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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Nov 03. 2022

남편과 가족빼고 다 바꾸라

진짜 회복의 시작

그렇게 몇 달을 수심 11M 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안, 나는 그동안 했던 모든 노력을 멈추고 그저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했다.


더 이상 무엇이 더 나빠졌는지 셈하기도 포기했을 즈음, 한 설교가 무기력해진 나를 건드렸다.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이야기였다. 아브라함이 100살에 얻은 아들 이삭을 낳기 전 그는 긴 기다림에 지친 아내 사라에게 이런 원망의 말을 듣는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창세기‬ ‭16‬:‭2‬ ‭KRV‬‬

 

사라도 나와 똑같은 심정이었을까. "그렇게 노력해도 내가 회복하는 걸 막으시잖아요!"라고 절규했던 나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설교에서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하나님은 막으신 적이 없어요. 과한 불평입니다. 100세에 아들을 주시겠다고 분명 약속했고, 그 시간을 함께 기다리고 계신 겁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곤 감사일기를 쓰는 것을 제안하셨다.


함께 듣고 있던 남편이 나에게 하는 말이라는 듯한 눈빛으로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무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뒤로 연속 3주를 마치 내가 했던 모든 비난과 원망을 하나하나 맞받아치는 듯한 설교를 듣고 나니 날카로웠던 칼날이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하루 종일 몸을 긁느라 습관처럼 '살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했던 어느 오후, 나는 나에게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지금도 여전히 살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가족들과 남편을 뒤로하고 싶을 만큼,

내가 살아내 온 모든 삶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앞으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쉬고 싶을 만큼?


그 질문에 나는 나에게 이렇게 답해왔다.


아니, 사실은 죽고 싶었던 게 아니야.
단지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죽을 만큼' 싫었어. 내가 계획하고 상상했던 것과 너무나 거리가 먼 삶. 한 번도 경험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 고통스럽고 초라하고 쓸모없는 삶.
그걸 받아들이는 게 죽을 만큼 힘들었어.

아- 그렇구나. 사실은 이런 마음이었던 거였구나.

예전에 시간을 때우려고 봤던 드라마에서 들었던 감명 깊은 대사가 떠올랐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많이 실패했어

그때마다 우선 고개를 들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생각해

여기서부터 미래를 바꿔

일어나버린 일도 다른 사람도 바꿀 순 없지만

나와 미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꾸미는 사랑에는 이유가 있어> 10화





죽고 싶지 않은 거라면,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故 이건희 회장의 말처럼 남편과 가족 빼고 다 바꿔야만 했다. 일그러진 것들을 하나둘씩 바로잡기 위해서.


가장 먼저, 나는 처박아두었던 감사일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곤 다시 펜을 잡고 중단했던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주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원래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나는 정말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에너지와 시간을 빌리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애써 아쉬운 소리를 했지만 거절당하는 것이 무섭기도 했다. 그저 혼자 이겨내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으로 보건대, 나는 그럴 힘이 없었다. 지금의 고통은 나 혼자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부터 미래를 바꾸기 위해, 나는 그나마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너무 위태롭다고,

잠깐이라도 좋으니 기도해달라고,

갇혀있는 것 같은 나에게 가끔 안부를 물어달라고,

너무 힘드니 손 잡아달라고.


그러자, 눈을 질끈 감으면서 내민 나의 손을 많은 사람들이 잡아주었다.


어떤 이는 마음을 다해 함께 아파하며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고,


어떤 이는 자신이 바닥까지 갔을때,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 느꼈을 때 내가 내밀어준 손과 기도를 기억한다며 매일매일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안부를 물어 주었고,


어떤 이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중에도 내가 잠시라도 웃을 수 있도록 귀여운 동물 사진이나 재미있는 짤을 보내주었고,


어떤 이는 잊지 않고 꾸준히 좋은 글귀와 말을 보내주며 나를 위로해주었고,


어떤 이는 그동안 혼자 버텨온 것도, 지금 와서라도 마음껏 이야기하고 털어놓는 것도 너무 잘했다며 나의 모든 사정과 선택을 지지하며 응원해주었다.


모든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나의 곁을 내어주었더니 조그만 온기들이 촘촘히 그 틈을 메꿨다.


또한 나는 고집스럽게 치료를 진두지휘하던 태도를 내려놓고, 남편이 제안하는 치료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가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자율신경 실조증과 장누수 증후군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한의원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진짜 회복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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