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J Sep 17. 2023

계획에서 벗어나보기

J 지수를 낮춰봐요

 마음챙김에 관한 책을 보다보면 계획형 인간인 나의 눈쌀을 찌뿌리게 만드는 섹션이 항상 등장하는데 바로 계획좀 그만세워라다. 읽다보면 그 의견에 마음을 뺏기다가도 정신차리고 현생으로 돌아와보면 다시 계획표를 붙잡고 있다. 


 어릴적엔 그저 앞날이 두려웠었다. 계획표에 글을 적는 순간과 체크박스를 칠하는 순간에는 행복했으니 정신적 상처에 대한 주사를 놓는다고 표현하면 알맞겠다. 20대 중반에 계획에 죽고 계획에 사는 어느 집단에서 보낸 2년 어간의 시간동안 혹독하게 계획형 인간으로 탈바꿈한 채로 사회로 나왔는데, 나와서 보니 이게 나쁘지 않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능력을 하나 소지한 채로 시작하는 게임과 같았다.


계획이란 뭘까?

 나도 정확히 정의하긴 힘들다. 어떤 이에게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기도 하고, 부푼 희망이 되어주기도 한다. 군에서는 이를 의사결정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더 넓은 범위에서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탐구까지 포함된다. 회사에서는 전략이라는 그럴싸한 용어로 계획이라는 단어를 포장하여 사용한다. 결국 모두 비슷한 개념으로 귀결되는데,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분석하고, 최적의 해결책을 단계별로 제시한 것을 말한다.


 살아가며 세우는 다양한 계획도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시간이나 방법 따위로 엮어 만든 글뭉치라는 점에서 위에서 설명한 계획의 정의에 알맞다. 가령 여행계획이나 결혼계획, 노후계획, 당장 오늘 하루를 어떻게 잘 살아갈지에 대한 일일계획까지, 어떻게 하면 내 앞에 주어진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계획의 새로운 모습

 반면, 요즘 들어 내가 다시 생각해본 계획이라는 단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나와 내가 하는 SNS다. 계획을 작성하는 무지몽매한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내가 해줬으면 하는 그럴싸한 생각을 글로 옮긴다. 그 계획 속 나는 내 이상향과 같다. 마치 SNS 속 인플루언서들이 부를 두르고 자유로운 모습을 뽐낼 때를 보듯, 현생의 나는 계획속의 나를 본다. 


 계획을 잘 지키고 이를 추종하며 살게되면 이상향의 나와 가까워질 순 있겠지만 그만큼 현생의 내가 고달퍼진다. 삶의 의사결정권을 계획에 뺏기는 느낌이랄까, 상황평가와 의사결정 권한현생의 내가 가지고 있어야한다. 그게 인간으로서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먹고싶으면 먹고, 쉬고싶으면 쉬고, 자고짚으면 잔다. 하지만 계획형 인간의 삶에서의 그러한 기본권은 이상향속의 내가 가지고 있다. 그렇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에 대해서도 불안감을 느끼게된다. 


 반대로 계획을 잘 못지키게 되면 이상향 속 나로부터 비웃음을 사게 된다. 계획을 못지킨 모습에 스스로 자책하며 자존감이 내려간다. 그렇게 몇번의 비웃음을 당하다보면 비난에 무뎌진다. 이상향의 내가 하는 비난에 무뎌지면 계획은 그 때부터 효율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도구로써의 효과를 잃는다. 코르티솔 자판기가 될 뿐이다. 

 

잘 지키든, 못 지키든

 계획은 도구, 그 자체로 존재해야한다. 마치 동경하는 위인처럼 의미를 부여하면 안된다. 계획만 지키면 이상향의 내가 될 것이라는 환상도 버려야한다. 잘 지키든 못 지키든 그냥 그대로 있으면 된다. 그 다음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보기면 하면 된다. 기쁘거나 슬프지 말기 바란다. 


 잘 지켰을 때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보상을 주거나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엄청난 패널티를 부여하는 것은 분명 좋은 학습 방법이다. 반려동물을 훈련시킬 때도 사용할 만큼 원초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론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그래도 우리가 개나 고양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인생을 뒤바꿀만한 계획을 세우는게 아니라면 너무 큰 기쁨이나 슬픔에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치며

 이 글의 결론은 무계획 한량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계획을 도구로써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래왔던 과거의 나를 위한 메시지다. 나는 계획에 없는 일이 발생하는게 두려웠다. 그래서 항상 이상향의 나를 빚어왔고 그렇게 되기 위해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었다. 


 그렇다고 계획을 안만드는건 아니다. 어쩌면 더 많은 일을 계획하고 일과에 끼워넣고 있다. 다만 이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특히 잘 지켰을때나 못지켰을 때 드는 감정의 기복이 고요하다.

백수치고는 꽤나 빡빡한 일정


 한달 전에 15박짜리 무계획 여행을 다녀왔다. 이전엔 빈틈없는 계획이 쥐고있던 주도권을 나에게로 되찾아왔다. 3가지 간단한 목표만 세우고 첫 호텔만 예약한 다음 비행기에 올랐다. 이전엔 왜 그렇게 계획에 집착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려고 했던게 안되면 그럴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졌다. 계획이고 뭐고 다 나 좋으라고 하는건데, 마음이 불편하면 안되는거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