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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ul 15. 2016

가방을 만들다. 여섯

뜻밖의 대답


겨우내 외투에 밴 서릿내가 아직 가시지 않은 봄날의 초입. 아마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왜 공휴일에서 빠졌냐고 투덜거리며 출근길을 서둘렀을 4월 5일 식목일의 아침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 가방 재료들을 찾아 머나먼 여정을 나서는 첫 날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G 로저가 남긴 유산을 찾아 떠나는 몽키 D. 루피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가방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가 십수가지는 될텐데, 그 많은 재료들은 대체 어디서 구해야 하는건지. 당차게 문밖을 나섰으나 GPS가 고장난 네비게이션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네이버에게 물어보니 동대문과 신설동이라는 곳에서 가방 만드는 자재를 많이 취급한다고 하여, 우선 동대문으로 향해본다.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에 내려 9번 출구를 빠져나오니 동대문 종합시장이 눈 앞에 나타났다. 그 엄청난 위용에 압도당하여 잠시 멍하였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매장을 소개하는 표지판을 찾아 잠시 살펴보니,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규모에 대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조차 막막하다. 물론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매우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냥 전부 다 돌아보면 된다.


1층은 원단을 파는 매장이 없는 듯 하여 2층으로 올라갔다. 이윽고 펼쳐지는 신세계.


평생 본 옷감보다 많은 천을 이곳에서 하루만에 보았다.


바둑판처럼 잘 짜여진 공간에는 원단을 파는 매장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스와치'라 불리는 원단 샘플을 늘어놓은 진열대 사이로 난 좁은 통로를 따라 수많은 객들이 분주히 오간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드디어 나도 이 업계에 발을 들이는구나 싶어 어깨가 으쓱 한다.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냥 어깨만 으쓱 했다. 현실은,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져가는 스와치 하나를 달라고 얘기하는 것도 힘들어서 진열대 앞에서 한참을 쭈뼛거리는 키작고 왜소한 남자가 하나 있었을 뿐이다.


첫 스와치를 손에 넣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에 쓰이는 원단을 공부하며 후보로 점 찍어둔 '폴리에스테르 600D' 원단이 있다고 말하는 매장이 없었기 때문인데, 결국에는 간판에 'POLY' 혹은 '포리', 'T/C'라 쓰여진 매장들을 돌아보며 가방에 쓰일 것 같은 원단을 찾아다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힘들게 첫 스와치를 손에 쥐고 나니, 이제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사람들 사이를 부지런히 헤집고 다니며 직접 천을 만져보고 스와치를 수집하고, 모르는 것은 상인 분들께 물어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새상가들이 하나 둘 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원단 샘플도 두둑히 챙겼겠다, 집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방 안감을 알아보기 위해 나일론 원단을 파는 매장에 찾아갔다. 한참을 헤맨 끝에 찾아간 어느 나일론 원단 매장. 안감으로 많이 쓴다는 '나일론 210D' 원단이 있냐는 나의 물음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가방  찾으세요? 동대문에는 없어요. 다른데 가보셔야 할 것 같은데? 지금 갖고 계신 스와치도 전부 옷 만드는 이에요.


이거 다 옷 만드는 천이다.


그 날 2천개 정도 되는 원단 매장을 돌아보고 나서 안 사실이다.

동대문에는 가방 원단없다.






안녕하세요. 박인혁입니다. 왜 내가 원하는 여행 가방이 세상에 없을까 고민 하다가 다니던 회사를 작년 초 그만두고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양천가방협동조합의 장인들께서 만들어주시는 제 가방, 첫번째 가방으로 두 번의 펀딩을 통해서 많은 분들과 만났습니다. 약 1,500 분의 소중한 고객님들께서 저의 시작을 함께 해주셨습니다. '가방을 만들다'는 그 첫발을 내딛기까지 제가 겪은 일들을 담아낸 이야기입니다.


마음에 드는 가방이 없어서 회사 때려치고 만든 여행 가방. 출시 반 년 만에 1,500명의 선택을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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