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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Sep 24. 2023

가난에 관하여

다행이라 해석하는 방법

 오늘 부모님께 200만 원을 또 보냈다. 추석 즈음이라 돈 들어갈 곳이 늘었나 보다. 몇 번째인지, 총얼마인지는 이제 셈하지 않은지 꽤 되었다. 항상 다음 달에 주겠다, 어떤 돈 받으면 주겠다 말씀은 하지만 못 받을 걸 잘 안다. 한 번도 돌려받아본 적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과 같이 덜컥 200만 원 정도 되는 돈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되묻는다.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보통 이런 문자는 고심의 끝자락에 오기 때문에 밤늦게 오기 마련이다. 마침 술을 마시고 있다면 술맛이 뚝 떨어지고 잠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밤 11시 어간에 왔다. 하루종일 돌아다닌 터라 매우 피곤했음에도, 답장도 하지 않았음에도 알림 맨 첫 줄부터 ‘미안하다’와 ‘200 만원’이 보이니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 가뜩이나 최근 일자리를 잃고 실업급여를 수급 중이라 벌던 것에 절반도 못 받는 상황이 되니 더욱 조급해진다.


긍정이라는 마약을 주사하지 않으면, 진짜 매일 잠들지 못할 지경이다.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긍정과 부정의 감정은 마치 좀비 바이러스와 같아서, 한번 시작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같은 편을 포섭해 나간다.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시작으로 조금씩 늘려나가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도 뱉지도 않는다.


내가 있음에

 돈을 보내고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어떻게든 돈을 구해보려고 노력해 보다 안돼서, 고민에 고민 끝에 연락을 하셨다고 한다. 말로는 그럴 땐 그냥 연락하라고 말하지만, 부모님과 동생까지 3명의 생활비를 내가 충당할 순 없다. 현실적으로 그렇다. 당장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인생만큼이나 내 인생 또한 중요한 것이다. 어쩌면 더 중요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다행인 건 궁지에 몰렸을 때, 내가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에게 다행이다.


손 놓고 있지 않는다

 솔직히 경제적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부모님을 믿지 않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부모님이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고정수입이 있지 않고, 일 해놓고 대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건설 쪽이다 보니 여러 사정으로 돈이 묶이거나 이해타산이 맞지 않아 2~3년 일하다가 공중분해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능력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더라도, 그간 쌓인 경험이 다른 파이프라인에서 터져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돕는 게 내 도리 중 하나다.


건강

 나와 다르게 부모님 나이면 이제 신체기관 중 하나 둘 고장 날 때다. 그럼에도 아직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점이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암이나 심장, 뇌질환 같은 큰 병으로 수술을 하시는 것도 아니고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으로 고생하고 계시지도 않는다.


 좋은 음식이나 건강보조제를 섭취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꾸준히 하지도 않으면서 아빠는 술과 담배도 하시지만, 최근엔 끊으려고 노력도 하고 어느 정도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주요했나 보다.

 

 그래도 나이가 나이인 만큼 다음 달에는 비싼 건강검진을 시켜드리려고 한다. 추산해 보니 두 분 합쳐서 한 500만 원 정도 나갈 것 같은데, 누나랑 동생이 돈을 벌지 못하니 내가 감당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지금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게 무척이나 다행이다.


혼자가 아니다

 나는 삼 남매라, 이런 일이 있을 때 든든하다. 지금은 누나와 동생의 수입이 없어 내가 많이 감당하지만 누나도 벌어놓은 돈으로 나 몰래 부모님께 돈을 보내주곤 한다. 혼자였다고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더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혹은 기쁨이 생겼을 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 된다.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

 아마 끝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가 종류가 있을 것이다. 좋은 쪽으로의 끝과 나쁜 쪽으로의 끝이다. 일이 잘 돼서 승승장구할 수 도 있고, 지금의 경제적 문제가 곪다가 터지고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 실패해 정말 나락으로 갈 수도 있다.


 우린 둘 중 어느 곳도 아니다. 최악이 아니라는 점에서 감사할 수 있고, 최고가 남았다는 점에서 그날을 꿈꾸며 행복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지금의 한두 푼에 전혀 주눅 들 일이 없다.


가난에 관하여

 가난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해 왔고 지금도 변함없다. 하지만 가난을 10단계로 나누면, 100단계로 나누면 분명 나보다 힘든 환경이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가난은 돈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충분한 상관관계에 있지만 인과관계는 꽤나 적다. 마음 치유 도서에서 남발하는, 마음이 부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이나 사람을 얻어야 한다, 마음의 그릇을 채우면 된다 등의 말들을 보면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대물림

 나는 가난이 대물림 된다는 데 크게 동의한다. 여기에는 결과론이 적용되어 선대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물려주었으며, 후대는 얼마나 물려주냐로 평가할 수 있다. 가령 부모나 재산은커녕 빚만 물려주더라도 후대가 많이 벌어서 그 후대에게 많이 물려줄 수 있었다면, 물질보다 무형의 가치를 학습시켰다거나 그럴 환경을 제공했음을 뜻한다.


 나는 후자에 속하게 될 것이다. 우스워 보이지 않을 만큼 벌 거니까. 돈은 내 욕망보다는 방어기제에 가깝다.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하지 못한 선택의 순간들이 많다. 분명 수중에 돈이 차고 넘쳐도, 혹시에 혹시를 대비하다 보면 한없이 작아 보인다. 이게 돈에 대한 내 동력이다. 물론 이런 가치는 되물려주고 싶지 않다.


대물림 대한 넓은 생각

 보통 20대에 처음 일을 해서 돈을 쥐어보면, 그 돈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봉 크기로 사람의 경제적 능력을 가늠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월급은 경제적 능력에 일부분을 차지한다. 투자 능력이나 투잡 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상속받을 재산, 가족의 빚, 가족의 건강, 부모님의 노후준비 여부, 부모님의 건강, 식솔의 수, 고용안정...

 위 요소들은 스스로 만들어내기 힘들다. 받거나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보통 이런 요소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생활하고 월급을 고스란히 저금하는 사람, 결혼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사람, 적지 않은 재산을 상속받는 사람 등을 생각해 보면, 연봉이라는 값이 한 사람의 경제적 능력을 평가하는데 얼마나 작은 요소인지 알 수 있다.


마치며

 내가 겪고 있는 경제적 악의 고리가 언제까지 반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보다 이 고리를 선의 고리로 생각하는 게 우선이다. 어쩌면 선의 고리일지 모른다. 발생할 사건은 어쨌든 발생한다. 이에 관해 해석하는 건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가난은 죄도 아니고, 물질적으로만 평가받을 요소도 아니다. 생각함에 따라 언제든 반대 방향으로 치솟거나 곤두박질칠 수 있다.


부디 우리 가족 또한 모두 이런 생각을 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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