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기 4. 중국인 부부의 말하기 방법
호이안 시내에서 기분 좋게 마사지를 받고 나와서 야외에 미리 준비해 주신 애프터 티를 얼얼한 등을 어루만지며 마시고 있었습니다. 호이안이 날씨는 자비가 없어서, 바람불 일이 별로 없는데 바람까지 불어주어 아주 기분이 상쾌하기까지 했어요.
그러다 한 10분쯤 지났을 까, 중국인 가족이 들어왔습니다. 70대 노부부와 40대쯤 돼 보이는 부부, 1명의 자식까지 5명이었어요. 예약 내용 확인과 진행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노부부와 자식은 가만히 있었고, 40대 부부가 커뮤니케이션을 했습니다.
문제는, 마사지샵 측의 실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인 가족의 예약은 문제없었는데 어떤 착오가 있어 당장 마사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매니저는 어쩔 줄 몰라서 죄송하다고만 하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되겠지만, 정말 어쩌다가 이와 같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일이 발생합니다. 사람이 문제일 때도 있고, 시스템이 문제일 때도 있고, 정말 사소한 실수 하나가 이렇게 큰 결과를 낳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매니저 두 명과 중국인 부부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이 부부 중 남편의 말투였습니다. 이 사람의 문제 해결 방법은 자신의 정당성을 목소리를 높여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어는 유창했지만 들리는 단어는,
- 내가 예약했고 제시간에 왔는데 왜 못 들어가냐.
- 내가 왜 기다려야 하냐?
- 안된다.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은 단 한 치도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고, 정당성만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언성이 높아지니 주변에 있던 다른 외국인들도 쳐다보고, 하나 둘 일어나는 게 보였습니다.
제삼자의 입장인 제가 볼 때, 정말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매니저는 계속 위축되고 미안하다는 말과 애꿎은 휴대폰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신기한 건 그 남편의 아내인 여성분이셨는데, 대화의 방식이 많이 달랐습니다. 똑같이 영어를 유창하게 하셨지만 목소리는 일반 대화와 다를 게 없었고, 약간의 웃음을 섞어가며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귓동냥으로 들어보니 매니저와는 시간과 잔여 일정을 조율하고 가족들과 중국어로 소통하며 진정시켰던 것 같아요. 휴대폰을 같이 보면서 이것저것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매니저와 남편이 그렇게 기약 없는 실랑이을 하는 동안 또 다른 매니저와 대화하던 아내 분이 어떻게 정리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문제를 정리하고, 다섯 가족 다 같이 마사지 샵으로 들어가면서 상황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가족은 결과적으로 거의 원하는 결과를 얻었지만, 매니저들을 비롯한 관람하던 그 주변인들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배려를 원한 건 아니었지만 더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음에 아쉬운 것이겠죠?
위의 중국인 남성의 태도를 계속 지켜보며 들었던 의문은, 왜 그 상황에서 제일 좋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본인의 논리를 고집하는 거지? 였습니다. 내가 예약한 코스, 그거 아니면 안 돼.라는 논리였는데, 분명 그건 안된다고 했었거든요.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서로 기분 좋은 상태에서 “내가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어쨌든 사람과 하는 일이니까요.
이번 여행에서 저도 스스로 어떤 상황이든 100%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호텔에서는 있을 거라고 상상도 안 한 바퀴벌레가 나왔고, 체크아웃 시 손도 안 댄 물값을 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마다 그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웃으며 말해봤습니다. 바퀴벌레가 나온 방은 5분 만에 다른 방으로 변경되었고, 물값은 그냥 주고 나왔습니다. 단돈 500원 이어도 쟁취할 만 하지만 뭐 그럴 수 있잖아요? 버럭버럭 화를 내며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게 제가 생각하는 더 좋은 결과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솝 우화 중, 해님과 바람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결국 나그네의 옷은 햇빛이 벗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그 상황에서 본인의 권리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게 현명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을까 합니다. 예전에 가수 이석훈이 서바이벌 예능에서 후배 가수들에게 예의 있게 말하라고 했던 게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