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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Nov 01. 2022

수심 11M의 우울

슬픔의 5단계(4) -우울

“아버님, 어머님 저 이제 정말 갈게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시댁에서 3개월 동안의 요양을 마치고 다시 신혼집으로 올라가던 날, 시어머니와 내 눈가는 벌게져있었다. 다시 못 보는 것도 아닌데, 헤어짐의 아쉬움과 그동안의 감사함으로 목이 메었다. 휴대폰 사진첩에 남아있는 시부모님과의 추억만큼이나 정이 많이 쌓여버린 탓이다.


더 시댁에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대로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마냥 시댁에 있을 수만은 없었고, 아직 한창 신혼인 남편을 계속 혼자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 요양기간 동안 책을 읽으며 자율신경과 자세, 척추 정렬이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정렬을 바르게 함으로써 난치병을 치료하신 분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나도 관련 운동을 하면 혹시 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시도해볼 참이었다.


차 안에서 시부모님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번에는 혹시나 나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린 불안함이 마구 뒤엉켜 한동안 말없이 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속절없이 2개월이 흘렀다. 여전히 음식을 제한하고, 1:1pt까지 받으며 하루도 빼먹지 않고 2시간씩 척추 교정 운동을 했지만 큰 수확은 없었다.


체력, 자율신경 실조증, 알레르기, 장누수 증후군 그 어느 면에서도 보상받지 못했다. 나는 분명 죽을힘을 다해 달음질을 하고 있는데, 내 건강은 같은 곳에서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었다.


그 사이 시댁에서 아주 조금 호전을 보였던 수면장애는 더욱 악화되었다. 전과 같이 아주 조금만 무리해도 밤이 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고, 2시간에 한 번씩 깨는 것이 당연해졌다. 그런 밤이면 어김없이 알레르기로 온 몸이 간지러워 피부가 벌게지도록 긁었다. 나는 '잠자는 것'이 두려워졌다.


자다가 새벽에 깨서 다시 잠들 수 없는 날이면 나 자신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무 힘도 들일 필요 없는 '잠들기' 조차 하지 못하는 내가 미워서 견딜 수 없어 내가 나를 벌했다. 자다가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깬 남편이 나를 멈추지 않았더라면 몸에 더 많은 상처가 났으리라.


3개월간 시댁에서 빈틈없이 사랑받다 다시 혼자가 되니 외로움은 배가 되었다. 9시 반을 넘겨 자면 온몸이 간지러워지는 탓에 일찍 자느라, 하루에 고작 2시간도 못 보는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나머지 22시간은 혼자 보내야만 했다. 쉽게 지치는 몸과 아무거나 먹을 수 없는 음식 알레르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여전했다.


내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집에서, 텅 빈 눈으로 창밖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벌써 10월이야?

곧 1년이 다되어 가네-"


이때부터였다.

자율신경 실조증에 우울증까지 곁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진짜 나락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무들이 하나둘씩 예쁘게 물들기 시작했고, 6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던 투병생활은 만 1년이 다되어가고 있었다.


스스로 어림짐작 정해놓은 회복 기한이 다가와도 아무 차도가 없자, 내면 깊은 곳에서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던 생각들이 나를 덮쳤다.


‘걱정과 슬픔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죄책감.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아무 보상 없이 악화되는 상황에 대한 분노.


이 모든 감정은 1년 내내 기도해도 들어주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절규로 바뀌었다.


나는 삿대질을 하며 따졌다. “그렇게 노력해도 당신이 내가 회복하는 걸 허락하지 않고 막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예요? “


그동안 홀로 바닥을 기어 다니며 드린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사랑의 아버지'는 나에게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었다. 간절했던 만큼 분노를 넘어 배신감까지 들었다. 기도를 멈추고 소망하기를 멈추며 위로받기를 거절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텅 빈 집에서 그저 살기 위해 꾸역꾸역 밥을 먹는 내 모습이 흡사 사육되는 가축같이 느껴졌다.


좋아하는 것을 먹는 즐거움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행복한 시간을,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 채 그저 살을 찌우기 위해 먹는 짐승.


생전 처음으로 '살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는 몸으로 평생 누군가에게 기대 살아야 하는 삶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하나씩 말려 죽일 거면 그냥 한방에 죽이시지'라는 서슬 퍼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불면증으로 다시 잠들지 못하는 새벽 3시, 잠에 든 남편을 보며 남편이 나의 장례식장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 와중에 고통스럽게 죽긴 싫어서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다가 다시 잠깐 정신을 차린 날이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무서웠고 정말로 실행에 옮길까 봐 무서웠다.


흔히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내가 느낀 우울증은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 11m,
그 절벽 위에 안전장비 없이
서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모든 기력도 소망도 잃은 채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수심 11M의 우울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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