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은 다름을 이해하게 만든다
예전부터였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속절없이 끌렸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시큰둥하면서도 꽃을 보고 웃는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게 같이 입가가 올라갔다. 말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지구 상 최약체인 식물을 아끼고 가꿀 정도의 사람이라면 마음씨가 곱고 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각한다. 미디어가 만든 환상인지,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허상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랬다.
한 번은 자주 가던 회사 앞 꽃집 직원분이 너무 마음에 들어 슬쩍 마음을 전했던 적도 있었다. 사랑에 있어 소극적이었던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첫눈에 빠지고, 기다리기보다 먼저 다가가 마음을 전달했던 것은 처음이었다. 같이 간 서점에서 도감을 보고 꽃 이름 맞추기를 하며 웃고, 언젠가 농장에 같이 가서 꽃구경을 하자고 약속을 했다. 결국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힘들었던 아픔 속에서도 꽃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휴업이 늘어나면서 주변에서 플라워 클래스를 수강하는 지인들의 수가 늘어났고 나도 한 번 배워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소셜 살롱에서 취미로 꽂꽃이를 들을 수 있는 클래스가 생겼다. 수많은 플라워 클래스를 보면서도 망설였던 내가 이 클래스를 신청하게 된 건 파트너분이 나와 같은 여행사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주차별로 네덜란드, 영국, 일본 등을 주제로 여행과 해당 국가의 꽃을 묶어 살롱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기획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들어간 클래스, 도착하고 보니 남자가 나 혼자뿐이다. 남자가 꽃을 배운다는 건 꽤나 많은 시선들을 감당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차라리 전공이나 직업이라면 다르겠지만 취미이기에 오히려 '굳이..?'라는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충격을 받았던 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이 든 사람들보다 젊은 사람들에게서 받은 편견이었다. 내가 꽃을 배운다고 했을 때, 솔직히 나는 부모님께 혼날 줄 알았다. 처음에는 그런 걸 왜 하니?라고 묻던 어머니는 두세 번 지나고 나자 매주마다 수업을 가는지 물으셨다. 혀를 차던 아버지는 만나는 다른 사람마다 아들이 꽃도 만든다며 자랑했다. 놀랐던 건 어릴 적 부엌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던 할머니도 내가 꽃꽂이를 한다는 것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꼰대세대가 오히려 낭만이 있달까.
그러나 내 주변 친구들은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남자답지 못하다, 그 시간에 주식을 하겠다, 차라리 운동을 해라라던가 혹은 네가 그런 걸 하니 이상하다고 했다. 특히나 남자들은 성 정체성을 깨는 것에 대해서 더 큰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았다. 여자들은 기존 남자들만 하던 운동이나 직업 등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는 반면 남자들은 기존 여자들이 하던 활동이나 일에 도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느낌이 많았다. 사회적 성 정체성의 강요가 여성보다는 남성을 더 휘감고 있는 것 같다.
남자가 꽃꽂이를 하게 되면 생각보다 많은 이점이 있다. 우선, 독특한 취미라는 점에서 다른 취미들보다 유니크함이 있다. 남들과 똑같은 취미보다는 나만의 개성을 찾는 요즘 시대에 신선한 이미지로 다가오게 된다.
또한 이 분야에서의 기대치가 높지 않기 때문에 조금 못하고 서툴러도 엄청난 칭찬과 관심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손으로 하는 것은 하나도 못해서 내가 봐도 엉망으로 했는데도 주변에서 폭풍 칭찬 덕분에 항상 기분 좋게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또한 미적 감각과 색감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색이나 미적 부분에 있어서 접할 기회가 적은데 꽃의 다양한 색감과 형태 그리고 꽃꽂이에서 필요한 형태 배치 등을 배우면서 이런 잘 활용되지 못했던 감각들을 키울 수 있다.
3개월 간 했던 플라워 클래스를 통해 여러 가지 꽃의 종류에 대해 알게 되면서 꽃집을 가도 두렵지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아는 게 없으니 그냥 직원에게 추천해달라고 하거나 장미만을 선물했는데 이제는 꽃시장에 가서 내가 선물해보고 싶은 꽃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만들어진 핸드메이드가 아니라 직접 당시의 기분과 상황에 맞는 꽃을 골라 내가 원하는 배치로 선물하게 되니 똑같은 선물도 훨씬 뜻깊은 프리미엄 선물이 되었다.
매번 똑같은 팍팍하고 지루한 삶을 그저 버텨내기에도 벅찬 시대이다. 그렇다 보니 딱 자신만의 선을 그어서 그 이상 넘어가려고 하지도 않고 넘어오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선 밖의 세상은 이해하려 경험하려 하지 않는다. 딱 내가 보이는 만큼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숏컷을 하면 페미가 되고, 꽃을 배우면 남페미가 된다. 어떤 이미지와 행동을 규정하여 너는 한남, 너는 김치녀가 되어버리는 세상이다. 점점 더 이해가 사라지고 낭만이 없어지는 세상이 된 것 같아 조금은 슬픈 마음이 든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때로는 외부의 편견과 맞서야 하고 때로는 내면의 불안과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아주 약간의 용기를 내어, 내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를 접해본다면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뭐든 접해보고 입장이 되어봐야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너무 한쪽 세상에 매몰되기보다는 편견 없이 세상의 모든 다양한 것들을 몸으로 직접 받아들이고 흡수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런 낭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팍팍한 우리네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