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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Nov 01. 2022

꽃다운 서른, 밥벌레가 되었다.

환자와 백수 사이

다음 달까지만 일 해주면
좋을 것 같아.

결국 이렇게 되었다. 자율신경 실조증에 걸린 이후 우연히 지인을 통해 연결된 아르바이트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더 이상 일이 많지 않았고, 정규직이 아닌 나는 자연스럽게 '잉여 인력'이 되었다.


간단한 일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밥도 함부로 먹을 수 없고 시도 때도 없이 피곤해지다가 알레르기가 올라와 몸이 간지러워지는 탓에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다 얻게 된 소소한 아르바이트의 기회에 얼마나 뛸 듯이 기뻐했던가.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고 그제야 내 안에 반드시 '수술이 필요한 생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꽃다운 서른, 나는 정말 밥벌레가 되고 말았다.




'소소한 돈벌이도 끝났구나. 그래 지금까지 사정을 이해받고 일을 할 수 있었으니 감사하다.'라고 머리론 생각하고 있는데, 내 마음 구석 한편엔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감정들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혐오와 분노였다.


자율신경 실조증에 걸려 더 이상 구직을 생각할 수 없게 된 이후 가장 속상하고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바로 '돈'이었다. 파워 J인 나의 머릿속에는 '내가 미리 10년 치로 계획했던 우리 집 재정 수급 계획이 깨져버렸잖아!'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온몸이 간지러워 한숨도 못 자고 병원에 가면서도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린 나는, 병원에 한 번가면 몇십 만원씩 손에서 달아나는 돈에 시선이 꽂혀있었다.


병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나는 사실 나를 미워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를 '식충이'라고 표현하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다.


우리 가정이 노년까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재정 계획을 깨뜨린 사람. 이전만큼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사람. 심지어 그 작은 일자리마저 잃은 사람. 비싸고 맛없는 유기농식으로 밥 먹느라 돈을 줄줄 쓰는 사람. 숨 쉬고 잠을 자고, 드라마를 보고, 유유히 산책하며 어김없이 돌아오는 괴로운 하루를 때우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그동안 소소하게 벌고 있는 돈으로 나는 애써 나 자신에게 눈치를 보며 용서를 빌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벌어오잖아. 그래도 금방 나을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줘.'라며. 하지만 모든 안전장치가 사라지자 나는 자신을 혐오하고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가족이나 지인들 중 누구라도 내가 병원에 다닐 때, "에휴, 돈이 많이 들어서 어떡하니."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우리 남편은 항상 나에게 "돈 걱정 같은 거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치료 다 받아보자."라고 했다.


여러 날을 생각하다가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사실 아빠를 원망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목회자 집안이었다. 번쩍번쩍한 대형교회 목사가 아닌, 지나가다 보이는 상가에 하나씩은 있는 그런 개척교회였다. 받는 돈은 없었고 우리 가정이 써야 할 몫까지 교회에, 어려운 성도들에게 쓰였다.


학창 시절부터 대학생 때까지 뭔가를 마음껏 소유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 집 사정을 뻔히 아는 나는 초등학생들이 흔하게 하는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자라면서는 모자란 재정에 한숨 쉬는 엄마를 위로하는 속 깊은 막내딸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소명에 따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 아빠의 모습보다 지금 당장 내 앞에 있는 모자람이 더 크게 보였다.


어느샌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그래서 얼마를 버는지가 되었던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빠가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다른 집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원망이 자라나고 있는 것을 서른 살이 된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부끄러움과 충격에 휩싸였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 구절이 있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7‬:‭2‬ ‭KRV‬‬

나도 모르게 아빠를 원망하는 그 원망은 다시 정확히 나를 향했다. 돈을 벌지 못하는 나는 어떻게든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했고 그것이 어려울 때마다 매번 절망하고 실망했다. 나는 이 말씀을 떠올리곤 그 자리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곧이어 회개했다. 그런데 30년 묵은 원망은 쉽게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마음을 붙잡고 원망을 떨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하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솔직한 나의 고백에 엄마는 의외의 대답을 해주셨다.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런데 있지, 네가 말한 그 위기의 순간들이 엄마에게는 은혜의 시간이었어. 정말 끝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신기하게 채워지고 열어주셔서 결국 길이 생기더라고. 엄마에게는 그래서 은혜의 기억으로 남아있고 지금까지도 힘 있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단다."


그 순간 나는 어쩐지 '아- 이제 원망하지 않아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엄마도 원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30년간 엄마와 나를 동일시하면서 엄마의 원망까지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날부터 나는 엄마의 감정이 내 감정이 될 필요가 없음을, 엄마와 나는 서로 다른 사람임을 인정했다. 그렇게 비뚤어진 시선을 수리하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비록 '돈을 벌어오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어도, 나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오늘도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괜찮다는 가족들.


그리곤 투병 이후 처음으로, 더이상 어떤 직책이나 하는 일로 설명하지 못하는 날 것의 나를 마주했다.


일을 하며 돈을 벌지 못해도,

탁월함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어도,

세상에 큰 기여를 하지 않았어도,

주부 9단으로 거듭나지 못했어도,

그저 구질 구질한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

할 수 있는 고작이더라도,


존재 자체로, 존재의 이유가 되는 나를 마주했다.


그리곤 아직은 어색한 말로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그동안 홀로 병이랑 싸우느라 애썼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쉬고 회복하는 거야."


그렇게 나는 더 이상 사람이라는 존귀한 존재를 돈과 하는 일로만 판단하지 않겠노라고, 각자의 자리에서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사람만의 장점과 아름다움을 먼저 바라보자고 진심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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