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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Sep 23. 2023

일이란 무엇인가?

38년 삼성전자 외길인생, 고동진 사장에게 듣다.

 동물은 일을 하지 않는다. 잉여 생산물로 거래를 하지 않고 재화라는 개념도 없다. 비슷한 게 있을지라도 일은 인간만이 활용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건 좋은 것이라기보단 애증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용인할 수 있을만한 선을 지키며 일할만큼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게 쉬운 게 아니다. 가진 기술이나 사회적 능력 등에 따라 자연스럽게 되는 사람도 있고,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오래 일하고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는 형태의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인지라 이런 사람의 생각이 궁금했다.


 대한민국 명실상부 1위 기업에서 38년을 일하며 사원부터 사장까지 달성한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의 <<일은 무엇인가>>를 읽고, 저자 북토크까지 다녀온 후기다.


 일은 희열 그 자체면서도 끔찍하다.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지 5년쯤 되는 나의 한줄평이다.  분명 재미있다. 게임 같을 때도 있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고 얻는 희열은 돈주고도 살 수 없다. 하지만 일터에 있는 순간순간이 구역질이 나올 만큼 힘들 때도 있다.


일이란 무엇인가?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 일이란 생계였다. 우리나라 1등 기업의 최고위 임원이 하는 말이라 좀 못 미더웠는데 책과 강연을 접하고 나면 믿을 수 있다. 6남매에 그리 넉넉하지 않은 형편. 첫 월급으로 쌀과 연탄을 사면 동날 만큼의 환경이었다고 한다.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아직 모르겠다. 생계도 생계인데, 생계를 넘어선 지는 꽤 되었다.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다음 혹은 다다음 달을 버틸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진 않다. 한때는 커리어 그 자체이기도 했고, 봉사이기도 했다. 좋은 영향력의 전파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 의미들이 희미해졌는지 선명해지지 않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명확하지 않다. 누군가 당신에게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난 머리를 가로져을 것 같다.


스피드

 스피드 퀄리티는 항상 대립하는 개념이다. 결코 둘 다 챙기긴 힘들기 때문이다. 이건 정답을 딱 정해주셨다. 실무자에겐 스피드가 중요하다. 일의 퀄리티는 리더가 보완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건 보완해 줄 수 없다. 실무자로서 갖춰야 할 가장 큰 자질을 잃은 것이다.


 시장에서 광어를 활어로 사면 2만 원인데, 시간이 너무 오래돼 건어물이 된 광어는 2천 원이다. 실무자에게 시간이란 그런 개념이다.


 팁이 있다면, 기한은 엄수하되 플러스알파를 해서 가자. 리더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 말이다.


자기계발

 퇴근하고 손만 씻고 바로 공부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어려운 길이 되겠구나 싶었다. 여기서 공부라는 것은 어학공부같이 직무와 큰 연관이 없는 공부는 물론 회사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거나 당장 문 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업무 외로 추가로 하는 공부들 모두를 포함한다.


 회사의 성장과 자신의 성장을 동일시하라고 했던 부분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올해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회사에 무엇인가를 바랐던 것 같다. 내 동료에게도 그랬던 것 같고. 그들에게 리턴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두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확실한 건, 자기계발을 놓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굉장히 멍청한 짓이고 동진님의 워라밸에 대한 관점과 연관 지어보면 더 확실해진다 "워라밸은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찾아도 늦지 않다"


사람

우리가 아직 AI와 일하지 않으니 사람은 업무에서 일 그 자체와 더불어 가장 큰 포션을 차지하면서 어려운 분야다.


사람이 부족할 때

 사람이 부족하면 징징대기 마련이다. 일이 갑절이 되고, 일을 해놓고도 맞는지 평가하기 힘들 정도로 의견과 정보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고동진 님의 생각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사람이 없거나 키맨이 나갈 때면 오히려 좋다.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보통 회사에서 스스로를 키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매한 생각이고 대부분 대체 가능하다. 그러므로 내가 대체해 버리면 된다.


 사람이 부족할 때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절대적인 사람이 없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처럼 일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이다.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매한가 지다. 어쨌든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리턴을 바라지 마라

 사람 관계는 책의 한 챕터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다루는 내용이고, 모든 직장인들이 직급에 상관없이 힘들어하는 분야다. 리턴을 바라지 말라는 단순해 보이지만 엄청난 통찰이다.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가 뭔가를 바라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라지 않으면 짜증도 안 난다.


 리턴을 바라지 않고 주다 보면 받는 사람 본인이 안다. 이를 지각하는 순간 리턴을 해준다. 너무 짧은 시간에 리턴을 바라지 마라. 어찌 보면 기다림과의 싸움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내가 편안한 방법이기도 하다.


입에 단 걸 물고 있으면 더 맛있는 게 안 들어온다.

 일을 하다 보면 너무 좋아 보이는 일감이 있다. 이것만 클리어하면 내가 승진할 것 같고 인센티브를 따낼 수 있을 것 같다 싶은 일감들 말이다. 하지만 그 좋은 일감을 독식하면 안 된다. 더 많이 먹으려고 노력해서도 안된다. 남에게 공을 돌려라.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혼자 먹지 마라.


 입에 달달한 뼈다귀를 물고 있는 개는 살점이 두툼하게 붙은 고깃덩어리를 씹을 수 없다. 항상 그 뼈다귀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의 재질

 사람의 마음의 크기를 그릇에 비유하곤 한다. 고동진 님은 그릇의 크기보다 재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도자기 그릇은 크기를 변형할 수 없다. 하지만 놋그릇은 불에 달구고 망치로 땅땅 두드리면 원하는 모양과 크기로 바꿀 수 있다. 부디 놋그릇으로 된 마음을 가져보자.


 포용력은 남을 포섭하는 게 아니다. 또한 위아랫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성격도 무뚝뚝하고 개인사정으로 추상화되어 있는 상사의 마음을 달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상엔 이보다도 심각해 보이는 난공불락의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마주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마치며

 책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고동진 님이 고안하고 정리해 낸 용어와 법칙이 난무하다. 노하우를 농축해 만들어낸 용어와 법칙은 문제 상황에서 직관적으로 떠올리기 좋지만 보통 풀어보면 통용되는 사실인 경우가 많다. 공감 없는 법칙들은 그렇게 무턱대고 삶에 적용되어 기계 같은 해답으로 귀결된다.


 나도 책만 읽은 상태에서는 큰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냥 사회화된 일벌레 그 자체라고 느꼈다. 오늘 북토크를 가보고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의 삶에는 책의 담담함이 담지 못하는 절절함이 있었다고나 할까. 이제 용어와 법칙이 내재화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 서명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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