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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 Mar 16. 2021

요즘 젊은애들은 인사를 안 해

젊은이들이 '당신'에게 인사하지 않는 이유

"요즘애들은 왜 그렇게 인사를 안 한대?"

엄마가 말했다. 어떤 애들을 말하는지 모르겠어서 나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유가 있겠지. 엄마가 인사하기 싫게 대했나 보지 뭐. 나이 많다고 막 대한 거 아냐?"

"야 내가 얼마나 애들한테 잘해주는데."


워낙 흔한 얘기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회사에서 상사에게 인사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몇십 년 전부터 흘러나오던 얘기 아닌가. 윗 세대들에게 젊은 세대란 예의란 찾아볼 수 없으며, 어떻게든 힘든 일은 안 하려 요리조리 피해 다니고, 나약하고 성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이들이다. 새삼 놀라울 것 없는 얘기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오히려 왜 어른들은 그렇게 악을 쓰고 인사를 받으려고 하는 걸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 걸까? 왜 젊은 사람들은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인가?


인사는 누군가에게 반가움을 표시하는 행위이다. 악수도 있고 허그도 있으며 손바닥을 흔드는 행위도 있다. 그런 행위를 통해 반가움을 표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동양권 문화에서는)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는 인사 행위이다. 이는 다른 행위와는 다른데, 다른 행위가 동등한 위치에서의 반가움의 표시라면 허리를 굽혀서 하는 인사는 위계질서가 있는 존경심의 표시이다. 어른들이 받고 싶은 인사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의 굳이 허리를 숙여 '존경심'을 표시하는 인사이다. 인사를 해도 까닥 고개만 숙이는 인사는 싹수가 없다고 하는 걸 보면 그러하다. 손바닥을 흔드는 인사를 안 했다고 회사에서 혼내지는 않는다.


즉 인사를 받고 싶은 게 아니라, 인사 안에 숨어있는 존경이라는 것을 받고 싶은 것이다. 존경심을 표현하는 행위가 인사가 아니라 다른 것이 었다면, 예를 들어 물구나무서기가 존경심을 표현하는 행위였다면 아마 왜 젊은 세대에게 물구나무서기를 하지 않냐며 한탄했을 것이다. 인류는 세대와 시간을 막론하고 아랫사람에게 존경받기를 원했다. 어른들이 말하는 젊은 세대가 인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왜 나를 존중해주지 않느냐는 절박한 외침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말처럼 젊은 세대는 왜 인사를 하지 않는 걸까? 현재의 한국에서의 인사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인사는 철저히 희생을 동반한다. 나이 든 사람이 먼저 하는 행위가 아니라 나이가 어린 사람이 먼저 해야 하는 행위이며, 언제 어느 타이밍에 해야 할지 내 인사를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 이 모든 리스크를 인사를 '하는' 사람이 져야 한다. 받는 사람은 저 모든 고민을 질 필요가 없이 가만히 앉아서 받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부담감을 이겨내고 열심히 인사를 해도 제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 응~ 하고 지나가버리거나 자기 기분이 안 좋다며 인상을 찌푸리고 인사를 받거나 혹은 인사 태도를 지적하기도 한다. 밝게 인사하기를 원하면서 왜 밝게 받아주지는 않는가? 90도 인사를 원하면서 왜 90도로 답하지 않는가? 타인에게는 허리를 굽히기를 원하면서 왜 자신은 굽히지 않는 것인가? 


어른들이 요구하는 인사는 젊은이들의 리스크만을 요구하고 자신의 리스크는 지지 않으려는 행위이다. 언제나 리스크만을 부담해야 하는 행위를 강요하는 게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오히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인사를 하지 않는 게 더 이치에 맞을 것이다.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인사가 그렇게 중요하고 좋은 것이라면 왜 어른은 아랫세대에게 먼저 인사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한, 인사는 장기 보상 행위이다. 인사를 한다고 해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단기적으로 눈에 보이는 보상이 생기지도 않는다. 꾸준히 쌓였을 때, 어느 순간 그 쌓아온 유대감과 신뢰와 평판이 드러나게 된다. '그 친구 평소에 참 밝게 인사 잘하던데'라는 것이 훗날 어느 순간에야 나타나게 된다. 때로는 평생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에는 언젠가는 인사가 쌓여서 너의 평판을 만든다는 장기보상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5분짜리 영상도 길어서 못 보는 시대에 불확실한 보상을 믿고 해 나가라고 하면 누가 쉽사리 yes를 할 수 있을까. 당장 눈 앞에 인사를 했을 때 보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래서 그만큼 인사를 받아주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다. 내가 겨우겨우 고심해서 용기 내서 했던 인사가 씹히느냐, 혹은 나보다도 더 밝고 친근하게 받아주느냐가 평생의 인사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게 된다.  


인사의 리스크 비대칭성이 심해질수록 어른들의 인사에 대한 하소연은 짙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왜 젊은이들은 인사를 안 하냐고 따지기 전에, 그들에게 인사에 대한 리스크를 온전히 부담시키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사를 할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는가? 내 기분이 나쁘다고 대충 받거나 혹은 내 권위를 위해 일부로 인사를 씹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자. 존경은 강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배려에서 꽃 피울 수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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