한 내 마음의 열정을 다시 지펴줄 것만 같은 기대였던 걸까, 아니면 그저 어설픈 흉내를 내고 싶었던 걸까. 모르겠지만, 그의 음악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대학원을 졸업했고, 어느새 첫 직장에 들어 있었다. 


류이치라는 이름은 나에게 그만큼 특별하다. 그의 음악에 젊은 날의 순수한 열정을 심어 놓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음악이 정말로 위대해서 그런 건지,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항상 울고 싶어지는 마음 반, 미칠 듯이 황홀하고 좋은 마음이 반, 공기 중에 둥둥 떠있는 것만 같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났다. 뉴스를 잘 보지 않는 지라 참 늦게도 그 소식을 접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무 슬펐다.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애도하고 싶어지는 건 바로 이런 마음인가 보다. 


그는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안다.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그의 음악에 참 많이도 위로받았다는 사실을, 그가 어디에서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카모토 류이치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모르게 어떻게든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는 꿈을 심어준 그에게, 감사하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조금은 나은 곳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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