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맛
데이트의 패턴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영화 후 식사, 식사 후 카페, 식사 후 술 한 잔, 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형화된 패턴들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 영화 후 식사 장면을 한번 떠올려보자. 연인과 함께 영화를 보고 웃고 출출해진 상태로 밖에 나왔다. 이때 목적지가 없이 밖에 나와 ‘뭐 먹지?’하고 연인에게 질문한다면 주변 공기가 조금 서늘해질 수도 있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더위를 피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서늘해진 공기는 잠깐 뒤로 하고 당신에게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보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먹는 리조또 VS 죽집에서 먹는 죽
필자가 과장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열 중의 열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갈 것으로 생각한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비일상적인 음식을 경험한다는 것, 등 다양한 이유에 의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방문한다. 그런데 맛으로만 비교한다면 어떨까? 얼핏 보기에는 죽과 리조또,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 않는가? 둘 다 쌀을 주재료로 한 요리이며 육수를 사용해서 만든다. 형태도 거의 비슷해 보인다.
그렇다면, 리조또와 죽은 같은 음식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필자의 대답을 원한다면 답은 ‘아니다 ’이다. 리조또는 이탈리아 음식이고 죽은 한국 음식이기 때문은 아니다. 필자는 철저히 맛에만 집중해서 리조또와 죽의 차이점을 말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조리법
죽과 리조또의 주재료인 ‘쌀’을 어떻게 조리하는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리조또는 오일에 쌀을 볶은 뒤에 육수를 넣고 끓여낸다. 그러나 죽은 볶는 작업이 없이 바로 물에 뭉근하게 끓여낸다. 부재료도 마찬가지다. 죽의 경우 쌀과 함께 끓여내고 리조또는 오일 또는 버터에 볶아 캐러멜 반응과 마이야르 반응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 차이점은 맛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죽은 맛의 켜가 적은 대신에 먹는데 부담스럽지 않다. 리조또는 맛의 켜가 많아 풍성한 맛을 낸다.
두 번째, 입자의 크기
리조또는 쌀의 품종으로 인해 입자의 크기가 달라지지만, 죽의 경우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쌀의 입자의 크기를 변화시킨다. 옹근 죽은 원물 그대로의 쌀을 사용하고, 원미 죽은 쌀을 반만 으깨서 사용한다. 무리 죽은 쌀을 다 갈아서 사용하는데 비단 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 번째, 조리의 완성단계
죽과 리조또를 나누는 가장 큰 차이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리조또는 평평한 접시 또는 오목하게 들어간 접시에 담아낸다. 그러나 죽은 깊숙한 그릇에 담아낸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액체의 양이다. 리조또는 육수를 조려내어 소스의 형태로 만들어 완성한다. 그러나 죽은 육수와 함께 끓여내어 걸쭉한 국물의 형태로 만들어 완성한다. 또한, 리조또는 쌀이 완전히 익혀진 상태가 아닌 안에 심지가 약간 남아있을 정도로 익혀낸다. 이를 Al dente라고 한다. 반면에 죽은 쌀을 완벽히 익혀 만들어낸다. 이렇게 리조또와 죽은 얼핏 보기에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왜 둘은 비슷한 음식으로 비춰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둘의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리조또와 죽은 같은 목적을 가진 음식이다. 바로 전분의 졸(sol)화 이다. 쌀에서 나오는 전분을 최대한 뽑아내어 액체와 함께 졸(sol)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두 음식의 목적이다. 리조또는 계속 저어주면서 전분을 최대한 뽑아내어 액체와 함께 어우러져 소스의 형태를 보이게 만든다. 죽은 계속 저어주면서 전분을 최대한 뽑아내어 액체와 전분이 적당하게 어우러진 국물의 형태를 보이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음식이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다.
사설로 다 지어진 밥으로 죽을 만들거나, 리조또를 만드는 것은 시간을 단축하지만,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지 못할 확률이 높다. 쌀과 액체가 가열되면서 호화를 이루며 졸(sol) 상태로 가야 하는 것이 리조또와 죽의 목적인데 이미 호화가 된 밥은 졸(sol) 상태로 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리조또는 쌀을 완벽히 익히는 음식이 아니기도 하다.
다시 돌아와서 서늘한 공기를 마주해보자. 당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졌다. 리조또와 죽, 어떤 음식을 선택할 것인가? 이탈리아의 음식이라고 해서 우월한 것도 우리의 음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각 음식의 차이점을 알고 원하는 맛의 음식집으로 향하는 것이 정답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