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점 여름 직원

by 인드라망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카트기에 담은 나와 엄마는 계산대로 갔는데, 거기에 익숙한 얼굴이 내 눈에 띄었다. 나는 그 직원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중학교 일 학년이었을 때 기술•가정 과목을 한 학기 동안만 맡았던 선생이었다. 선생은 여전히 중년의 얼굴을 하고서 바코드를 찍고 있었다. 한창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선생은 학생들(나의 반 친구들, 어쩌면 학년 전체)에게 적잖게 시달렸다. 수업시간에 대놓고 대드는 아이들을 선생이 훈계하면 돌아오는 태도는 오히려 적반하장이었다. 기술가정 선생이 괜히 훈계를 하는 것이 어설프다며 아이들은 그 선생에게 '기가오'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기가 선생이 가오('폼'의 속된 말:일본식 말)를 잡는다는 뜻에서 그렇게 지은 것이었다.


그 선생을 우습게 보던 애들은 정해져 있었는데 그들은 수업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기가오'를 외쳐댔다.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들은 성악 느낌의 멜로디도 덧붙여 기가오를 외쳤고 선생을 무시하는 태도도 덧붙였다. 날이 갈수록 학생들에 대한 선생의 피해의식은 깊어져 갔고 언제는 예민해져서 별 행동 안 한 애를 작은 막대기로 때려주었다. 남중 학생들은 점점 더 그 선생에게 비우호적이게 되었다. 어느덧 학생들 모두가 그 선생을 기가오라고 지칭하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수업은 진행해야 했고 질 나쁜 아이들은 수업을 방해했고... 중구난방이었다.



식료품점엔 대드는 학생이 없었다. 그 대신에 다정하게 대해주는 어르신들과 아줌마들이 있었다. 그곳엔 정이 있었다. 오로지 친절이 말이다. 학교는 선생에게 무정했을 것이다.


계산을 마친 물건들을 내가 카트기로 다시 옮기는 동안에도 선생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도 굳이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스무 살인 애가 대학교에 있지 않고 월요일에 엄마랑 장을 보러 온 신세를 만약 캐묻는다면 내가 난처해질 수 있었다. 그래도 내가 먼저 안부를 물어볼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선생이 일부러 모르는 체를 하는 걸 수도 있었다. 나는 선생을 한 명의 직원으로서 존중하기로 했다. 선생은 나를 한 명의 고객으로 대해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나와 엄마는 그렇게 물품들을 종이상자에 담은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엄마에게 그 직원이 선생이었다는 사실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쩌다 그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났다. 나는 다시 그 식료품점엘 갈 기회가 생겼다. 계산대에 그 선생이 있는지 나는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 선생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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