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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Apr 08. 2023

댕댕예찬

결국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날이 좋았다. 산뜻한 걸음으로 거리를 걷고 있을 때 낯설면서도 익숙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당차게 길을 걷는 댕댕이. 밖에 나왔다는 신남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씰룩임. 그 참을 수 없는 귀여움에 덩달아 내 입꼬리도 씰룩였다. 어쩌면 좋을까. 저 치명적인 존재를. 분명 초면이건만 끓어오르는 사랑으로 끙끙 마음을 앓고 있는데 그제야 옆에 선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굽을 대로 굽어 펴지지 않는 등,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힘겨워 보였다. 세월의 흐름이 묻어나는 교복 브랜드 쇼핑백을 등에 메고서 할머니는 겨우 보도 위를 나아가고 있었다. 

대조되는 광경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댕댕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할머니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댕댕이는 흘끔흘끔 옆을 돌아보았다. 신나면서도 본인의 신남이 미안한 건지, 동동 떠다니는 발걸음의 텐션을 애써 죽이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조금만 더 천천히 걸어야겠구나. 계속 계속 댕댕이는 할머니를 살폈다. 핑- 눈물이 돌았다. 어떻게 저런 작고 작은 몸이 이 세상을 가득 안고도 남을 사랑을 품었을까.



개는 사람이 길들이지 않았다. 친화력 높은 늑대들이 스스로 가축화한 것이다. 이 친화력 좋은 늑대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현재 그들의 후예는 개체수가 수천만에 달하며 지구의 모든 대륙에서 우리의 반려동물로 살아가고 있으나, 얼마 남지 않은 야생 늑대 개체군은 슬프게도 끊임없이 멸종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143쪽

댕댕이의 조상은 늑대였다.  우어우- 표효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던 늑대는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과 친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후로 댕댕이가 된 늑대는 쭉 사람의 곁을 지켜왔다. 우리가 알아차릴 때에도, 알아차리지 못할 때에도. 그렇게 댕댕이는 이 세상에 사랑으로 살아남기를 선택했다. 


오래전, 다윈의 적자생존은 많은 이들에게 오해를 불러왔다. 다윈의 이론을 자기만의 필터로 걸러낸 스펜서에 대해 다윈은 혀를 내둘렀지만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생존의 담론은 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복잡다단한 삶을 간단하게 정의해 주는 그 담론에 흡족해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일상 속에서 남의 불행을 돌아본다는 건 사치일 뿐이었다. 강해져야만 한다. 내 옆의 사람을 밟고, 또 밟고 서 살아내는 게 역시나 이 세상의 이치였구나. 마음속에 남아있는 털끝만큼의 양심은 적자생존이라는 이름의 채로 걸러졌다. 그렇게 생존은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남을 제치고 제쳐 원하던 것들을 손에 쥐고 또 쥐던 사람들은 무언가에 염증을 느꼈다. 그 염증을 새로운 욕망으로 착각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공허한 마음을 들쑤셨다. 욕망의 탑 정상에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부여잡고, 항상 어쩔 줄을 몰라했다. 


엄혹하다는 비유 외에는 다른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유독 사람에게 치인 날엔 어김없이 댕댕이 영상을 꺼내 들었다. "개새끼가 무슨 말이야. 개새끼는 욕이 될 수 없어. 차라리 욕을 하고 싶다면 사람 새끼라고 욕을 해야지.",  "키운다는 게 뭔 말이야, 개가 사람을 사랑으로 거두는 거겠지." 나만의 댕댕 경전을 펴놓고 꽤나 오랜 시간 마음을 수양한다. 

때로는 맹목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댕댕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저를 고통과 죽음으로 내몰 것을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는 추호도 없다는 듯이 늘 우리에게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는 그들이. 너무도 경이로워 마음이 벅찼다. 작지만 찬란한 그 존재의 속성이 온 세상을 가득 채웠다.


사회적 스트레스는 우리 몸에 비축된 에너지를 고갈시켜 면역체계를 약화하고 결국 우리는 더 적은 수의 후손을 남기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격성이 높을수록 비용이 많이 드는데, 싸워서 다치거나 잘못되면 죽을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적자는 우두머리 지위를 차지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더럽고 잔인하고 짧은'인생으로 끝날 수도 있다.  다윈은 자연에서 친절과 협력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라고 썼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34쪽

결국 댕댕이는 진리이자 신이었다. 비유가 아니다. 존재 자체로 사랑을 증명해 내는 그들이 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냔 말인가.


피부색이나 성장 배경 혹은 종교를 이유로 누군가를 미워하도록 타고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넬슨 만델라는 썼다. "혐오는 학습되는 것임이 분명하며, 학습을 통해서 누군가를 혐오한다면 타인을 사랑하도록 배울 수도 있다. 사랑이 그 반대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더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불관용에 대해서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바, 즉 "불관용은 '닫힌 마음'과 '무지'의 소산임을 잘 담아낸 아름다운 말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446쪽

넬슨 만델라도 댕댕이와 함께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만델라가 댕댕이를 '키운' 것은 절대 아니었으리라) 그는 이렇게 댕댕 법을 설파했다. 적자생존이 가난한 우리의 마음을 파고들었던 대가가 무엇이었는지, 혹자는 겨우 알게 되었고, 혹자는 아직 모른다. 그렇게 세상은 아직도 삐걱삐걱 힘겹게 굴러가고 있다. 척박한 땅에 댕댕 법의 단비가 고루 내리게 될 그날까지. 예찬한다. 나의 눈부시고 찬란한 댕댕이를. 


내 옆의 사람을 댕댕이처럼 사랑하자.(이 말은 내가 댕댕이를 사랑하는 만큼 제발 사람을 사랑해 보자는 나의 자조일 수도 있고, 댕댕이가 온 세상을 사랑으로 품은 것과 같이 타인을 제 몸처럼 사랑하자는 이 세상의 진리가 될 수도 있다) 댕댕 법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오늘도 겨우 세상 밖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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