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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Jul 24. 2023

돈도 써본놈이 쓴다.

퇴사기 5. 금융주사를 맞다.

 카페에서 산신령마냥 유유자적하고 있는데 갑자기 은행앱 알림이 파바박 뜨는거에요. 전 직장에서 정산된 다양한 명목의 돈들이 들어왔습니다. 퇴직금, 연차수당, 잔여월급, 소정의 위로금 등이었는데 제가 대충 계산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서 놀랐습니다. 당월에 근무했던 사실을 빼먹었던거죠. 세금을 안땐 줄 알았는데, 떼고도 이만큼이라니.


 여튼 지금까지 월급으로 받던 금융치료가 따끔한 주사라면 이건 VIP병동에서 1달 요양하는 수준이랄까요. 여러모로 좋았건 안좋았던 쌓여버린 기억들, 아둥바둥 어떻게든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려고 했던 노력들이 다 생각나더라고요. 아직 공장 초기화가 덜된 제 뇌가 번뜩이더니 사르르 치료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문득 든 생각이, 아무리 목돈이여도 한번 통장에 쌓이고 나면 그냥 돈이랑 다를게 없다는거에요. 그래서 지금 이 기분가지고 뭐라도 질러볼까 했는데, 이전에도 성과금이나 인센티브 받았을 때도 뭐 한번 질러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무리 쥐어짜내도 살게 없어서 관뒀습니다. 같은 처지인 회사 동료도 똑같은 녀석이여서 오늘 저녁은 황금 올리브다! 하고 말더라고요.

 

 부양가족도 없고, 돈 들어가는 취미도 없고 이미 다년간 씀씀이도 단련이 되어있어서 급발진도 못하겠고 뭐 어떻게할지 모르겠습니다. 돈번지는 5년차라 못쓰고 남은 돈은 이미 쌓여있는데, 또 쌓이기만 하네요. 그냥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느낌 정도만 들고 생활은 별반 달라지는게 없어요. 


 금융쇼핑을 하자니 무섭기도 하고 때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명품을 사보자니 진짜 관심이 없고, 과하게 맛있는걸 먹어보자니 제 입맛엔 안맞아요. 필요한건 이미 다 있고, 여행도 계획해놨는데 휴양스타일이라 돈이 많이 안들더라고요. 일단 부모님 용돈 좀 드리고 말았는데, 대학병원에서 부모님 건강검진을 한번 추진해볼까 고민중입니다. 몇백만원이 한번에 나가는 지출이라 사실 이건 많이 쫄리긴 해요.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주는 든든함은 미래를 조금 더 넓게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당장 먹여살릴 가족이 없는것도, 회사를 나올 때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았다는 점들도 다 제 복이겠죠. 여튼 이렇게 좋은 일이 하나 추가되며 그 후에는 좋은 일의 연속이에요. 앞으로도 좋은 일들이 더 추가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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