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10년)에 <7번 국도 Revisited>라는 책을 출간한 뒤, 독자들과 만나는 행사가 열린 적이 있었다. 그건 13년 전인 1997년에 출간한 <7번국도>라는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쓴 소설이었다. 스물여섯살에 자전거로 7번국도를 여행한 뒤, 그 소설을 다 쓰고 나니까 스물일곱 살이 끝났었다. 이 소설에 대한 반응은 너무나 미미해서 크게 실망한 나머지 나는 소설 같은 건 그만 쓰자고 생각하고 스물여덟 살부터 잡지사를 다녔다.
그 밤에 나는 "인생은 너무나 길어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했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이에요." 그런 말도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13년 전에만 해도 나는 2010년이 되어서도 내가 소설을 계속 쓰리라는 걸, 더구나 <7번국도>를 다시 써서 출판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렇게 독자들과 만나게 되리라는 걸 상상조차 못했으니까. 인생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길다. 그러고 보니 예측한 대로 삶을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늘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인생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51~52쪽
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산문집, '눈, 해산물, 운하, 맥주, 친구' 글 중에서(2018년 마음의숲에서 발행)
주 5일 빠짐없이 출근하고 황금같은 주말이 찾아오면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하기 싫잖아요. 그런데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이것저것 해 봐요. 공들여 글을 쓰고,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해서 쇼츠도 만들어 보고요.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였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 못하면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져요. 그만하자. 라는 절망섞인 자조도 불뚝 솟아오르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생각을 바꿔 봤어요. 조회수에 찍힌 사람들을 7평 남짓한 내 방 안에 가상으로 세워 보는 거예요. 그때부터 작은 숫자도 결코 작아 보이지 않더라고요. 숫자 하나하나가 사람 한명 한명이라고 생각하니, 그 모두가 너무도 귀하게 다가왔어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망설이는 이유는 처음부터 높은 성과를 기대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성과요. 잘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해요. 사실 그 숫자의 크기보다 중요한건 그 숫자 하나하나에 가 닿고 싶단 진심이 아닐까요? 그때부터 저는 찍히는 숫자에 집중하기보다 나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콘텐츠들에 '내 진심이 얼마나 담겼느냐'에 더 신경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발상을 바꿔보니 오히려 '숫자적인 성과'도 따라서 좋아지더라고요.
김연수 작가님도 첫 소설을 쓰고 절필을 생각했었다니, 정말 의외였어요. 그분이 다시 쓰게 된 이유가 이 글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마 저와 비슷한 마음으로 해오지 않으셨을까 생각해요. 어쩔 땐 계란으로 바위치는 심정이었겠지만, '진정성'은 어떻게든 통한다는 믿음을 끝내 내려 놓지 않으셨던 게 아닐까, 하고요.
그렇다고 제 꿈이 김연수 작가님처럼 대단한 대가가 되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제 꿈은 명사가 아니고 동사거든요.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 이게 제 꿈이에요. 물론 '선하다'라는 건 언제나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는 개념이지만요. 쉽게 말해 나를 좋게 해 준 것들로 다른 사람들도 좋게 해 주고 싶단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여러분도 숫자를 넘어 그 숫자를 품을 수 있는 꿈을 꾸셨음 해요. 김연수 작가님 말대로 "인생은 너무나 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