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잇는 것은 핏줄이 아닌 온정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 릴리 프랭키(오사무 시바타), 안도 사쿠라(노부요 시바타), 죠 카이리(쇼타)
가족
아이들 입장에서 가족이란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안식처이자 울타리이어야 한다. 하나뿐인 내편이자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점들을 배우는 곳이 바로 가족이란 환경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가족'은 울타리가 아닌 족쇄이기도 한다. 벗어나고 싶은 환경이자 상처뿐인 공간인 것이다. 단순히 폭력적인 가정이나 방치하는 가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족끼리의 유대감이 없을 때 가족은 가족으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세상엔 얼마나 가족 같지 않은 가족들이 존재하는지 체감할 수 있다. 가까운 지인만 보더라도 가족과 원수로 지내는 경우가 있고 통계적으로 낳은 자식을 버리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가족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과 틀을 깨는 영화이다. 가족은 핏줄로 이어졌다고 해서 가족이 아니며 가족이기에 더 잔인하게 상처 줄 수도 있음을 영화는 표현하고 있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 영화 자체를 관통하는 이 대사는 앞으로도 계속 기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영화
사회가 바라보는 가족, 진정한 가족의 차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바타 가족은 보통의 가족과는 다르게 핏줄로 이어져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 안에서 행복했다. 쇼타와 유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버려진 자식이다. 핏줄로 이어진 가족은 그들을 버렸고 폭력을 행사했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시바타 가족을 선택할 수 있었다. 시바타 가족이 된 이후로 늘 가난에 부딪혔지만 행복할 수 있었다. 그들에겐 따뜻한 온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쇼타와 유리를 낳은 가족은 그들을 버렸지만 시바타 가족은 그들을 품고 진짜 가족이 되었다. 하지만 사회는 핏줄을 더욱 중시했다. 쇼타와 유리에겐 '진짜 가족'이 필요하다고 사회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진짜 가족은 누구였을까?
물론 시바타 가족 역시 좋은 가족의 예라 할 수 없다. 단순히 폭력을 일삼지 않는다고, 온정이 가득하다고 가족으로써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시바타 가족은 도둑질이 일상화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가족은 결국 가족 구성원들을 품을 수 있는 온정과 함께 경제적인 면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바타 가족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 보이지만 그들의 삶을 마냥 응원하기도 힘들었다.
일본 영화 특히 고레에다 감독의 가족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일본 가정식에서 저녁 식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아니 그냥 일본을 다녀오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만큼 일본의 음식 문화를 굉장히 잘 담아내는 감독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고레에다 영화의 좋은 점은 일본의 외적인 정취뿐만 아니라 현재 마주하고 있는 일본의 사회문제까지 굉장히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취업난 문제와 가정폭력 등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사회 현상에 대해 잔잔하고 진중하게 표현하고 있다.
일본 영화의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와 일본의 정취를 보고 있으면 정말 일본 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런 잔잔한 영화를 상영관이 아닌 집에서 봐야 하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모든 영화가 그렇긴 하지만 일본 영화가 특히 그렇다. 잔잔한 분위기가 무조건 단점이라 할 수는 없지만 취향은 분명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끈끈해 보이던 관계도 사소한의 오해 혹은 실수로 끝맺음을 맺는다. 그리고 그런 인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먼저 아키는 할머니가 나를 이용해 돈을 받았다는 생각에 가족끼리 비밀로 하기로 했던 할머니의 위치를 알려준다. 감옥에 가게 된 노부요는 유리가 집에 가고 싶어 했다는 말에 쇼타의 부양을 포기한다. 또 쇼타는 아버지가 자신을 두고 도망치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일부러 붙잡혔다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끈끈하던 가족이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던지고 흩어지는 장면이 굉장히 현실적이면서 안타까웠다. 특히 쇼타가 가족을 선택했듯이 시바타가 아저씨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을 하는 모습, 쇼타를 떠나보내고 버스를 급히 쫓아가는 모습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사랑했지만 사랑만으론 그들을 지킬 수 없어 떠나보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 영화 중간중간 우리들의 마음을 후벼 파는 문장 하나하나가 존재한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부터 아버지가 아닌 아저씨를 선택하겠다 등등 지루하게 보시지 않은 분들이라면 이런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 깊이 박혔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더욱 와 닿았던 것 같다.
2018년도에 황금종려상을 탄 이 영화는 생각보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영화이다. 올해 국내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타면서 자연스레 보신 분들도 많겠지만 아직 못 보신 분들이라면 추천드리고 싶다. 물론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에 내성이 없으신 분들이라면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영화 안에 있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면서 본다면 굉장히 깊은 여운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