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입추(立秋)입니다 잘 지내나요?
소나기도 장마도 이제 다 끝났어요라고 말하다가 끝나버렸다고 적어요 이 차이를 당신은 알까요? 당신 생각에 잠식 되어 사무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운동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밖을 나가는데 하필 소나기가 내렸어요 마냥 슬퍼하라고 사무쳐도 된다고 그러는 것 같았죠 하필 소나기에요
하필이라는 말을 저는 오래 기억할 거고 잊을 수가 없어요 하필 소나기가 내렸고, 그해, 하필 당신을 만나버렸으니까요 하필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첫사랑의 속성을 당신을 통해 알게 됐어요 저는 하필 섣부르기도 했죠
초록이 선명하고 쓰르라미의 음계가 더 뚜렷해지며 익어가던 우리는 이제 과거가 되어가고 곧 대과거가 되어가겠지만, 저는 당신처럼 문학을 섬기며 살아야겠습니다 저는 여전히 여기에 있어요
선명했던 마음들이 이제 가을처럼 말라갈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라서 영원히 남을 마음이 여기있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가을의 초입새에서 당신을 생각해요 가을처럼 쓸쓸해보인다는 말을 했던 걸 후회해요 잘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