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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Sep 08. 2023

AI시대의 직업관, 개발자편

내 직업, 이대로 괜찮은가.

 직장에서 긴 시간 동안 멋지게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준 전 삼성전자 사장 고동진의 <일이란 무엇인가>, 직업 그 자체에 대해 그리고 일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 알려준 전 교세라 그룹 회장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 두 책의 저자는 회사를 넘어 직업관을 논하며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오랫동안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반면 부동산 사업가 롭 무어의 <레버리지>, 일본의 일론머스크로 알려진 호리에 다카후미의 <가진 돈을 몽땅 써라> 등을 읽어보면 그렇게 해서는 성공할 수 없고, 회사에 묶이지 않은 주체적인 삶을 살며 성공모험을 떠나라고 말한다. 


 나는 개발자다. 개발자들도 성향이 제각각이라 전자의 삶을 살기도 하고, 후자의 삶을 살기도 한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둘 사이에서 뭐가 더 중요한 거지 하고 생각하다가, 내 직업 자체에 대한 종말을 맞을 수도 있는데 무슨 직업관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증의 AI 녀석이 등장한 것이다. 

체감 상 월별 기술 발전 속도


상황이 너무 나쁘다.

 내 예상보다 기술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진화한다. 요즘 나오는 서비스들에서 out of the box로 제공되는 부수적인 서비스들은 이전에 내가 한 땀 한 땀 해야 했던 반복작업들을 대체하고 있다. 내가 만약 그런 작업들만 하던 직업이라면 아마 진작 대체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 직업에 대해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지속가능한가? 10년, 20년 후에도 비슷한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아마 중고등학생도 각 잡고 시작하면 나랑 같은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 같은데? 


배움의 비용

 개발을 배우는데 필요한 노력과 비용에 관한 허들이 아주 많이 낮아졌다. 물론 예전에도 개발은 누구나 할 수 있다였다. 애초에 개발자들의 지향점은 몇몇 괴짜 회사들을 제하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고 다른 직업군처럼 회사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개발은 더 이상 어려운 분야가 아니다. 누구나 스스로 자신의 웹사이트를 만들거나 개인 서버를 만드는데 더 이상 책을 독파하거나 스터디를 하지 않아도 된다. 쏟아지는 개발 도구와 콘텐츠만 활용해도 초심자가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다. 


AI

 근 10년 간 겪은 메가이펙트 중 독보적으로 ChatGPT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가히 아이폰급 혁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이걸 개발에 써보고, 가늠하긴 힘들지만 어느 정도까지 내 역할을 대체할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적어도 내가 지금 당장 하는 업무는 하지 않게 될 거라는 건 자명하다. 


 법이나 제도, 제단 등이 막아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확실히 옳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언어의 확장

 AI의 연장선이라고 봐도 무방한 번역에 관한 견해다. 우리가 자주 활용하는 한국어로 된 리소스는 사실 전체 웹 문서의 1%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나머지 99%의 문서는 말끔한 번역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특히 개발에선 그렇다. 그래서 외국의 좋은 개발 관련 아티클들을 번역하는 프로젝트가 성행할 지경이다.


 그러던 중 최근 DeepL이라는 AI 번역 서비스를 써봤는데 우리나라 욕까지 매끄럽게 번역해 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미국이나 인도에서 주도하는 개발자 판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어로 작성된 공식문서와 아티클을 읽는 능력이 필수였는데, 이젠 그렇지 않게 된 것이다. 


 언어의 확장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다. 값싼 외국 개발자와 정면으로 경쟁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 개발 붐이 불던 1~2년 전에 5~10년 차 베트남 시니어 개발자와 통역사까지 고용해도 한국 5~10년 차 개발자보다 저렴해서 이 같은 매칭 서비스도 나왔었다. 근데 이제 그 통역사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다

 내 직업이 위협받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겸허히 받아 들어야 할 미래를 미리 알아차렸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행운아요, 더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므로 충분히 행복해도 된다. 다만 어떻게 짙은 안갯속과 같은 활주로에 소프트랜딩 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현업을 충분히 가치 있게 발전시키는 한편, 발전된 기술을 활용해 전혀 다른 분야에서 파이프라인들을 키워 스스로를 브랜딩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배움의 속도

새로 개발을 배우는 사람들이 이 분야를 빠르게 학습할 수 있다는 건 나는 더욱 잘할 수 있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개발 이외의 분야도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령 나는 UI 디자인을 전혀 할 줄 몰랐는데, 스스로 디자인과 개발까지 다 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할 때 디자인 에셋이나 레이아웃을 잡는데 AI가 톡톡히 한몫을 해줬다. 


 그리고 싸고 쉽게 컨텐츠를 제작하는 능력이 만들어낸 범람하는 컨텐츠 세상은 체감될 만큼 직종의 구분선을 지워버렸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나같은 내성적인 사람도 유튜브를 통해 춤을 배우고 인문학과 독서방법을 공부한다.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에는 세상 사람 4명 중 3명보다만 잘하는 일을 2개만 만들라고 말한다. 하나는 직업이라고 치자, 다른 하나 찾기가 생각보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난이도가 확 내려왔다. 우리도 다른 직업군의 전문성을 챙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AI

 나온 지 반년밖에 안 된 ChatGPT는 벌써 개발자로서 나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고, 나는 이 일을 주력으로 하는 한 계속 사용할 생각이다.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할게 아니라면 되이려 이를 발판 삼아 퀀텀점핑하는 게 옳은 방향이다. 


 AI가 시간을 거듭하며 점점 더 나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만큼, 나는 그만큼의 일을 AI에게 맡기고 그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효율성을 꾀하면 될 일이다. 사실 무서울 일이 거의 없지만 그간 익숙했던 일을 못하게 된다는 두려움이 지금 AI를 대하는 태도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알지 못하는 미래이기 때문에 당장 일하다가 와르르 해고당하면 그땐 어떻게 대처할지 가늠이 안 가지만 지금으로선 크게 두렵진 않다. 그동안 내가 손 놓고 있진 않을 거니까.


언어의 확장

 베트남 개발자들이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수 있다면, 나 또한 우리보다 비싼 임금을 받는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의 외주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외주 마켓이 글로벌로 확장된다면 오히려 좋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추후 나오는 AI 번역 서비스를 능통하게 활용하는 능력과 협업하는 능력이다.


마치며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 제도나 협회, 법 등 외부요소가 나를 충분히 지켜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우리의 생각마저 대신해 주는 AI가 등장한 이 순간은 되이려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하고 더더욱 안주하지 않게 하는 삶을 선물했다고 본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두 번이나 활용되는 문장이 있다. 

You can`t lift the stone without being ready for the snake that's revealed (준비 없이 돌을 들어 올리면 뱀이 튀어나온다)

 

 AI로 인해 일자리 다 잃을 거라는 둥,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둥, 나라가 책임져야 한다는 둥 부화뇌동하는 사람들 틈에서 +로 나아가며 없던 가치를 만들어내는 타이탄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돌을 들어 올린 준비가 되었으면 어서 돌틈에 손을 집어넣자. 너무나도 기대되는 삶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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