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다섯.[아이도 사고할 수 있는 독립적주체랍니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오~

by 고민베어 이소연

이야기 다섯. [아이도 사고할 수 있는 독립적 주체랍니다]

아이는 아토피 때문에 참 많이 고생했습니다. 생후 2개월부터 만 3세까지, 3년을 고생하고 거의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얼굴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속상하고 속상합니다. 그동안은 너무 아이가 고생스러워서 표현하지 않았었는데, 막바지라고 생각하니 절로 속상한 마음이 표정과 말로 나옵니다.

친정엄마와 아이, 그리고 아이아빠와 함께 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저는 속상한 마음 그대로 축 처져있는데, 아이가 "엄마엄마 달리기 하자아-!" 소리칩니다. 저는 대꾸할 기력도 없습니다. 보다 못한 친정엄마가 함께 신나게 달리기를 해줍니다.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 차 안, 놀기도 하고 영상도 보면서 30분을 잘 앉아있던 아이가 긁기 시작하더니 졸리다며 안아달라 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생떼를 쓰기 시작합니다.

"내 자리에 다시 앉을거야아! 뽀로로 볼거야아! 안 잘 거야! 엉엉"

떼쓰는 중에 친정엄마가 집에 가시려고 차에서 내립니다. 그러자 외할머니가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아이가 또 소리를 지릅니다.

"할머니한테 빠빠이 못했어어어! 엉엉"

외할머니에게 전화해 빠빠이를 하고 끊습니다. 이번엔 외할머니가 잘 자라고 한 말에 대답을 못했답니다.

"할머니한테 대답 못했어어어! 네라고 못했잖아아아!! 엉엉엉"
"신발이 벗겨졌잖아아아!"
"할머니 보고싶은데에에에!"

트집이고 생떼입니다. 딱히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아이는 도대체 왜 떼를 쓰는 걸까요? 그냥 졸리기만 한 걸까요? 가만히 생각합니다. 왜 우는 것일까. 무엇을 표현하고 싶을까. 아이의 떼쓰기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고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 아이에게 조용히 얘기했습니다.

"엄마가 우리 딸 아파서 속상하다고 계속 말해서 화난 거야? 미안해. 우리 딸이 아픈 건 너 때문이 아니고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잘못해서 아픈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미안해. 이제 속상하다고 안 하고 신나게 같이 놀아줄게."

그러자 아이는 더 크게 울며 말합니다.

"아니야아아! 아니야 하지 마아!! 그만해애!"

엄마가 속상하다고 할 때는 화가 났는데, 막상 엄마잘못이라고 하니 그건 싫나 봅니다. 그냥 외할머니가 하듯, 아무 일 없는 듯 같이 놀아줬으면 했나 봅니다. 그래서 그렇게 외할머니에게 인사해야 한다며 찾았던 것이죠. 이런 대화를 하며 집에 돌아와 신발을 벗고는 눈물범벅인 팅팅부은 얼굴을 한 채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빠에게 말합니다.

"아빠! 캐리 색칠하자. 어? 이건 파란색이네? 헤헤헤 이건 케이크야!"

이해받고, 마음은 풀렸는데 엄마한테는 좀 민망한가 봅니다. 엄마에게는 오지 않고 아빠랑만 눈 마주치며 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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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졸려서 시작된 떼쓰기이기는 합니다. 한참 놀 때는 생각이 들지 않았겠지요. 어른들도 그런 경우가 때때로 있어요. 막상 그 상황에서는 정신이 없어 그냥 지나갔는데, 자려고 누웠을 때나, 혼자 조용히 있을 때 다시 되돌아보면 괘씸하고 화가 나는 경우 말이지요. 이처럼, 아이들은 자기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립니다.


참 어렵습니다. 끝도 없는 요구사항을 들어주기도 힘든데, 뭔지도 모를 인과관계를 아이 눈높이에 맞춰 한참을 해석해보아야 아이에게 공감이 가능하죠. ‘아이에게 공감해 주세요. 공감받으며 자란 아이는 안정적인 정서와 높은 학습능력 및 집중력을 보입니다’라는 심리학 이론들이 참 어이없어지는 순간입니다. 이 어려운 것을 이렇게 쉽게 한 문장으로 설명하다니.


어렵고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이지만 아이가 본인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모두 겪고 지나간 후 이해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모두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물론 그 감정에 대해 엄마가 먼저 이해해주고 표현해주어야 아이도 받아들일 수 있겠죠.


물론, 감정이 지나가는 떼쓰기의 과정에서 무조건 받아주면서 달래거나, 외면하고 다른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감정이 북받쳐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말도 자극이 되고,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을 외면해버리면 아이는 더욱 화가 납니다. 엄마는 화내지 말고 옆에서 기다려주고, 어느 정도 가라앉아 대화가 가능해지면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줍니다.


말로는 참 쉽습니다. 하지만 떼를 쓰는 아이 곁에 앉아 기다리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다스리자니 미칠 지경입니다. 화나는 눈빛까지는 감출 수가 없어 옆에 앉아 다른 곳을 바라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육아의 또 다른 이름은 엄마의 ‘자기 통제’입니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가 생트집을 잡아도 화내지 말아야 하고 기다려주라 합니다.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힘든데, 생떼를 이해해보려고 분노를 억누르며 생각하다 보니 대체 뭐 하고 있나, 이게 과연 맞는 방식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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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투닥거리는 상황이 닥치면 당시의 감정과 행동에만 포커스를 두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의 감정은 하루이틀 사이에 쌓아진 것이 아닙니다. 엄마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쌓여온 해묵은 감정입니다. 때마다 기저에 차 있던 서운함과 채우지 못한 정서적 욕구들이 물밀듯이 올라 표출됩니다. 아이는 뱃속에 있던 때도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희 아이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를 가끔 이야기하곤 합니다.


이 해묵은 감정들이 십여 년에 걸쳐 쌓이면 감당하기 어려운 격렬한 사춘기를 겪게 되고,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 심리적인 문제로 드러나게 됩니다.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결혼도 어렵고, 아이를 낳아서 또 같은 문제를 반복하게 됩니다.


제가 심리학을 하면서 아이들의 문제에 계속해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성인의 문제가 곧 아이일 때의 경험에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를 이어 지속되게 되지요.


평소에 내가 얼마나 아이의 정서적인 욕구를 채워주고 있나,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었던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저에 깔린 아이의 마음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평소에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줄 수 있게 되고, 떼를 쓸 때에도 화가 덜 나게 됩니다.





[고민이 있을 땐, 고민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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