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결국봄 Aug 14. 2019

삼계탕을 분석하다

한식 분석

초등학생 때 나는 햄버거를 싫어했다. 간혹 가다 운동회를 한 후에 햄버거를 받게 되면 한 학년 위인 형을 찾아가서 햄버거를 주고는 했다. 고기를 유독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햄버거는 쳐다도 보기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햄버거 속 마요네즈에 범벅된 양상추와 양파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의 반대말이 ‘채소를 싫어한다’로 귀결되는 이상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삼계탕의 찹쌀과 대추, 마늘은 마요네즈가 범벅이 된 양상추와 같았다. 고기만 있으면 되는데 왜 안에 쌀과 마늘을 넣을까? 어머니가 삼계탕을 끓여 주시면 뽀얀 닭 다리를 주욱 뜯어서 소금에 찍어 먹고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찹쌀밥과 마늘은 외면했다. 그러면서도 닭죽은 기가 막히게 잘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10년 전으로 돌아가서 볼을 꼬집어주고 싶을 만큼 얄미운 아들이었다.


삼계탕은 백숙과 달리 안에 찹쌀과 삼, 마늘, 대추 등을 넣고 끓여낸 음식이다. 삼복더위가 찾아올 때마다 먹는 음식으로 보양식이기도 하다. 삼계탕은 많은 부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맛을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단순화시켜 분석해보고자 한다.


삼계탕의 맛

치킨이 모든 옵션을 갖추고 나온 차라면 삼계탕은 옵션은 다 빼고 프레임만 갖추고 나온 차다. 치킨은 치킨 자체로 맛있다. 닭에 염지가 되어 있고 양념이 묻어져 있어 치킨만을 먹어도 간이 적절하다. 그러나 삼계탕은 옵션은 다 빼고 닭만 삶아져 나왔기 때문에 옵션을 추가해줘야 한다. 소금을 찍어 먹거나, 소스를 만들어서 찍어 먹거나, 김치와 함께 먹으면서 맛이라는 옵션을 추가해야 한다.

치킨_풀옵션

닭 안에 부재료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데 왜 프레임만 갖춘 차로 비유했는지 반문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오로지 ‘맛’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닭에 삼과 찹쌀을 넣는다고 짠맛, 신맛, 단맛이 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삼계탕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완성된 요리는 아니다. 소스나 김치와 같은 반찬이 함께 있을 때 완성되는 요리다. 즉, 조화가 중요한 요리다.


삼계탕의 부재료

한식의 독특함은 향신료나 허브의 사용이 적은 대신에 약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약재를 사용해서 만드는 대표적인 요리가 바로 삼계탕이다. 인삼, 황기, 대추, 마늘, 전복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데 이 재료들을 넣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된다.

약재_인삼

첫 번째, 영양

약효가 있는 재료 또는 영양이 높은 재료가 사용된다.

두 번째, 향

닭의 잡내를 없애 주거나 삼계탕에 향을 부여한다.


삼계탕의 어려움

삼계탕은 닭의 내장을 깨끗하게 제거하고 안에 부재료를 넣고 통으로 끓이는 음식이다. 기름기가 적은 가슴살과 기름기가 많은 다리살이 같은 온도와 같은 시간으로 조리된다. 이런 조건에서 부드럽고 촉촉한 삼계탕을 만드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닭은 내부온도가 65℃를 넘으면 급격하게 단단해지며, 75℃가 넘으면 다시 부드러워진다. 이런 현상은 근조직을 구성하는 단백질과 그것을 묶고 있는 콜라겐이 열에 의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근섬유의 단백질은 40℃ 정도에서 변하기 시작하고, 60℃ 정도가 되면 열에 의해 단단해진다. 근섬유가 단단해지면 이로 고기를 쉽게 자를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워진다. 65℃가 넘으면 콜라겐이 수축되고 그에 따라 콜라겐 막이 두꺼워지므로 고기는 단단해진다. 75~85℃가 넘으면 콜라겐이 급속도로 젤라틴화하여 고기가 부드러워진다.


즉, 닭을 부드럽고 촉촉하게 먹으려면 닭의 내부 온도를 65℃가 넘지 않게 조리하거나 75~85℃를 넘게 조리해야 한다. 삼계탕은 보통 끓는 물에서 오랜 시간 끓여 닭의 내부 온도가 75~85℃가 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닭가슴살은 여전히 퍽퍽하고 다리 살은 부드러운 걸까?


그 이유는 조직구조의 차이와 큰 관계가 있다. 근육은 하나하나가 두꺼운 콜라겐 막으로 싸여 있는데 그 막의 안쪽에는 지방이 없다. 즉, 하나의 근육으로 이루어진 가슴살은 지방이 붙어 있는 껍질을 벗기면 지방이 거의 없는 살코기가 된다. 반면에 다리살은 껍질을 벗겨도 여러 개의 근육 사이에 지방이 존재한다. 또한, 다리는 많이 움직이는 부위이므로 가슴살과 비교했을 때 근육 전체를 둘러싼 콜라겐 막이 두껍게 발달되어 있다.


다리는 근육 사이에 존재하는 지방이 녹아서 부드러우며, 근육 하나하나를 감싸는 두꺼운 콜라겐 막이 세포 밖으로 빠져나온 육즙을 근육 안에 가둬두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닭의 내부온도가 65℃를 넘지 않게 조리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된다. 약간의 주의 사항을 적자면 내부온도 65 조리 시에는 30분 이상 가열하여야 캠필로박터균을 사멸할 수 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중심 온도 75도에서 1분 이상 가열하는 것이다.



삼계탕은 다양한 재료를 넣고 주의를 기울여 끓여낸 뒤에 함께 먹을 소스 또는 반찬을 준비해야 하는 어려운 요리다. 아무래도 1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면 볼을 꼬집을 게 아니라 꿀밤을 한 대 놔줘야 할 것 같다. 삼복더위가 끝난 시점이지만, 닭 한 마리를 사서 집에 들어가 없는 솜씨라도 좀 부려봐야겠다.



참고 문헌: 손질부터 조리까지 자세히 알려주는 닭요리의 기술

매거진의 이전글 파스타로 보는 한식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