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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Jul 13. 2023

회사생활 포스트모텀

퇴사기 3. 나는 이번 회사에서 뭘 배웠는가?

 당장 한 발짝 앞으로 가기도 바쁜데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는 건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넘어졌다면 먼지를 훌훌 털고 고개를 다시 쳐들고 발걸음을 옮기면 빠르게 넘어진 곳을 벗어나면서 목표한 곳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비슷한 모양의 돌부리에 또 걸려 넘어질 것이고, 익숙한 환경에 또 한눈을 팔게 될 수 있어요.


 오늘은 포스트모텀(post mortem)을 진행해보려 해요. 포스트 모턴은 어떤 사건/사건을 돌아보고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문서나 회의를 뜻하는 용어에요. 저는 이곳에서 뭘 배웠고,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그리고 이를 발판 삼아 더 잘하려면 어떤 점을 보강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한 점을 정리해 보고 앞으로 살아가면서나 다른 회사를 알아볼 때 잊지 않겠습니다.


조직

 조직이 만들어지는 목적은 혼자서 풀기 힘든 문제를 풀기 위해서예요. 높은 수준으로 추상화되어 있고 어렵고, 반복적이고, 긴 호흡으로 끌고 가야 할 문제들은 아무리 능력이 좋은 사람이어도 혼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성원은 그 문제를 같이 풀어주는 대가로 보수를 지급받죠. 레버리지라는 책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노동력과 시간을 조직과 거래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번 조직을 선택할 때, 이 조직이 풀고 싶은 문제에 공감했고 보수에 납득했습니다. 성공적인 거래였죠.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서, 결정적으로 저 또한 성장하거나 퇴보하면서 합류할 때의 마음과 다른 마음가짐이 생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조직을 일하게 하는 방법

 많은 사람이 모이기 때문에, 각각의 가치관에 따라 열정이 쉽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처음 경험한 하는 만큼 돈을 주는 성과급 제도를 보고, 아무리 돈이어도 그렇지 조직을 이렇게 의기투합하게 하고 업무효율성을 보여줄 수 있나 싶었습니다.


 제가 처음 합류했을 때 이 조직의 목적은 MAU였기 때문에, MAU가 5만 오를 때마다 전사에 몇백만 원씩 현금을 뿌렸습니다. 그거 받으려고 다들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아이디어는 쏟아져 나오고, 그 아이디어 다 구현하고도 어떻게든 이쁘고 사용성 좋게 만들려고 디자이너분들 붙잡고 고민하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정말 높은 성과를 내고 성과급도 기분 좋게 받아갔던 기억이 있어요. 조직을 일하게 하는데 일한 만큼 보상해 주는 제도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전사가 동일한 금액을 받아갔다는 게 일부에선 불평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평가제도도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리더는 어렵다

 어쩌다 보니 제 기능조직의 리더가 공석일 때 리더 역할을 대신했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기술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공유해야 할 내용이 있을 때, 관련해서 상급 리더와 소통해야 할 때, Gray Zone의 업무가 있을 때 등등 관리자의 역할을 실무와 함께 했었어요.


 놀랍게도 그 몇 개월 동안 저는 다방면으로 변화했어요. 우선 체력의 측면에서는 탈탈 털렸던 것 같고, 리더십에는 약간 타격을 받았지만 그로 인해 성장했음을 느꼈죠. 기술적으로도 폭풍성장했습니다. 제 개발경력이 꽤나 짧은데, 이 연차에 이 기간 동안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여하튼 리더는 조직의 성과로 이야기해야 하니까, 그걸 다뤄보자면 저는 작년 회고에도 적었듯이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리더십은 어느 정도 여건이 보장된 상태였나 봐요. 자유로운 사람들의 의견을 모두 수용해야 하고, 그렇다고 제가 전권을 가진 의사결정권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다고나 할까요. 그 결과 최악의 케이스 중 하나인 점조직이나 개인플레이를 하는 조직으로 변질된 것 같아요.

향후 몇 년 안에 다른 곳에서 리더를 맡을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번에 배운 점을 셀프 타산지석 삼아 좋은 리더나 매니저 역할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람

 이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제가 사회성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지금까지의 인간관계가 어려웠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곳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유독 어려웠습니다. 반대로 좋은 사람들도 만나 훗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것 같은 예감도 들고요.


친구

 회사사람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배웠어요. 친구들이 회사사람들과 놀러 다니고 여행도 간다길래 정말 의아했는데, 이번 회사에서는 저도 그런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놀러 다닐 수 있는 관계가 생겼습니다. 전에도 이런 사이가 있었는데 점점 소원해지다가 안 만나게 되던데, 이번에도 그럴는지 궁금하네요.


대화하는 방법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바람이 아니라 해님이었다는 말은 어디까지 맞는 말인가. 정말 깊은 통찰이 담긴 이야기 같습니다. 구밀복검이라는 말 아시나요? 입술엔 꿀을 바르고 뱃속엔 칼을 숨기고 다닌다는 뜻인데, 저 이야기에 대입해 보면 해님은 여전히 환한 햇빛을 비추며 웃고 있지만, 뒤에서는 천둥,번개와 우박을 시켜 나그네의 옷을 벗겼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예쁜 단어나 유명한 대화스킬, 합당한 논리로 말해도 상대를 공감시키지 못할 수 있는 반면, 말 몇 마디 없이도 그 너머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그 두 케이스를 전부 확인할 수 있었고 어떤 점을 지향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부 잘 만든 기계 시스템이나 AI로 대체되지 않는 이상, 여전히 사람과 사람이 일할 거예요. 그래서, 어떤 좋은 지식이나 탁월한 논리에 앞서 사람 대 사람으로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기술

 구체적인 내용은 기술블로그에 따로 정리하겠지만, 조금 더 넓은 시야에서 보면 다음의 두 가지예요.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무엇인지, 협업하는 사람들이나 리더들이 좋아하는 모습인지를 알 수 있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말하길 제가 꽤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고 했거든요. 그 모습을 복기해 봤어요.


 간단하게 우리가 실생활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를 생각하면 편하더라고요. 가령 무더운 여름날 에어컨이 고장 났을 때, 우리는 기사님이 얼마나 빨리 오는지 그리고 빠르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현재 내가 겪는 문제를 해결해 줄지가 이 사람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합니다. 개발자도 똑같아요. 불편이나 장애를 겪고 있는 사용자의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해소하는 능력, 이걸 1차적인 퍼포먼스 부를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처음 와서 최대한 빠르게 신뢰를 얻고 싶어 며칠 걸릴 일도 하루이틀에 오류 없이 끝내기를 반복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이후 적응기도 없이 일을 추진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키텍처

 건물을 지을 때 철근을 잘못 박으면 건물 전체에 문제가 생겨서 다 짓고 나서는 수습할 수 없는 것처럼, 소프트웨어에도 철근 같은 개념이 있는데 흔히 아키텍처라고 합니다. 물론 작은 서비스다 보니 대단한 건 딱히 없었지만, 이런 일을 자주 하다 보니 상하위 호환성 문제같이 고려해야 하지 않으면 장애가 나게 되는 문제 들을 자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받은 것 또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마무리

일을 마무리 짓는 것. 제가 마지막에 팀원들과 원온원을 하면서, 제가 고쳐야 하는 것을 말해달라고 했을 때 몇몇 분들이 공통적으로 말해주셨던 부분이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을 시작하고, 진행하는 과정은 좋았을지라도 마무리가 안되면 끝난 게 아니죠. 그리고 잘 되었다고 떠들어댈 수도 없습니다.


 일이 끝나는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까지 최대한 빨리 도달한 다음 상세한 공유를 통해 알리고 그로 인해 더 나아진 점을 마지막으로 공유해야 합니다. 사용량이나 나아진 부분에 대한 데이터가 같이 첨부되면 더할 나위 없고요.


마치며

 사실 1년 반을 복기하는 게 가능하기는 한가 싶었지만 다행히 작년 연간 회고와 올해부터 주간 회고를 본격적으로 작성해서 생각하기에 조금 수월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이번에 이력서를 고쳐 쓰며 느낀 점들이 꽤 많았기도 하고요.


 결과적으로 저는 이곳에서 얻은 게 너무 많습니다. 다들 절 믿어주셨고, 저는 확신을 가지고 일을 팍팍 진행시켜 왔어요. 과정은 좌충우돌이었고, 결과는 비둘기 헬리콥터였지만 제가 여러 방면에서 한 단계 이상 성장했다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한 경험을 한 것 같아서 저는 후회도 미련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만큼 이제부터의 제 인생이 기대되기도 하고요!


여하튼 이를 토대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시간을 더 가져보고 적어 내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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