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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Aug 10. 2023

베트남의 오토바이 사랑

베트남 여행기 3. 오토바이 하나로 다 해 먹는 나라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는 감히 문화라고 불러도 될 만큼 지배적이고 그 자체로 독특합니다. 그냥 ’ 오토바이 자체가 엄청 많다 ‘ 에서 끝나지 않고 파생된 문화가 있다던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오토바이 규칙 같은 게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압도적인 물량


  아무리 다른 특징들이 많다고 해도, 엄청난 물량을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일단 도로에는 보자마자 압도당할 만큼 오토바이의 숫자가 많습니다. 처음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데 도로 위에는 몽골의 기마부대를 보는 것 같이 많은 오토바이가 맹렬하게 달려대요. 차보다 오토바이가 많은 환경은 처음 가봐서 혼란스러웠습니다. 마치 자전거 대회를 보는 것 같이 코너링도 일사불란하고 앞, 옆 오토바이와 적당히 간격도 오밀조밀 유지하면서 달리는 걸 보면 귀엽기도 합니다.

외양간에 오토보이를 주차해놓은 모습



패션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오토바이 패션입니다. 아무래도 주류가 되는 문화다 보니 그 주변 기기들이 많이 발달한 모양이에요. 귀여운 귀가 달리거나 알록달록한 색을 칠한 헬멧도 있고, 장갑이나 패들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그중 다른 나라와 달랐던 것 중 하나는, 전신을 뒤집어쓰도록 만든 망토 같은 걸 착용하는 여성분들이 많습니다. 피부 노화나 검게 변하는 현상을 막으려고 살갗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착용한다고 합니다. 그걸 쓰면 덥긴 하겠지만 어떤 부분도 햇빛에 노출이 안되더라고요. 재밌는 건 카페에서 가만히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면, 그런 복직으로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누구는 정장을 입고, 어떤 이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파티복을 입고 내리는 사람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망토를 쓰지 않아도, 주변 시선에 개의치 않고 구두를 신거나 정장, 셔츠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처럼 간단한 마실 정도가 아닌 삶의 일부분이라는 점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문화라고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무법지대


좀 더 겪다 보면 이 안에도 어떤 시스템과 규칙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건 없는 것 같고, 멍청한 짓을 하면 클락션을 눌러주고, 사람 있으면 알아서 피해 가고 뭐 그 정도의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한국과는 많이 달라서 적응이 쉽지는 않았어요.


합법스러운 불법유턴

 가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불법유턴을 해버립니다. 물론 이건 차량도 마찬가지긴 한데, 오토바이에게는 더 거리낌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게 자주 보다 보니까 분명 합법일리가 없는데 다들 그렇게 하니까 합법 같습니다.


2토 바이와 3토 바이

오토바이 하나에 2명이 타고 가길래 저래도 되나 싶다가도, 그랩이라는 앱에서 차 대신 바이크를 선택하면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갈 수 있다길래, 이 나라에선 합법이면서 권장하는 이동방법이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3명이 하나의 오토바이에 타고 가는 형태는 이게 맞나 싶었습니다. 심지어 3토 바이에 개까지 한 마리 태워서 3+a 토바이까지 봤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잘 달리고 있는 오토바이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이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이것도 문화인가 싶고, 내가 하는 걱정이 기우인가 싶기도 하고요.

심지어 외국인이다.

길 좀 건너자

 많은 베트남 여행기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제인 길 건너기입니다. 일단 신호등이 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냥 건너야 합니다. 이 무법지대 앞에서 처음부터 겁먹지 않고 씩씩하게 건널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분명 알아서 피해 간다고 멈추지 말고 직진하라고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에요.


 그래도 몇 번 하다 보니까 정말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면 알아서 피해 가더라고요. 눈치 살살 보다가 교통량이 좀 줄어들면 쓱 아이컨택 한번 해주고 걸어가면 대부분 알아서 피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오토바이 확장팩


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토바이 뒤에 뭘 치렁치렁 붙이고 다니거나 오토바이 좌우에 어떤 도구를 붙이고 다니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자동차에 비해 저장공간이나 여러 디지털 도구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추가로 장착한 게 아닌가 싶은데, 이런 문화에는 그런 파츠들에 대한 개발과 사업이 분명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한 곳에 돈이 돌고, 그렇게 돈이 돌면서 발전하는 게 사업이니까요.


누르고 싶으면 누른다, 빵빵


 우리나라에선 클락션이 매너의 영역이라 정말 말도 안 되는 문제를 일으키거나 일으킬 뻔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습니다. 차와 차 사이에도 그렇지만 보행자의 입장에서도 클락션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비매너 행위로 통합니다.


 왜냐하면 자연경관에는 시각만 관여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쁜 건물들 사이로 꽃과 나무가 조화롭게 놓인 경관을 가졌더라도, 시궁창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그윽하거나 이곳저곳에서 싸우는 소리우는 소리가 들린다면 이는 그 공간에 대한 전체적인 경험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그런 시선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클락션은 차의 감정표현 같았는데, 여기서는 일반적인 언어로 하는 대화 같았기 때문입니다. 누르는 게 리듬감도 있고 꾹 꾹꾹 하며 누르는 게 다르게 들립니다. 약간 거리에서 베트남어로 대화하는 아주머니들 보는 느낌. 근데 그 과정을 거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중 가장 웃겼던 건 대부분이 오토바이의 클락션이라는 점입니다. 벌꿀오소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벌꿀오소리는 상대가 코끼리던 사자던 마구 덤벼대는 깡이 좋은 동물인데, 베트남 오토바이들이 딱 그렇습니다. 상대가 벤츠든 트럭이든 그냥 빵빵 눌러댑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눌러댔으면 누구 하나 내려서 싸우고 할 텐데, 그냥 한바탕 꾹꾹 눌러대고는 자기 갈 길을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베트남의 오토바이 문화는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공간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겪는 모든 과정을 모빌리티 경험이라는 용어라고 부른다면, 오토바이는 폭풍 성장 중인 베트남에 꼭 알맞은 빠르고 목적중심적인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는 수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차 문제


우리나라에 이런 문화가 적용되었을 때 좋은 점은, 현재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인 주차입니다. 모빌리티 경험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데, 어떤 곳을 가기 위해 그곳의 주차 가능 여부부터 확인해야 하고, 돌아와서도 동일한 경험을 해야 합니다. 오토바이의 경우 그런 제약이 없다시피 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규제가 생긴다고 해도 차지하는 공간이 매우 적고 가벼워서 적은 땅에 많은 주차대수를 할애할 수 있고, 혹시나 문제가 생겼을 때도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이른 모빌리티 경험


  아무리 저렴한 차량이라도 이를 구매하고,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은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는 나이인 19세에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생활반경이 넓어지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모빌리티 경험을 이른 나이에 시작하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입니다. 오토바이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자욱한 우리나라에서 오토바이로 그 경험을 시작하기엔 너무 리스크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베트남이라면 다릅니다. 대부분 어린 나이에 모빌리티 경험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시작할 수 있고 그 경험을 통해 없이 살 때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저희도 지하철이나 버스가 잘 되어있지만, 내가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빠르고, 빠르다


많은 서비스들이 오토바이를 기준으로 돌아갑니다.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긴 한데, 왜 여기가 유독 빠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서비스든 정말 빠릅니다. 세탁서비스를 호출하자마자 오토바이가 와서 수거하고, 끝나고도 오토바이로 쓱 주고 떠납니다.


그랩과 같은 모빌리티 인프라가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는 것도 좋은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라이더와 운전자 간에 별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랩이 경로를 표기해 주거나 결재를 대신해 주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니 라이더는 운전만, 사용자는 라이딩 기반 서비스를 이용만 하면 돼서 아주 편했습니다.


시끄러운 건 못 참아.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동네가 많이 시끄러워지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건사고도 많을 것입니다. 사고로 인한 사망률도 꽤 높다고 하며 베트남도 칼을 빼들 것 같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이미 우리도 비슷한 시기를 겪었을 것 같기도 하고,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겪은 경험들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개개인에게는 굉장한 모빌리티 경험을 선사하고 두 번째 다리가 되어줍니다. 이를 레버리지 삼아 시드를 마련하거나 생계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하나의 문화로 평가받을 가치가 있는 베트남의 오토바이 문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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