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하여!” 그 한마디의 무게

by 이태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회식이 있다 하면, “위하여!” 외치며 잔을 부딪힌다.

고기 굽는 연기, 소주잔 넘치는 웃음소리.

어쩌면 이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데 누가 처음 이 문화를 만들었을까?

상추쌈에 고기를 올리고, 마늘과 된장을 얹고,
한 잔 털어넣고 웃으며 “위하여!”

그 한마디는 누구를 위하는 말이었을까?

아이들은 상추를 보면 “삼겹살 먹는 날”이라 말한다.
된장쌈밥을 기억하는 이는 점점 사라진다.

우리는 밥이 아니라 고기와 술로 정을 나눈다.

누구를 위하여 잔을 들고, 누구를 위하여 고기를 굽는가.

돼지에게 주입되는 성장호르몬,
1년에 수십 마리를 낳게 만드는 스테로이드,
폐렴에 걸린 채 도축되는 고기,

그리고 그 고기를 먹으며 우리는 건강을 말한다.

그건 진짜 사랑일까?
진짜 위로일까?

어른이 되면 먹어도 되는 음식이라는 게 있을까?

아이에게 주지 않는 음식,
아이가 해선 안 되는 행동을

어른이라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허락해도 되는 걸까?

고기를 구우며 나누는 대화는
때론 삶을 나누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있는가.
그리고, 왜 먹고 있는가.

오늘 당신의 “위하여”는

정말 ‘그 사람’을 위한 말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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