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니 Nov 08. 2022

정말이지, 살고 싶어 불평을 버렸다.

부정적 생각을 바꾼 나만의 방법


인간은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뇌에서 '노르 아드레날린'이라는 물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은 호르몬의 일종인데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다.


한편으로는 '베타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도 있다. 아무리 불쾌한 일이 있어도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뇌에서는 몸에 좋은 호르몬이 나온다.


힘들고 괴로운 일을 맞닥뜨렸을 때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 노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지만 그 일을 뛰어넘어 극복하면 뇌내 엔도르핀이 나오는 것이다.


뇌내 엔도르핀은 면역세포를 건강하기 만들기 때문에 에이즈와 같은 질병에도 저항할 수 있게 한다.


-하루야마 시게오(오시연 옮김) 『뇌내 혁명』



어릴 때부터 나는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많은 경우 '섬세'와 '예민'이라는 말 뒤에는 '생각이 많은'이라는 말이 따라오곤 한다.


그렇다. 나는 항상 생각이 많은, 스스로조차 어찌할 수 없는 철저한 전두엽 인간이었다. 하지만 대개 많은 생각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때보다 부정적으로 흐를 때가 많았다.


아프기 전에도 그랬다. 나는 항상 과거의 슬픔과 수치, 미래의 걱정까지 모두 끌어안았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던, 이미 벌어진 일들은 언제나 머릿속에서 수십 번씩 재생되었다. 때로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때로는 습관처럼 속절없이 그 생각들에 빠져들었다. 어떤 상황이 생기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부정적인 생각의 길을 6차선 도로마냥 넓게도 뚫어놨다. 


내가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는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라는 말이었다.


'아니, 상황이 거지 같은데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 거 아냐?'

'힘든 상황에서 억지 긍정이 무슨 도움이 되나? 오히려 부자연스러워.'

'그냥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 위로하라는 말 같은데...'

'인생이 해맑은 사람이 만들어낸 흔한 오글거리는 명언이지.'


라는 말들로 소위 '긍정적이려고 애쓰는'것들을 거절했었다.


나는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만큼 부정적인 상황에 맞닥뜨리면 더욱 깊고 진한 부정적인 감정, 불안, 짜증을 느꼈고 이를 그냥 담아만 두기엔 내 마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것을 긍정으로 바꾸는 것은 마치 물살을 역류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한계에 다다르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항상 배설하듯이 내뱉었다. 그래야만 스트레스가 풀리는 줄 알았다.


자율신경 실조증에 걸린 후에도, 1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후회와 불평으로 보냈다. 당연하게도 1년간은 불평할 소재들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불평 파티의 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죽이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꾸기로 결정했고, 달라져야만 했다.


요양하다 감명 깊게 읽은 '뇌내 혁명'이라는 책이 다시금 떠올랐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온 몸을 돌아다니며 세포를 파괴하는 호르몬이,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면역을 강하게 하는 호르몬이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긍정'은 단순한 억지나 눈물겨운 자기 위로가 아닌 실제적인 생리 반응을 가져오는, 진짜 내 몸을 위한 일이었던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지금에서야 나는 비로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현재는 이렇다 할 치료법도 없으며, 심지어 자율신경 실조증의 큰 원인 중 하나는 스트레스이다. 내가 불평을 한다고 내 병이 빨리 낫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병이나 악화돼서 불면증과 희귀 알레르기와 간지러움만 더할 뿐.' 불평을 한들 어떤 상황도 나아지지 않으며 어느 것 하나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이 없었다.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이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계속 불평만 하다 진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울며 겨자 먹기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습관을 연습할 것인가.


그렇게, 나는 정말이지 말 그대로
'살고 싶어서' 불평을 버렸다.



하지만 30년간 습관이 되어버린 부정적인 생각들과 익숙해진 자기 연민을 긍정으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껏 노력해도, 출근길 지하철에 몰려드는 사람들처럼 매번 다시 몸을 욱여넣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것들을 모두 긍정형으로 바꾸는 것은 흡사 쉬는 시간 없는 스쿼시 운동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생각 자체를 비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또한 나에겐 너무나 어색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특단의 조치를 세웠다. 바로 '우리 남편인 것처럼 행동하기'였다.


나와 달리 남편은 참으로 단순한 사람이다. 잠도 잘 자고 예민하지 않고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복잡한 일이 생겼을 때,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였다.


언젠가 나는 그 말이 너무 장난처럼 들려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차피 생각해도 답이 없는 문젠데, 이미 벌어진 일 가지고 계속 끙끙대고 슬퍼해야 해? 왜? 그냥 잊어버리고 속 편하게 사는 게 낫지. 그러다 보면 또 길이 생겨. 상황은 어떻게든 수습되게 되어있어."


내가 혹시나 낫지 않을 미래를 반복해서 묵상하며 우울의 웅덩이를 파고 있을 땐 이렇게 말했다.


"이 치료를 해도 낫지 않으면 어떡하지?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굳이 미리 생각하고 걱정할 필요 없어!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몰라. 지금 하는 치료로 갑자기 낫게 될지도 모르는 거야. 그냥 너는 편안하게 치료를 받으면 되는 거야."


그의 시제는 나와는 달리 항상 현재에 있었고 심플했다.


한계에 봉착한 나는 비로소 이렇게 내뱉었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그렇게 바보처럼 허허 웃어버리며 생각 잘라내기를 시작했다.




내가 특단의 조취를 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대학원에서 임상심리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근황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남편을 따라하는 중이라고 말했더니 그 친구가 말했다.


"와, 정말 잘하고 있는데? 그거 심리 치료 기법중에 하나야. 모델링이라고 어떤 대상을 관찰하고 그 사람이 하는 걸 똑같이 따라하는 거야.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이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걸 이미 봤으니 확신을 가지고 그 행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체득하는거야. 원래는 심리 상담 받으면서 치료받는 건데 혼자서도 정말 잘하고 있네!"


아- 나는 나도 모르는새 제 살길을 찾고 있던 모양이었다. 심리를 공부하는 친구를 통해 확인을 받으니 더욱 확신이 생겼다. 계속해서 자기 연민과 슬픈 생각들을 빠르게 잘라버리고,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는 것을 부던히 연습했다.


그러다 어느날, 나는 예기치 않게 실무 경험을 하게 된다.







 







  










 






이전 13화 남편과 가족빼고 다 바꾸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