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혁 Jun 29. 2017

혼자서 일합니다.


팔자에도 없는 가방을 만들겠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온 것이 벌써 일년 반이 다 되어간다. 첫 단추부터가 참 괴이하게 꿰인 이 일은 솔직한 마음으로 올해 여름까지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었는데, 아직까지 나는 트래블러스 하이의 사장 자리를 용케도 수성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못해 그래핀을 증착시킨 웨이퍼 위를 걷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날의 연속이지만, 어찌됐든 매일 먹고사는 고민을 하는 덕분에 지금까지 굶어죽지는 않았다.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굶어죽지는 않을 것 같다만, 어쨌든 이 일을 하면서도 다행히 밥을 굶지는 않았다.


스스로에게 월급 하나 주는것도 벅찬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아마도 '몇 명이서 일하세요?'가 아닐까 싶다.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만반의 태세의 일환으로 나는 꽤 갑작스레 선회하여 걷기 시작한 이 길에 확신이 생기지 않는 이상 절대로 누군가를 모셔오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였고, 그런 연유로 지금까지도 트래블러스 하이의 임직원은 사장 예하 한 명. 인턴부터 사장까지 모든 자리를 나 혼자서 다 해먹고 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스스로도 커다란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단 일의 확신도 없었지만, 어찌됐든 이 회사는 나 한명에 의해서 굴러가는 회사가 되었다. (이제는 그러면 안될 것 같은데, 조금은 슬픈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혼자서 이 일을 하고 있다.)


끈기있게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 애시당초 체질에 맞지 않는데다가 나의 손이 닿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쉽사리 납득하지 못하는 조금은 모난 성격까지 더해지니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쉬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언젠가는 '같이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일한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함께 일하는 '조직'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조차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기게 할 만큼 말이다.


참 많은 매력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즐겁고 보람된 것은,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라는 것.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도 그럴만한 대상이 전혀 없다는 것에 있다.


누군가를 탓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필요없이 억울한 일을 당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없지는 않겠으나, 지금까지는 다행히도 거의 없었다.) 한편으로는 괜한 화풀이가 필요한 당신의 곁에 두들기기 좋은 토끼 인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년 말의 일이다. 시작한 지 반 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나는 가방 만드는 일을 그만둘 뻔 했는데, 그것은 새로 만든 백팩으로 말미암아 생긴 결코 작지않은 소동 때문이었다. 가방을 만드는데 필요한 원부자재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꽤나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상당히 많은 클레임을 받게되었다. 이해가기 쉽도록 숫자로 이야기를 하자면, 400개의 가방 중에 100개가 불량이었다.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을 떠나서, 과연 이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싶었고 깊은 땅 속 어귀에서 무언가가 나를 아득하게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어딘가 화풀이를 하고지만 마땅히 그럴만한 대상도 없고, 누군가의 그늘 아래 숨어들고 싶어도 그럴만한 은신처 하나가 없다. 나는 한 몸 건사할 나뭇잎 한장 걸치지 못한 채, 허허벌판에 내리닥친 비바람을 온 몸으로 맞아내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일한다는 것은 꽤나 매력적이다.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고, 그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온전히 나의 의지로 말미암은 것이다. 조금 느리게 걸어도 괜찮다. 남이사 답답할지 몰라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노트북 열고 공책 하나만 펼쳐놓으면 그곳이 사무실이다. 혹여나 지각할까 마음졸이는 일도 없고, 당장이라도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여섯시를 기다리는 일도 없다.


'해야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하고있는 일'


일을 하는데 필요한 고민은 딱 세가지인데, 방해받을 일이 없으니 효율이 좋기는 또 이만한 것이 없다. 한편으로는 이 편안함에 중독되고 안주하는 듯 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지만, 한동안 그 생각은 길섶으로 살포시 미뤄두려 한다.


언제까지 혼자 일을 하게 될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온전히 나만을 위해 흐르는 시곗바늘의 소리가 퍽 즐겁고, 이것이 잔고장 없이 계속 흘렀으면 하는 마음이다. 조금의 어설픔은 어쩔 수 없지만 어찌됐든 혼자서 일한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기 때문에.

매거진의 이전글 곧 일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