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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 진 Mar 02. 2016

현실과 재현의 연결고리

- 르네 마그리트


오늘은 마그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인데다가, 얼마 전 방학 기념 브뤼셀 여행 때에 마그리트 박물관에 다녀온 터라 더더욱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마그리트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마그리트 자신도 말했었죠. '내 그림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라고요. 

그러니 우리, 그가 원하는 대로 그림의 의미를 찾지 말고, 그림 자체를 즐겨봅시다. 일단, 흥미로운 것만은 확실하니까요.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1928-1929


이미지에게 배반 당한게 아니라 마그리트에게 배반 당한 것만 같은 이 그림, <이미지의 배반>에는 파이프가 그려져 있고, 한 문장이 쓰여져 있습니다.


'Ceci n'est pas une pipe'

프랑스어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마그리트에게 배신감이 느껴지시죠? 이건 분명 파이프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 이건 파이프가 아닙니다. 파이프 '그림'이니까요. 작가가 어떤 사물, 어떤 대상을 아주 아주 똑같이, 사실적으로 그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림일 뿐이지, 대상 그 자체는 아닙니다. 즉, 재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르네 마그리트, 인간의 조건, 1933


누군가 캔버스에 팔레트를 그린다고 했을 때, 캔버스에 그려진 팔레트위에 짜여진 물감은 물감일까요, 그림일까요. 물감이 붓에 의해 그려져서 그림이 되었는데, 그림이긴 하지만 또 그림 안에서의 역할도 실제의 존재 그 자체처럼 물감이지요. 


그 이야기의 경계 쯤에 있는 그림이 바로 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창 가에 세워진 캔버스에는 창 밖의 풍경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창문을 자세히 들여다 보시면, 캔버스의 경계가 보입니다. 분명 날아가는 새의 바로 아래 쪽은 캔버스인데요, 풍경과 캔버스의 경계만 쏙 빼고 본다면 그야 말로 창 밖 풍경 그 자체이지요. 그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걸까요. 캔버스와 창 밖 풍경의 불분명한 경계, 혹은 분명한 연결 속에서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마치 캔버스가 없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이 그림에서요.


그리고 이 그림 안에서 진짜 공간과 재현된 공간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요? 그림 그 자체가 사실상 재현된 것이니 창 밖의 공간도 재현된 공간이지요. 그렇지만 그림 안 캔버스 입장에서 창 밖의 공간은 진짜 공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무언가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과거의 작가들도 많은 것들을 재현해 냈지만, 그는 재현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는 그림 그리는 철학자는 아니었을까요?


마그리트 아저씨가 그려놓은 공간 안에서 뛰어 놀다 보면 여기가 어딘가 싶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만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니길 바라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마지막 그림입니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



참 오묘한 그림이죠. 낮과 밤이 함께 있는 이 그림. 그림의 아래쪽을 보면 분명 가로등이 켜진 야경인데, 하늘은 환한 파란 하늘입니다.


이 그림의 모든 사물, 모든 대상은 현실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모두 현실 그대로 그렸죠. 하지만 그것을 조합하고 나니 아주 신비로운 하나의 그림이 되었습니다.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그림이 되었지요.

과연 진짜는 무엇일까요. 그의 그림 세계 안에서.


'쓰여진 시는 볼 수 없지만, 그려진 시는 눈에 보이는 외형을 가진다.'  - 마그리트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보여지는 것 그 자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생각되어 이미지화 된 것들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그림에 무수히 많은 은유를 통하여 시를 쓰고, 철학적 함의를 가지고 작품 하나 하나를 만들어 갔던 것 같습니다.  


그의 작업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라도, 그가 남겨놓은 것들을 온전히 즐길 수는 있겠지요. 그리고 훗날 그의 그림 <피레네의 성>과 <올마이어의 성>에서 영감을 받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탄생하기도 했다는 것들을 알고 나면 어쩐지 그의 그림이 우리에게도 더욱 멋진 영감을 불러일으켜 줄 것만 같습니다.


▲ 왼, 르네 마그리트, 피레네의 성, 1959                                    ▲ 오른, 르네 마그리트, 올마이어의 성, 1951







* 참고문헌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2

Hazan, Magritte "His work his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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