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쓸 때에는 이유를 충분히 생각해보아요
이 책을 쓴 지 약 5년이 흘렀고, 글 속의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늦둥이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둘째는 얌전하고 관계중심적인 첫째 아이와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를 대하면서 저의 육아법칙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반응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5년 전의 이야기들에 둘째의 이야기를 덧붙여 써내려가보려고 합니다.
둘째는 엄마 껌딱지입니다. 어린이집은 씩씩하게 잘 가서 잘 놀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엄마 좋아! 엄마 조아!”를 외치며 언니와 엄마와 늘 붙어 다닙니다.
8년간 외동으로 사랑을 독차지했던 첫째는 이제 동생을 돌봐줄 수 있을 정도의 언니입니다. 동생을 정말 예뻐하지만 엄마 관심을 모조리 빼앗겼으니 마음 한 구석에 속상함이 묻어있을 것 같아 늘 짠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태어난 후 처음으로 첫째와 제가 데이트를 나갔습니다. 딱 한 시간, 마트에 가서 엄마와 조곤조곤 수다도 떨고 사고 싶은 것도 샀습니다. 그 와중에 동생이 서운해할까 마음 쓰며 동생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과 간식거리를 고민 고민해서 골랐지요.
그리고 집에 들어선 순간, 아빠와 함께 시무룩해져 있던 둘째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으아아앙!!! 어마!! 어마!! 으아앙!!!”
대성통곡을 합니다. 바닥에 드러누워 발차기를 합니다. 안고 달래주려고 해도 빠져나가 발버둥을 칩니다. 무슨 말을 해도, 장난감도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기를 30분. 지쳐서 가만히 보고 있는데 언니가 나섭니다.
“둘째야, 오늘 엄마랑 언니랑만 마트 갔다 와서 미안해. 내일은 꼭 엄마랑 언니랑 같이 마트 가자. 알았지? 약속!! 손가락 걸고 약속하자! 내일은 꼭 셋이서 마트 가자? 알았지?”
둘째가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칩니다. 아니, 엄마 아빠밖에 못하는 아가가 저걸 다 알아들었으려나요? 울음을 뚝 그치고 언니가 준 선물을 들고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알아들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는 바빠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아이들을 재우려고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그때부터 난리가 났습니다. 둘째가 대성통곡에 떼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졸려서 그런가? 배가 고픈가? 어디 아픈가?’ 둘째는 현관문을 가리키며 나가자고 합니다. 답답해서 그런가 싶어 아이를 꽁꽁 싸매고 아파트 단지를 걸어 다니다 다시 들어오려는데 또 대성통곡을 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다시 나가자고 합니다.
계속 밖에 있을 수는 없어서 둘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보니 문득 어제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바빠서 까맣게 잊어버렸는데, 둘째는 마트가기를 하루 종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밤이 되어 깜깜해지고 잘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서는 분통이 터졌나 봅니다.
세상에, 엄마 아빠밖에 말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한 약속이라고 그냥 지나가버렸더니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둘째에게 다시 꼭꼭 약속했습니다.
“엄마가 오늘 바빠서 잊어버렸어. 정말 미안해. 내일은 엄마가 아무리 바빠도 꼭 같이 마트 가자. 이번엔 진짜 약속할게. 엄마가 잘못했으니까 장난감도 큰 거 사줄게.”
둘째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고 제 발로 들어가 침대 위에 눕습니다. 정말 거짓말 같지요? 하지만 제가 어릴 때를 되돌아보면 어른들이 ‘놀러 가자’ ‘나중에 이거 사줄게’했던 약속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기다렸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날, 첫째가 학원 가기 전 40분 정도 비는 짧은 시간에 재빨리 마트에 가서 장난감 코너에 둘째를 내려놨습니다. 인생 최초로 구경한 장난감 코너에 둘째가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30분 넘게 이것저것 만져보고 끌어안고 있더니 제가 생각하기에 제일 큰 것으로 하나 골라 듭니다. 앞으로 아기에게 한 약속은 절대로 지켜야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함께 돌아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기들은 언어를 완벽하게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눈치로 이해합니다. 우리가 외국어를 전혀 못해도 외국에 나가면 눈치로 대충 다 알아듣지요? 그 정도라고 생각하면 적당합니다. 17개월 아기는 ‘가자’, '마트’ 정도만 이해했을 것입니다. 시간 개념이 없으니 무작정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트가 문을 닫아버린 밤늦게 생떼를 부리니 어른들은 선뜻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졸린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기가 얼마나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지 아는 것, 기다리고 참고 있는지 알아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일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저만 해도 ‘에이, 뭐 기억하겠어. 못 알아들었겠지’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런 상황이 계속해서 일어나면 아이들은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잃게 됩니다. 건강한 정서와 직결되어 있는 경험이지요.
두 번째로 주목해야할 것은 첫째 아이의 반응입니다. 둘째가 말을 못 함에도 불구하고 “내일 꼭 함께 마트 가자” 하면서 조곤조곤 설명해주고 손가락 거는 제스처도 하면서 소통을 시도합니다. 아기 입장을 생각해보지 않고 무작정 사탕으로 달래주려고 하는 어른보다 훨씬 낫습니다.
아기일지라도 떼를 쓸 때 그 이유를 알아주고 해결책을 제시하면 마음이 풀렸던 일을 경험해 본 것입니다. 본인이 겪어보았으니 "쟤는 아기라서 아무것도 몰라"라고 단정 짓지 않는 것이지요. 이 아이가 커서 엄마가 된다면, 저보다 훨씬 나은 육아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이유없이 떼를 쓰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사고방식에서 맥락이 없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그 맥락은 오래 전부터 채우지 못했던 엄마의 관심이나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수 없이 반복해 지키지 못한 약속, 내일은 꼭 엄마랑 재미있게 놀자는 말에 참고 참으며 기다려 온 엄마와의 시간일 수도 있지요. 어른의 입장을 내려놓고 언어와 시간개념이 없는 아기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심리학에서 4세까지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의미는 땡깡의 맥락을 '오래 전부터 채우지 못했던 욕구'가 되기전에, 오늘 한 번 신나게 놀아준다던가, 책을 함께 읽어준다던가의 짧은 맥락일 때 얼른 해결해두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이가 들고 채우지 못한 욕구가 너무 깊어져버리면 한 번의 말과 약속으로는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제 때에 1년 동안 채워주지 못한 매일의 시간들은 훗날 두 배 이상의 시간으로 채워야만 합니다. 말하지 못하는 아기라도 오늘 왜 떼를 썼는지 아기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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