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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Aug 29. 2024

시급은 3,800원 (2)

시급은 3,800원, 스무살 처음 발을 들인 일터는 편의점이었다. 교실이 아닌 곳에서 쓰임을 받는다는 건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아닌 다른 어른을 섬기고 있다는 낯선 생각은 매순간의 행동을 어색하게 했다. 나름대로 예를 갖춘다는 의미에서 ‘아줌마’가 아닌 ‘아주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했건만 ‘아주머니’는 매서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자신을 ‘점장님’이라 부를 것을 지시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생애 첫 고용과 피고용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바코드를 찍고 물건의 제값을 계산하고 거스름돈을 돌려주고, 손님이 없을 때는 물건을 진열하고 혹은 청소하고, 윙- 울리는 냉장고의 리듬에 맞추어 그렇게 하나, 둘, 셋 해야 할 일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괜찮아, 참 쉬운 일이야.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첫손님의 등장을 알리는 쨍그랑 종소리와 함께 쉽지 않은 날이 시작되었다. 

분명 일은 참 간단한데 동작 하나하나가 어수선했다. 떨리고 있는 손끝에서 사회 극초년생의 불안을 들켜버릴까 조마조마하며 애써 의연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소용없었다. 가장 난감한 순간은 담배를 찾는 손님들의 연이은 방문이었다. 편의점을 찾는 손님의 열 중 여덟은 담배를 원했다. 약속이라도 한듯 그들은 모두 담배를 풀네임이 아닌 별칭으로 호명했다. 혼란한 발음에 따라 진열된 담배의 라벨을 바삐 훑어봤지만 도무지 찾아낼 수 없어 늘 허탕이었다. 허둥지둥대는 날 앞에 두고 손님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친절한 말씨로 위치를 일러주는 손님도 더러 있었지만, 담배를 모르면 팔 자격이 없다는 둥, 듣도 보도 못한 훈계를 버럭 지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담배 소동이 지나가고 넋을 빼놓고 있던 찰나, 쨍그랑 또다른 손님이 등장했다. 바코드를 찍고 계산하는 건 이제 이골이 나 있었기에 여유있게 손님을 맞았다. 그런데 계산대에 선 손님이 도무지 움직일 줄을 모르더니 대뜸 쓰레기봉투를 요구했다. 생경한 단어에 머리속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리터별로 묶여 있는 꾸러미를 뒤적이며 겨우 손님이 원하는 용량의 쓰레기봉투를 찾아 건넸다. 원하는 바를 이룬 손님은 유유히 떠났지만,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았다. 아니나 다를까, 정산을 하던 도중 매출에 심하게 빵꾸가 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손님이 준 돈보다 훨씬 더 많은 수량의 쓰레기봉투를 건넸던 것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 애써 위로해 보았지만 나의 실수를 알고도 뻔뻔히 그 자리를 떠나던 손님의 호기로운 표정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결국 얼마되지 않는 월급은 호되게 깎였고, 마감 시간이 되어 돌아온 ‘점장님’은 더욱 엄한 표정을 지으며 주의를 주었다. 


우당탕탕의 시간들을 지나 짬밥이 차오르자 여유와 안정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라벨을 일일이 쳐다보지 않고도 담배의 위치에 따라 손이 먼저 척척 움직였고, 계산을 끝내고도 물건의 금액과 수량을 한번 더 체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렇게 한 계절이 가고, 할만하다 느낄 즈음 거짓말처럼 또다른 치명적인 문제가 닥쳐왔다. 첩첩산중 가운데 홀로 강한 불빛을 내뿜고 있던 편의점이 여름이 찾아오자 주변에 서식하는 모든 파충류의 성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매대 옆 세로로 길게 난 창 사이로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그들이 우글우글 제 모습을 드러냈다. 

빛을 향해 몸을 던지려는 처연하고도 격렬한 그들의 날갯짓을 바라보며 나는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각양각색의 그들이 차례로 인사를 건네듯 들어 앉았다. 끼약 끼약 소리를 질러가며 정신없이 각축전을 벌이다보면, 바닥은 어느새 갖은 사체로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난장판과도 같은 날들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기진맥진해져 갔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점장에게 사의를 표했고, 갑작스레 알바를 구해야 할 부담에 놓이자 점장의 태도는 눈에 띄도록 사근사근하게 돌변했다. 그러나 점장의 호의는 파충류의 소굴에 남아 쥐똥 만한 시급을 받으며 계속해서 일을 이어갈 만큼의 명분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게 첫번째 편순이 이력은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두번째 편순이 이력을 쓰기 전까지 패밀리레스토랑 서빙, 웨딩홀 안내, 학원 보조 강사, 영어 과외 등 갖가지 알바를 전전했다. 그러다 결국 편의점으로 돌아온 이유는 여느 알바보다 시급이 적기는 했지만 그만큼 여유로웠기 때문이었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짤막한 터울마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과외까지 병행한다면 한달에 들어오는 수입이 꽤나 쏠쏠할 터였다. 

시급은 5,500원, 점장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최저 시급에 500원을 더 얹어 주는 거라며 생색을 냈다. 시간은 주말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해가 밝을 때 일이 끝난다는 게 더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가습기처럼 호호 입김이 나오던 이른 겨울 아침마다 시차가 15분은 넘는 버스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도착한 아무도 없는 편의점에 열쇠를 따고 들어가 허겁지겁 난로를 켜면 은은히 퍼지는 그 온기가 참 좋았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어슴푸레 들어오는 편의점 차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차분한 적막 속에서 이런 저런 책을 펼쳐 읽고 있으면, 홀로 뿌듯한 기분에 심취에 함박 웃음이 지어지기도 했다. 


편순이 경력도 있었겠다, 여러 알바를 전전하며 별별 인간 유형을 겪었기에 이제는 꽤나 조숙한 사회성을 보일 줄도 알았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영혼없는 인사를 건네며 순조로이 일을 해나갔다. 일이 척척 진행되니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자연스레 더 눈길이 갔다. 편의점에 들르는 게 나름의 생활 루틴이었는지, 같은 시간대에 때가 되면 모습을 나타내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손님은 일요일마다 8시도 안된 이른 아침에 육개장 컵라면과 팩소주를 꼭 세트로 사 가는 남성이었다. 계산을 마친 그는 춥디 추운 야외 테라스에 앉아 일정 시간을 머물렀다. 등을 굽힌 채로 쫓기듯 후루룩 질 나쁜 식사를 마치곤 처연히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괜한 걱정이 동하곤 했다. 도대체 어떤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 걸까, 그러나 그런 주제 넘는 걱정은 매번 그가 남겨 놓은 라면 국물과 쓰레기를 치우며 욕지기로 끝나곤 했다.  


이밖에도 오후 2, 3시 즈음이 되면 꼬박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사가는 아저씨도 있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친절히 묻는 내게 그는 대답없이 손을 까딱 까딱 흔들기만 했다. 말못할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여기며 애써 이해해 보려 했는데, 결국 말을 뱉지 않으면 저가 원하는 담배를 끝내 사지 못할 것 같은 한계에 도달하자 “에쎄 라이트!”하며 버럭 소리를 치는 게 아닌가. 움찔 놀랐던 첫만남 후로 난 그가 올때마다 약속한 듯이 에쎄 라이트를 미리 매대에 꺼내 두었다. 뼈속까지 무례한 그를 미워하고 저주하면서. 그러던 어느날 담배를 가져가는 그의 손에 눈이 가 턱 멈추고 말았다. 손가락이 있어야 할 오른손 마디마디가 군데군데 비어 있는 걸 보고는 흠칫 놀라고 만 것이다. 불친절의 사연에는 그보다 더한 불친절의 사연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 후로는 한결같이 쌀쌀맞은 아저씨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응대하고자 무진 애를 쓰곤 했다. 


에쎄 아저씨를 논외로 치더라도, 편의점에는 불친절이 차고 넘쳤다. 매대에 서 있는 사람은 무례하게 대해도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인지,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게 물건이 아니라 내 호의와 친절인 것마냥 굴었다. 반말을 툭툭 던지는 건 귀여운 수준에 불과했다. 저금통을 들고 와 물건값만큼 알아서 가져가라는 황당한 요구를 뻔뻔히 하는 이도 있었고, 마치 공기놀이를 하듯 매대에 동전을 집어 던지는 이도 있었다. 주말 아침에 허겁지겁 나오느라 평소보다 차림새가 추레한 날이면 무례의 정도는 더 심해졌다. 조금은 더 존중해 달라는 무언의 의미로 얼굴에 분칠이라도 조금 하고 온 날엔 오늘은 더 예뻐졌네, 라는 능청스러운 성희롱까지 당했다. 복장터지게도 어린 날의 난 그게 그저 칭찬인 줄로만 알고 정말 ‘계집애’처럼 베시시 웃기까지 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다채로운 인간의 유형과 사회의 민낯을 마주하며 나는 매번 이해와 용서, 분노와 혐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그렇게 2년 여의 시간이 흘렀고, 정확히 어떠한 경위로 두번째 편순이 경력에 종지부를 찍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기만 하다. 



어느덧 부지런히 흐른 시간은 매대에 선 나를 석사 졸업생으로 둔갑시켰고, 그 후로 나는 새하얗게 비워진 이력서를 마주하고 앉아 매번 겸연쩍어 하곤 했다. 그렇게나 해온 일이 많은데도, 해온 일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나를 한없이 움츠러들게 했다. 

지금의 나를, 못해도 팔할 정도는 이루게 된 냉장고 굉음과 컵라면 내음이 일상이었던 그곳의 숱한 순간들, 미숙에서 완숙으로 바뀌어가는 처연하고도 적나라한 시간들이 나를 증빙하는 문서의 단 한칸에도 들어갈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는 엄숙한 사회의 현실이 꽤나 저릿하고 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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