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고통
감독 : 미카엘 하네케
출연 : 장-루이 트린티냥(조르주), 엠마누엘 리바(안느)
죽음에 관하여
우리는 모두 죽음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본다. 우리에게 언젠가 찾아오는 돌이킬 수 없는 이 미래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곧 다른 생각으로 덮어버린다. 아직은 먼 미래라 생각해서이지만 무엇보다 죽음 이후의 삶 또는 세계가 아직은 밝혀진 게 전혀 없는 두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이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기 꺼려하는 이유이다. 이런 죽음에 관하여 밀도 있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영화가 바로 '아무르'이다. 영화 '아무르'는 죽음 중에서 노화로 인한 죽음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사람의 시점이 아닌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시점에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죽어가고 있는 자신의 고통이 아닌 죽음을 지켜보는 삶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전에 작성했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처럼 대중들에게 보단 영화 전문가들에게 더 유명한 감독이다. 그의 전작 중에서 그나마 대중들에게 알려진 영화로는 '퍼니 게임'이 있고 그 외에는 전부 아마 처음 들어보는 영화들이 많을 것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감독으로 칸 영화제에서 사랑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하얀 리본'과 이 영화 '아무르'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그 외에도 아카데미에서 영화상을 수시로 받았던 감독이다. 그만큼 영화 전문가들에게 사랑받는 감독이라 할 수 있는데 대중들에겐 하네케의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까? 내가 하네케의 모든 영화를 다 본건 아니지만 정적인 연출, 많은 대사, 상징적인 소품 등 대부분의 하네케 감독의 영화는 난해하고 어렵다. 하네케 감독은 늘 우리가 덮어두기만 하던 죽음, 삶에 대한 주제를 다루며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MSG 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감독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영화 자체가 굉장히 철학적이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죽음을 보는 시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아픔과 나도 곧 가야 한다는 두려움
죽음 표현하는 방식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적인 연출로 진행된다. 카메라가 움직이는 경우도 없고 심지어 처음 공연장 장면 외에는 집에서 벗어나지도 않는다.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조차 대사로 풀어내고 불필요한 대사들도 수두룩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도 존재한다. 그렇게 불필요한 장면들을 굳이 삭제하지 않고 또 집에서만 촬영한 이유는 감독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있다. 이 영화는 죽음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거의 도달한 인물을 바라보는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불필요해 보이던 장면들, 굳이 끝까지 보여준 지루한 삶의 과정들이 곁에서 바라보는 인물의 고통으로도 치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안느보단 조르주이다. 그의 온난함이 폭력적으로 변하는 두 번의 순간 모두 그 역시 고통스러웠기 때문이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모든 장면을 삭제하지 않고 표현했다 볼 수 있다.
솔직히 이 영화를 5년 전에 처음 보고 이번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감상평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지루하다.' 이 영화의 주제는 한번 봐도 알 수 있지만 매우 지루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이 영화의 주제 자체를 위해서 정적으로 표현하였다 한들 보는 내내 너무 지치게 만들었다.
이 영화에는 수많은 상징물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죽음을 상징하는 '물', 관계를 표현하는 '집' 등등 집안 곳곳에 숨겨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을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유추하고 이해할 수 있게 놓여 있지는 않다. '물' 자체도 사실 내가 유추해서 해석한 것이고 '집'이라는 상징물 역시 전문가의 해석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그 외에 아직도 이해 못한 상징물 '비둘기'와 피아노 곡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그게 무슨 의미인 거지'라는 의문만 남겨놓은 상태이다. 결론적으로 이 수많은 상징물들을 어떻게 어떻게 이해했다 치더라도 내가 이 영화를 통해 울림이 있을까 생각을 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느껴지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이론적으로 안다고 과연 알 수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할지 의문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영화에서 집을 노부부의 관계로 표현한 것을 극찬하는데 아직은 내 시선에선 긍정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없었다.
위에서 말한 그대로이다. 이 영화에는 수많은 상징물이 존재하고 이 부분이 많은 전문가들에게 호평을 받지만 과연 많은 대중들은 이 상징물들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들까? 꼭 해석할 필요는 없겠지만 알아들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 영화의 결말은 헤피엔딩도 아니고 베드 엔딩도 아니었다. 조르주의 마지막 행동은 굉장히 처참한 행동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행동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한다. 또 그의 결단이 안느와 조르주에게 비극적인 행동일까?라는 생각도 들게 만드는 행위였다. 죽음을 누군가의 선택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부부 본인들의 삶만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지 않을까? 결국 조르주의 처참하기도 끔찍하기도 한 행동에 마냥 비극적이다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삶은 누가 봐도 행복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죽음만이 남아 있는 그들의 삶에서 선택한 처참한 행위를 그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지루하게 보다가 그 장면만큼은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온 장면이었다.
영화의 결말만큼은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숙연해지고 충격을 먹은 장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의 선택은 윤리적으로 비판받을 행동이지만 그의 선택을 우리가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를 누구에게 추천할 수 있을까? 영화를 좀 봤다 하는 사람들에게나마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유는 이렇게 정적인 영화에 내성이 없는 사람들은 금방 영화를 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나에게 굉장히 지루하고 보기 어려운 영화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긍정적이게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노부부를 연기한 명배우들과 마지막 결말의 충격 덕분일 것이다. 5년 전에 본 이 영화의 결말만큼은 잊히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시 봤을 때도 같은 충격이었다. 결국 앞으로의 5년도 이 영화의 결말은 잊을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