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줄 아시나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북아프리카 옆에 붙은 작은 섬이지만 스페인령인 유럽 대표 휴양지, 카나리아 제도에 있습니다. 뭘 하고 있느냐면, 그냥 일어나면 산책을 나가고 산책이 끝나면 커피를 마시며 배가 고파지면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잠을 잡니다. 말 그대로 그냥 쉬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이와 같은 일련의 행동 패턴을 쉼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데, 이곳에 와서 사람들이 쉬는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사실 이곳에서 테네리페에서 꼭 해야 하는 액티비티들 중 하나인 테이데 산을 오르거나 다양한 해양 액티비티를 즐기는 등 다양한 관광코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내일 모래면 서른인 제가 언제 다시 해외를 나가겠으며 이 섬에 올까요. 또한 공공연한 통념에 따르면, 시간이며 비행기 값이나 내가 쏟은 에너지에 비해 그냥 서울에서의 일상과 같이 먹고 놀고 자는 행동들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면 그건 여행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모든 액티비티를 포기했습니다. 바닷가와 가까운 곳에 숙소 5박을 잡았고, 현재의 제 일과는 서울에서의 주말과 큰 차이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회복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관광과 휴양의 차이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나에게 맞는 여행에 대하여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로 3주 차에 접어든 제 스페인 여행의 마침표를 찍으러 온 곳인데, 2주 동안은 느낄 수 없었던 이번 여행의 테마. 쉼이라는 개념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쉰다는 말을 아주 쉽게 내뱉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에 맞는 쉬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가장 아늑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와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 혹은 왁자지껄한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도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도 다양하게 다른 쉼의 방법을 경험하고 나에게 맞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온 모든 사람들이 쉴 줄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계중에는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쉴 줄 아는 것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해변에 파라솔도 없이 누워있는 사람들과 미소를 띄고 바닷가를 걷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업무와 같은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은, 쉼의 전문가들 같았습니다.
장교 시절에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를 배운 적 있습니다.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 임무 완수를 위해 어떻게든 팀원들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회복시켜 목표를 이루어내라는 뜻인데, 저는 그 단어를 정말 싫어했습니다. 우리를 소모품으로 여기는 것 같았고 공동 목표를 위해 약물을 주입하듯 없는 에너지를 끌어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개념을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팀에 비해 개인은, 와해되면 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만연하게 우리는, 번아웃이나 슬럼프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항상 일이나 일상에 매몰되어있고, 지쳐있죠. 우리는 더 이상 일상 속에서 지속 가능한 하루들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알게 모르게 감기나 암에 걸리듯, 크고 작은 정신질환에 우리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쉽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조급해하지 않고 마음의 질병을 자가 치유하는 능력. 이것이 쉴 줄 아는 능력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실에서는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가볍게 시작하면 당장 내 통장 잔고나 월세, 카드값부터 시작해서 몇 년이면 해결해야 할 집 문제, 결혼이나 부모 부양과 같은 문제들이 있겠네요. 이 와중에 내 미래나 이상향, 이 생의 목적과 같은 심오한 주제는 뒷전으로 미뤄지기 마련입니다.
이와 같은 고민들은 일상과 맞닿아있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 날이나 일터에서 난관에 봉착했을 때 종종 고려되곤 합니다. 더 강박이 심한 사람은 잠들기 전까지 고민을 하기도 하고, 즐겁자고 만난 친구들과 이런 심오한 대화를 꺼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고민들에 매몰되어 매일 안 좋은 생가만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능력은 굉장히 귀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다양한 걱정과 문제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그런 생각들이 가볍거나 한두 개면 그냥 나중에 생각하자고 넘길 수 있는데, 여러 개의 중요한 문제들이라면 항상 그 생각들에 휘둘려 재충전 시간에도 한발 더 내딛으려 시도합니다.
이와 같은 순간에 우리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며 충분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압도당할 만큼 웅장한 자연경관을 본다던가 모두가 쉬고 있는 해변을 걷는다던가 하는 활동들을 통해 우리는 안 좋은 에너지로부터 멀어지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교과서나 유튜브를 통해 접한 유럽의 여유있는 문화는 그저 해변에 누워있는 유러피언들이 찍혀있는 사진 한장이나 동영상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 사진이나 영상엔 그 곳의 날씨, 바람, 걸음걸이, 햇빛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전혀 와닿지 않았거나 와전되어 잘 사는 사람들의 사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무지함의 일종이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경험해보니 이는 감히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유럽인들에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걷기 시작한 아이 심지어 반려동물까지도 휴식을 가지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해변에 있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노부부였다는 점도 인상깊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젓가락을 사용하듯 태어날 때부터 늙어서까지 이들에겐 휴식과 여유가 하나의 문화로써 자리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인프라의 몫이 한몫 톡톡히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엄청난 자연경관과 같은 자연적인 인프라, 방대한 문화유산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인프라, 공원이나 교통시설, 파라솔이나 벤치 같은 인공적 인프라 등 유럽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인프라를 지녔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고, 당연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쉬러 왔는데 아무것 도 없는 허허벌판이라면 누구도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을 것입니다.
여담으로 날씨나 환경, 그로부터 발산되는 분위기는 그 자체로 재화입니다 소비하지 않으면 소모됩니다. 그날의 날씨와 자연의 조합은 일상에서 주말이나 일반적인 하루가 지나는 것과 다릅니다. 스스로가 느끼기에 최고의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면 그날에는 돈이나 시간을 아끼지 않고 투자해야 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병원에서 치료비를 지불하듯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망가진 마음을 치료해준다는데 가진 돈의 전부 인 들 내지 못할 이유는 없죠. 먹고 싶으면 먹고, 쉬고 싶으면 쉬자는 마인드가 없으면 다시금 돈이나 시간에 얽매여 일상에서의 생각의 씨앗이 싹을 틔울 것입니다.
이상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 없는 사람이 처음으로 느낀 쉰다는 감정에 대한 감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앉아있을 줄 알아야 하고, 아무 이유 없이 걷거나 누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을 20분 정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날씨에 감탄을 내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용수철이 계속 압착된 상태로 유지된다면 그 용수철은 그 모양으로 점점 변합니다. 쇳덩어리와 다름없죠. 회복을 통해 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용수철이야 말로 진짜 용수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용수철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리듬이 깨져버린 일상은 꽉 압착된 채로 굳어버린 쇳덩어리와 다름없습니다. 적당한 때에, 힘을 풀고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우리를 되찾아야 합니다. 저는 이번 여행의 막장에서 그 쉼의 방식을 배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각자의 쉼의 방식을 알고 리드미컬하게 실천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