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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출판사 기획편집자가 본 생의 살풍경

by 초희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파주 출판단지로 가는 길은 두개이다. 홍대나 합정에서 2200번 빨간 버스를 타고 올림픽대로, 자유로를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는 방법과 서울역에서 최근에 개통된 GTX를 타고 운정역으로 가서 버스로 갈아타는 방법.


어느 방법으로 가던 사람으로 붐비진 않는다. 출근길에 남쪽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많아도 북쪽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극히 드무니까. 홍대에서 합정으로 환승하러 가는 교차로에서 나는 종종 회심의 미소를 짓곤 했다. 강남 쪽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수많은 사람을 곁눈질하며 한가롭기 짝이 없는 반대편으로 향할 때면 뭔가 대단한 승리라도 거머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원의 지하철 안으로 꾸깃꾸깃 몸을 끼워 넣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호기롭게 선택하는 건 내 오랜 습성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출판 기획편집자는 천성인 듯싶었다. ‘화석’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출판업계는 몇십 년 동안 이어지는 만성 적자에도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렇다 할 매출 성과가 없어도 그 수많은 출판사들이 망하지 않는다는 건 희대의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출판사들은 그 작은 파이를 조금이나마 많이 가져가기 위한 경쟁조차 하지 않는다. 이만하면, ‘선비’들만 모여 있는 업계라고 칭찬해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까지 했다.


수많은 인파와 산소를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상쾌한 출근길,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글귀 앞에 가닿는다. 촘촘하면서도 여유롭게 흩어져 있는 정갈한 건물 사이로 출판업계 특유의 고상한 정적이 흐른다. 서울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새소리, 족히 3-4도 가량은 낮은 듯한 추운 공기 속을 뚫고 마침내 포근한 사무실에 들어선다. 짐을 푼 후 여유로이 커피를 내리고 있노라면, 몸은 물론 마음까지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입사 후 내가 맡은 책은 미국에서 발간된 ‘Working Boats'라는 제목을 가진 어린이 논픽션이었다. 태평양 인근에서 어부로 일하는 작가는 아들을 위해 책을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바다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들이 쑥쑥 커 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없었던 작가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를 아들에게 세세하게 보여 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연어, 가자미, 킹크랩 등 바다생물을 잡는 어선은 물론, 소방선과 연구선까지 다양한 배들을 화폭에 옮겼다. 드넓은 바다를 달리는 이 거대한 기계들은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그 배를 탄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등 세세한 설명이 다채로운 일러스트와 함께 펼쳐졌다.


책을 5번도 넘게 교정을 보다 보니, 눈을 감고도 내용을 줄줄 외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가끔 지인을 만나면 ‘너 태평양에서 어부들이 어떻게 물고기 잡는 줄 알아?’하며 생소하기 그지없는 대화 주제를 입에 올리며 낄낄 뿌듯해하기도 했다. 킹크랩은 사회성이 높은 동물이라 한 마리가 통발에 들어오면 덩달아 너도나도 들어온다는 사실, 아기 가자미는 크면서 눈이 한쪽으로 몰리고 어른이 된 이후에는 평생을 옆으로 헤엄치며 살아간다는 사실, 똑똑한 범고래들은 어선을 따라다니며 수확한 물고기를 야금야금 잡아먹는다는 사실 등. 신비한 이야기들이 차고 넘쳤지만 그중에서도 내 이목을 대번에 끈 이야기는 연어에 대한 것이었다.


바다에서 살아가는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강물의 냄새를 잘 기억해 두었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그 강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거센 물길이 앞을 막아선다 해도, 연어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심지어 높은 폭포를 거슬러 튀어 오르기까지 한다. 어부들은 연어들이 바다에서 강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고 저마다 만선을 꿈꾼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어업 현장에는 여러 비행기와 헬리콥터가 출동한다. 어부들이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은 연어를 잡지는 않는지, 철저하게 감시하기 위해서이다.


도처에 죽음이 도사려 있는 길을 자처하여 마침내 자신이 태어난 강에 도착해 새 생명을 틔우는 연어를 떠올려보았다. 연어의 DNA에 생명을 향한 강한 집착이 아로새겨지게 된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문득 내 자신도 연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모두가 남쪽을 향해가는 출근길에서 홀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새뿐 아니라, ‘돈, 돈’하는 세상에서 모두의 워너비 강남을 등지고 언제 침몰할지도 모를 위태로운 업계에 다시 기꺼이 몸을 담는 절대로 못 고칠 본능으로 회귀했다는 점까지, 꼭 들어맞았다.


그렇다면 내 DNA에 각인된 습성이란 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내가 틔우고 싶어 하는 무언가는 과연 무엇일까.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신비한 이유처럼

그 언제서 부터인가

걸어 걸어 걸어오는 이 길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가야만 하는지


그즈음부터 출퇴근길에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라는 노래를 즐겨 틀었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을 혼잣말처럼 몇 번이고 흥얼거리며 생의 의미에 대해 부질없는 철학을 더해 갔다.


보이지도 않는 끝

지친어깨 떨구고

한숨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


돌아가는 길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연어처럼, 나도 언젠가는 그 길을 알게 될까. 어딘가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다만 주어지는 매일을 살다 보면 틔우고 싶은 게 과연 무엇인지 알게 될 수도, 아니면 영원히 모르게 될 수도 있다.


노래의 리듬을 발걸음에 실어 올리며 힘차게 계단을 올랐다.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스쳐가는 고단한 얼굴의 타인들이 언뜻언뜻 보였다. 모두가 그렇게 저가 정한 방향대로 하루는 바쁘게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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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른 오후에 업로드한 글인데

수정하다가 실수로 삭제하는 바람에

22 분의 좋아요가 날아갔네요ㅠㅠ

죄송합니다.

글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해요!

독자 분들 모두 안온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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