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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랑씨 Oct 25. 2021

얼굴없는 디자이너, Martin Margiela

Martin, 그의 인생


얼굴이 아니라, 내가 만든 옷과 형태를 내 이름과 연관시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르지엘라 옷에대한 해체적인 관점보다는, 그의 일생을 알아가는 식으로 글을 쓴다.



#Martin Margiela


1957년 4월 9일, 벨기에에서 태어난 디자이너이다. 어렸을때부터, 예술을 하고싶어하였는데, 어머니와 함께 본 티비에서 방영된 런웨이를 보고,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이후 할머니의 쿠튀르에 왕래하며, 옷을 만드는걸 물어보며 디자이너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이 때, 8살이였던 마르지엘라는 자신의 첫 컬렉션을 만드는데, 바비인형을 위함 이였고 그는 유년기 시절부터, 바비인형에 자기가 만든 옷을 입혀주는걸 좋아하였다.




이때 부터 였을까, 그의 내성적인 성격이.



# Antwerp six

1974년 마흐탕은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패션 디자이너과에 입학하게 된다. 이 당시, 그 유명한 Antwerp six , Walter Van Beirendonck, Ann Demeulemeester, Dries Van Noten,Dirk Bikkembergs, Dirk Van Saene 와 Marina Yee 함께 학교를 같이 다녔다. 앤트워프식스는 시간마다 서로의 모든것을 공유하고 작업물들을 공유하며 같이 성장하여나갔다.

그에 반하여, 마흐탕은 소극적이이기도 하였고 그들과 왕래를 잘 하지는 않았다.


# Jean paul gaultier

80년대, 그는 벨기에에서 5년동안 프리랜서로 일을하다, 1984년, 파리에서, 그는 장폴 고티에의 디자이너로 들어가게되는데, 그들의 사이는 80년대 마흐탕의 졸업쇼에서 만나게 된 인연으로 시작된다. 이때 장폴 고티에의 말을 빌리자면, 마흐탕 그는 천재였지만, 소극적이기에 그의 능력을 끌어주기위하여 노력하였다고 한다.


그후, 그는 88년까지 장폴 고티에의 라인을 하나 맡으며 그와의 커리어를 끝낸다.



# Maison Margiela


그 당시, 해체라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전위적인 디자이너, Martin Margiela는 1988년 Jenny Meirens와 함께 자신의 브랜드인 Maison Martin Margiela를 설립했다.

그는 89년, 세계 3대 페스티벌인 ANDAM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마흐탕과 제니가 파리에 아틀리에를 설립하였을 때, 이들은 모든 벽과 책상 그리고 모든 오브제들을 하얀색으로 통일 시켰는데, 이는 그들의 편안함 그리고 관념을 위한 선택이였다고 한다. 그 당시, 그들은 아틀리에를 차리고 돈이 너무 없어서 오브제들을 아틀리에에 넣기 위하여, 쓰레기장을 뒤지고, 괜찮은 가구들을 가져다 흰색으로 색칠하여 아틀리에에 설치하곤 하였다.

그들이 입는 흰색 유니폼역시, 그당시 부터 시작하였으며 아직까지도 마르지엘라 직원하면 떠올리는 흰색가운은 이당시부터 출발하였다.



# Défilé


그의 첫컬렉션인 93년을 시작으로하여, 파리지앙들은 마틴 마르지엘라라는 디자이너에게 흥미를 느꼈다.

그의 옷에는 지금처럼 네개의 실, 소위 밥풀을 달기 시작하였는데, 그당시 파리지앵들은 옷에 달린 스티치를 보고 “너 옷에 뭐 묻었어!” 라는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고 한다.

어쨋거나, 컬렉션의 시작은 전위적이였으며,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기시작한다.


그 후, 95년, 그는 충격적인 쇼를 시작한다.

모든 모델들에게 마스크를 씌우며, 얼굴을 지워버렸다. 그의 의도는 얼굴이 아닌, 옷의 형태를 보여주기 위함이였고, 이는 모든 이들의 뇌에 그를 각인시키는 퍼포먼스가 되었다.

그의 쇼를 보면, 그 당시 파리의 샤넬, 생로랑, 디올 등 무수한 브랜드들은 전통적인 곳에서 런웨이를 하기를 즐겨하였다. 하지만, 마흐탕 그는 달랐다. 그는 파리의 19구(위험지역), 영화관 등 다양한 곳에서 런웨이를 열었으며 그의 쇼 역시, 부산하기 그지없었고 형식이라는것은 그에게 주어져있지 않은 단어였다.



Jean paul gaultier가 쇼가 끝나고 마치 이 쇼는 나를 위함이야 라고 보여주는것과는 반대로, 마르지엘라는 절대, 단 한번도 자기의 쇼에서 모습을 드러낸적이 없었다. 모든 연락은 팩스와 전화로만 가능하였으며, 그는 남들과 만나는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밀스러운 모습, 그리고 그의 쇼를 보기위하여, 사람들은 차를 타고 먼곳까지 이동하였으며, 그의 쇼가 주는 마력이 얼마나 컸는지, 이를 통하여 알 수 있다.



#Hermès




97년, 재정위기에 빠진 마르지엘라를 구해줄 카드가 생겨났다. 프랑스의 가장 크고 오래된 브랜드중 하나인 에르메스에서 마흐탕을 여성 의류 디자이너로 영입한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은, 전위적인 에르메스의 모습을 상상하였지만, 막상 쇼에서 마흐탕이 보여준 에르메스의 모습은 정말 얌전하였고, 작은 디테일들만이 이 옷이 마르지엘라의 옷임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끝

그는 2000년 도쿄에 첫 부티크를 오픈하는등, 사업으로써도 괜찮은 행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9년 어느날, 자신의 브랜드가 20주년을 맞이하는 해, 자신의 옷들이 인터넷등, 현실이 아닌 미디어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였고 돌연 편지한장과 함께 은퇴를한다.

그가 은퇴하기전날까지도 그의 직원들은 그의 은퇴를 알지 못하였었다.



#여담

최근 행보가 궁금할터인데, 2019년 Andam에서 최근 심사위원으로 나오기도 하였다.


#글을 마무리하며

마르지엘라 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라벨링, 컷오프방식, 해체, 타비 슈즈, 양말로만든 옷, 리버스테일러링 등 그는 패션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퍼포먼스가 짧으면 짧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리에게 보여주고 후대의 패션에 남긴 영향력은 지금의 옷들만 보아도 우리가 손쉽게 유추할 수 있을것같다.


그가 전위적인 해체를 통하여 남긴말은 지금의 브랜드들에게 비수를 꽂을 수 있을것같은데, "해체의 시작은 완벽한 기본으로부터 시작된다"이다.

많은 브랜드가 마르지엘라를 레퍼런스로 삼지만, 그의 브랜드를 뛰어넘을수 없는 이유는, 그의 완벽한 성향 덕분이 아니 였을까 라는 질문과함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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