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혁 Jul 10. 2017

새로운 가방, 그리고 비전공자의 디자인과 제품 기획.


새로운 가방을 만들었다. '여가 도쿄'


뭐가 이렇게 성의없고, 진부하다 못해 막장드라마 플롯도 이렇지는 않겠다 싶을만큼의 어처구니 없는 이름을 가졌냐고 묻는다면, 완벽하게 제대로 알아본 것이다. 의미야 부여하기 나름이라지만, 거북이 등딱지나 고래 등짝에 붙은 따개비만큼이나 일상과 가까운 메신저백을 만들면서는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변명이 영 어줍잖다고 생각할텐데 맞다. 귀찮아서 그랬다. 물 한 모금 들이킬 시간에 지은 이름 '도쿄', 이제 방문 경험이 있는 해외 도시 중에 비행기로 네시간 안에 갈 수 있는 곳은 더이상 남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메신저백을 무척 좋아한다. 예쁘고, 가볍고, 편하다. 등짝에 붙지도 않아서 더운날 함께해도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노트북이 필요하지 않은 날이면 어김없이 메고 나가는 '나 아닌 누군가가 만든 메신저백'. '가방 만드는 사장놈이 네 가방은 어디에다 팔아먹고 왔냐'는 주변의 핀잔에도 꿋꿋하였지만 나는 내가 만든 메신저백을 오랜 시간 갈망하였다. 너무나 만들고 싶었던 가방이었던 메신저백, 의외로 완성된 녀석을 만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느끼는 불편함이 명확하였고, 원하는 디자인도 분명하였다. 이 가방이 누구를 향해야할지 그 대상 역시 분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반 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이 가방은 머리 속에서만 맴돌 뿐, 쉽사리 실물이 되어 바깥세상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꽤나 많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중에 첫번째를 꼽으라면 '여행과 친하지 않은 가방인 메신저백, 어떻게 하면 여행에서도 유용한 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있어서 나쁠 기능은 없다. 뭐든 사용자의 편의를 개선할 수 있다면 있는 것이 없는 것 보다는 좋다. 하지만 '개선'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비용과 무게의 상승을 동반한다. 그렇기 때문에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수많은 기능들 중에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들을 추려내고, 그것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적정선을 찾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싶은 유혹이 지배하는 이 과정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긴 고민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물러설 수도 없고, 양보해서도 안되는 것이기에 포기해서도 안된다.


수십개의 메신저백을 머릿속에 그리고 지우는 지루한 과정의 반복끝에 만들어낸 가방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명료한 목적을 가지게 되었다. 이름하야 '캐리어족을 위한 배려가 있는 메신저백'


한 쪽 어깨에 걸치는 메신저백의 특성 상 크면 안된다. 중요한 짐을 편하게 꺼낼 수 있어야 하고,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어야 한다. 손에 들려 내 뒤를 따라오는 캐리어와의 궁합도 좋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편리한 수납이 가능한 메신저백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가방으로 귀결되었다. 소위 '복대'라고 불리는 녀석을 웨이스트색처럼 만들어 메신저백과 결합을 한 것이다.



메신저백과 웨이스트색 모두 버클을 이용해서 탈부착이 가능하다. (현재 웨이스트색은 탈부착이 되지 않고 디자인이 미흡하여 개선 작업이 진행중이다.) 원한다면 메신저백과 웨이스트색이 모두 결합된 가방을, 그렇지 않다면 메신저백 혹은 웨이스트색만 따로 분리해서 쓸 수 있다. 여권과 지갑, 환전한 돈은 어느 순간에도 내 손이 닿는 가장 안전한 곳에 있었으면 하는데, 그러기에 가장 좋은 곳은 역시 내 가슴팍이다. 일주일정도 메신저백을 사용하면서 가장 쓸만했던 기능인 이 웨이스트색은 현재 디자인도 그렇고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개선작업을 진행중에 있다.



13인치 노트북까지 들어가는 별도의 수납 공간이 있는 이 메신저백은 (메인 공간에 집어넣는다면 아마 14인치까지는 넉넉할 것 같다.) 짐을 넣고 꺼내는 과정에 주목했다. 이는 뚜껑이 있는 메신저백이 더 예쁜데도 불구하고 굳이 뚜껑 없는 녀석을 고집했던 이유이기도 한데, 아쉬우면 내가 만들면 된다. 그래서 만들었다.


대부분의 뚜껑 있는 메신저백은 아래에서 위로 가방을 열도록 되어있다.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이 가방을 열면 뚜껑은 목덜미 언저리까지 올라온다. 키가 작지만 별로 불편한 적이 없었는데 가방 하나 제대로 열지 못하게 되다니, 서러워도 여간 서러운게 아니다. 그것만 있겠는가, 안에 있는 물건 좀 꺼내려 치면 중력에 이끌린 뚜껑은 자연스럽게 가방을 덮어버린다. 이 뚜껑 하나 잡으려고 두 개 밖에 없는 손 중에 무려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꿨다. 반대로. 지구를 이길 힘이 없으면 활용이라도 잘 하면 어떨까 싶었다. 이제 메신저백 속 짐들은 가엾은 나의 낮은 눈높이에도 시선을 허락하였다. 자유로운 두 손은 훨씬 편하게 가방 속 물건을 뒤적일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배려는 메신저백의 뒷면에 숨어있다. 캐리어에 꽂아서 쓸 수 있도록 캐리어 걸이를 만들었다. 일반적인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메신저백에는 없는데, 그래서 내가 만들었다.



이 캐리어걸이 아래쪽에는 지퍼가 달려있다. 지퍼를 닫으면 일종의 오픈포켓이 되기 때문에 그 공간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몇가지 물건들을 집어넣을 수 있다. 물티슈, 당이 떨어졌을때를 대비한 자유시간 하나 쯤 넣어둔다면 간편하게 꺼내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http://bit.ly/2tKgDqA


이번에도 와디즈에서 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8월 6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펀딩은 어느때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가방을 만들어서 전할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많이 하였다. 혹시나 여행에 쓰기 좋은, 그렇지 않더라도 막 굴리기 좋은 가방 하나 필요한 분들이라면 한 번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이번 가방은 만들어내는데 유난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그 외형을 만들어내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단순히 보기에 좋은것만이 잘 만들어진 제품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가방은 유난히 고민의 시간이 길었는데 그 과정에서 디자인을 전혀 전공하지 않은채 그것을 해내야하는 것, 나아가 혼자서 제품을 기획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다. 이 공간을 빌려 그 고민의 결과물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구글에서 'backpack design sketch'라고 검색해서 나온 이미지 중 하나를 가져왔다. 디테일도 명확하고 그림만으로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매우 명료하다.



이것은 내가 거의 맨 처음 그렸던 가방 스케치 중 하나이다. 화학공학을 전공하였으며 그림이라고는 중학교 미술시간 이후 그려본 역사가 없는 나에게 무언가를 그려낸다는 것은 상당히 곤혹스러운 과정이다.



슬프게도 나의 변변찮은 그림 실력은 일년이 지난 지금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믿기지는 않겠지만 이런 낙서같은 그림을 가지고도 가방이 만들어진다. 어쨌든 나의 그림 실력은 한결같이 하잘 것 없으며, 앞으로도 쉬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드는 모든 가방은 내가 그려내고, 나의 손과 생각을 거쳐 만들어진다. (내가 직접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평생 가방만 만들어오신 장인분들이 많이 계신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게되어 조금의 죄책감이 느껴지지만 내가 느끼기에 비전공자가 전공자보다 앞서는 부분은 없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덕 볼 것 없다. 무언가 반전을 바랐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머릿속에 그리는 것을 종이 위에 명쾌하게 풀 수 없다는 것은 많은 제약을 만든다. 거기에 더해 미적감각마저 시원찮은 사람들에게는, 숨은 2%를 채우기 위한 디테일이라는 것이 한여름밤의 꿈보다 덧없이 공간을 부유하는 허상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내가 느끼는 것처럼.


이를 '극복'할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게으른 성정으로 인하여 나는 마땅한 방법을 찾지 않았다. 물론 평생을 공부하고 수련한 사람들이 즐비한 그 영역에 내가 뒤늦게 뛰어든다고 딱히 경쟁력이 생길 것 같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그림 학원에 가서 그림을 배우고 가방 만드는 것을 직접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핀터레스트를 생활화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감각'은 그런다고 쉽사리 느는 것이 아닌 듯 하다.


어찌됐든, 나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끔찍하리만치 예쁜것을 생각해내는 재주가 없는 내가 가지는 한계는 명확하다. 대신에 나는 그 부족함을 다른 영역에서 보완함으로써 '우회'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필요한 기능을 구현하고, 보기좋게 외형을 다듬는다. 그렇게 기획한 제품을 그대로 생산하고 잘 포장한다.


참 성의없게도 써놨다 싶겠지만, 저 과정을 거치면 가방 하나가 만들어진다.


전술했듯이 나는 '보기좋게' 무언가 만드는것을 못한다. 제품을 그대로 생산하고 포장하는 것이야 당연하게 잘 해야되는 것이니 이를 제외하면 남는 것은 필요한 기능을 구현하는 과정 하나인데, 내가 찾은 우회의 실마리는 그곳에 있었다.


개선점을 찾아 기능으로 구현하고, 그 중에 핵심 기능만 추려내는 것.


고객들은 본인의 필요에 의해서 제품을 구매한다. 기능이 우수해서, 혹은 디자인이 뛰어나서, 그도 아니라면 너무나 가격이 저렴해서. 아마 내 가방은 '있었으면 하고 한번쯤 상상했던 기능을 구현한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 정도로 조심스레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나의 가방을 찾아주신 분들께서는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듯 하다.


제품 기능의 변화는 생산 원가와 꽤나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특히 가방은 제조 원가에서 인건비 비중이 크기 때문에 기능이 추가될수록 생산 원가의 상승폭이 가파르다. 핵심 기능을 추려내고, 생산 과정까지 고려하여 구현 방식을 개선해야 원하는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만들어낼 수 있다.



해당 영역에 능력이 있는 분들을 모셔와 함께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개발부터 생산관리, 판매까지 모두 혼자서 해내야하는 입장에서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떼워야지 달리 도리가 없다. 적어도 시작과 동시에 망하지는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개선광정의 여지가 있다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서 일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