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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

본질이 희미해진 시대

에세이

by 인드라망






본질을 잊은 사람들은 괴상망측한 수단을 이용한다. 그러면서 본질은 변질되고 사람들은 본질이 뭐였는지조차 잊어버린다.

식당에 가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왔으며 여러분은 굉장히 허기지다. 나는 배고프면 짜증이 나는지라 맛 좋은 식당을 찾는다(맛이 없어도 화난다). 그때 우리는 어떤 식당을 찾는가? 동네에 소문난 맛집을 찾을 수도 있고, 예전부터 잘 알던 좋은 식당 찾을 수도 있다. 어떻든 맛있는 집에서 먹고 싶어 하는 건 변함이 없다. 그럴 때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식당의 조건은 음식의 맛이다.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 맛있는 집은 계속 찾게 된다.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그 집에서 먹을 것이다. 뭐 어디 저 해외에서 유학을 갔다 왔다는 어느 셰프의 화려한 경력 따위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다. 프랑스든지 이탈리아든지 무슨 상관이람. 난 그냥 배를 채우고 싶은데다가 이왕이면 맛 좋은 음식으로 먹고 싶다. 바로 이거다. 맛있는 음식! 단순하다. 핵심은 이런 본질이다. 인스타 감성을 원하는 사람들을 주 고객층으로 삼아서 식당 내부를 꾸미고… 20대 여성들을 목표해서 카페를 만들고… 이런 데에 정신이 팔릴 게 아니라(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으면 최고지만) 전 연령이 만족할 맛 좋고 가격 적당한 음식을 내놓는 데에 온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할 게 아닌가? 상권이 어떻고 직원이 친절해야하고 가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등등은 부차적이다. 세상엔 본질을 잊은 괴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괴상망측한 것들이 별에 별게 다 나온다.

고객을 돈으로 보는 이들은 별 되도 않는 희한한 방법을 다 쓴다. 교육, 종교, 출판, 광고, 사업도 예외가 아니다. 불안심리를 이용하는 광고와 학원 강사들, 간절해하는 사람들을 이용하는 종교인들, 나름의 책임감 없이 사업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퇴보하는 데 한 몫들 하고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의 일에 만족감이라든가 자부심이란 건 눈곱만큼도 없다. 별 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어떻게 사람들을 이용해서 돈을 뜯어낼 수 있을까 하는 궁리밖에 하지 않는다.

뒤틀린 생각들이 전염병처럼 퍼지면서 사람들은 점차 착각에 빠지고 그게 정답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주류는 주류가 된다. 그 결과 세상은 쓰레기, 오물로 가득 차고 진실은 가려진다. 본질을 잊어버리면 남는 건 거짓과 기만, 사기, 속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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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 잘못인 걸 알면서도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이쯤 되면 사라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치사해야 돼.’ 누군가 이런 말을 하면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내 또래들은 이런 말에 대게 동조한다. 그것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그들은 아직 당한 것도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사회는 야생이며 무법지대이다. 법과 질서가 버젓이 있고 진실한 만큼 똑바로 굴러가는 데도 말이다. 사회는 올바른 쪽으로 흘러가게 돼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오래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정치가 부패한 많은 나라들이 망했고 공산주의 국가들도 그랬다. 부정의한 사회는 공동체에 신뢰가 없다. 믿지 못하고 맡기지 않는다. 신용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은 사그라진다. 나는 이런 상황을 군대에서 경험했다. 우리 조직은 서로를 신뢰했고 도움을 주는 게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불신이 생기고 자신들의 손익만을 따지면서 믿음은 사라졌다. 신뢰가 없어진 조직은 희생을 호구짓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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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치사한 놈들이 사회에서 성공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풍조다: 나랏돈 빼먹고 뒷거래해야 출세한다.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진심으로 믿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틀렸다. 완벽히 틀렸다. 믿음만큼 세상은 보인다. 아마 자신들도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말이야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절대 아니다. 믿지도 않고 맞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건 말로도 하면 안 된다. 소련에서는 이를 잘 이용했다. 소련 당원들 중에는 공산주의에 반감을 품은 이들이 있었고 지배층은 이들을 동화하기로 했다. 이들에게 공산주의가 좋은 체제인 것을 사람들 앞에서 말하도록 했다. 공산주의를 믿지 않았던 이들은 좋은 체제라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결국에는 공산주의를 열렬히 신봉하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 세상이 썩어빠졌다고 믿으면 정말 추악하기 짝이 없다. 이미 3천 년 전 고대 그리스 시인들은 이를 노래했다. 하지만, 그렇다. 세상이 부정의하고 옳지 못한 것들로 가득하더라도 불난 집에 불구경만하고 있을 순 없다. 잘못된 걸 이용할 게 아니라 잘못된 걸 말하고 바로잡으려고 해야 한다. 잘못을 정확하고 제대로 짚어내기 위해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모두 당한다. 얼룩말의 무늬는 초록색이 아니다. 초록색이었다면 들판의 풀이나 나무들에 숨어서 생존했을 것이다. 얼룩말은 무리지어서 생활한다. 포식자의 눈에 띠었던 녀석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포식자는 먹이로 삼으려고 했던 놈이 누구였는지 구분하지 못하고 대신에 무리에서 뒤처지는 얼룩말을 잡아서 먹어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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