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글쓰기 강의를 만들 거예요.
팀 페리스의 책 <<타이탄의 도구들>>에서는 하위 75%보다 잘하는 어떤 가치를 찾고 그 분야의 연설가가 돼 보라고 말한다. 자청의 책 <<역행자>>에서는 바보가 더 바보를 가르친다라는 표현을 한다. 생각보다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주장하는 행위는 행하기 쉽다. 그럼에도 난 왜 뭐라도 가르쳐보지 않았던 걸까?
학생 때, 어떤 인강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 하나 있다.
어떤 분야를 마스터해야만 비로소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강 알면 읽을 줄 알고, 적당히 알면 들을 줄 알며, 어느 정도 알면 쓸 수 있고, 마스터하면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시 어떤 개념을 배워도 책을 읽거나 문제를 풀 땐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설명해 보라고 하면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있어 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지금까지도 온전히 기억할 정도로 진리처럼 여기고 살아왔다.
하지만 삶을 돌아보니, 이 관념은 스스로를 제한하는 새장과 같이 작용했다. 그 새장 문을 내가 직접 닫았고 말이다. 물론 그 당시 선생님의 말씀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개념에 대한 이해의 깊이에 따른 공부 방법론 제시를 위한 전초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집에 곰인형을 두고 오늘 배운 개념을 설명해 보는 방법론을 제시해 주셨고, 꽤나 득을 봤으니까.
하나 아둔하고 어린 나는 이걸 누굴 가르치려면 그 개념을 통달해야 한다라는 잘못된 관념으로 발전시켜 버린 것이다. 알을 깨고 나올 때까지 넉넉히 10년은 걸린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입문자가 뭔가를 가르치기엔 힘들다. 나는 오래전 스키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강사로 입사할 당시 나는 스키를 타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선배 강사님들의 3~4일 속성강의를 듣고 첫 강습을 나갔는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이게 진짜 사기가 아닌가.
근데 신기했던 건 내 첫 강습은 성공적이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강습 대상이 태권도장에서 온 초등 저학년 부였기 때문이다. 그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중 내 강습을 받고 3~4일 배운 나만큼 스키를 잘 타는 아이도 생겼다. 위에서 언급한 바보가 더 바보를 가르치는 것을 나는 11년 전에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해보기로 했다. 가르치기.
나는 글쓰기를 강의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책도 쓸 것이다. 올해를 넘기지 않는 게 목표다. 꽤 오래전부터 글에 관심이 많았고, 작성해 왔다. 머릿속에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글쓰기 방법론이 내가 글을 쓸 때면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글쓰기에 술술 적용된다는 점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고, 충분히 가르쳐줄 만한 분야라고 생각했다. 나도 아직 갈길이 먼 바보긴 한데, 더 바보들이 세상에 널려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감사하게도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이 콘텐츠를 세상에 내보내는데 이전만큼 큰 에너지가 들지 않는다. 인생일대의 결단을 내릴 필요도 없다. 맞춤법 머신이나 AI를 활용해서 콘텐츠에 대한 기계적인 검증도 쉽게 할 수 있다. 훌륭한 번역 서비스를 활용해 외국에도 배포할 수 있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큰 허들 없이 공개나 판매를 할 수 있다.
호리에 다카후미의 책 <<가진 돈은 몽땅 써라>>에는 용기를 아끼지 말라는 말이 나온다. 세상엔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되거나 하기에 적기인 일이 있다. 나는 지금과 같이 기약 없는 휴식과 함께 딱히 신경 쓸게 없는, 여유가 있는 시기인 지금 하기에 너무나도 알맞다고 생각해서 전력을 다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