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등산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등산을 왜 해? 갔다가 어차피 다시 내려올 거 의미 없다."
등산을 시작했다는 나에게 엄마가 했던 말이다. 엄마는 등산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을 효율성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등산만큼 비효율적인 활동이 있을까 싶다. 돈 쓰고 시간 쓰고 몸 힘들어가며 원점으로 다시 돌아올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마치 시시포스의 형벌을 받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등산은 일종의 형벌이다.
나는 돈을 내고, 모임에 굳이 가입을 해서, 주말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해서 형벌을 받으러 갔다. 납득할 만한 답을 찾아오겠다고, 바득바득 열이 난 상태였다. 산 아래에서 자기소개를 마치고, 준비운동을 한 후에 등산을 시작했다. 각자의 이유는 달랐겠지만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걸어 나갔다.
평소에 러닝이나 기계체조 등 운동을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등산은 별개였다. 시작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이었음에도 숨이 헐떡여서 맨 뒤로 처지게 되었다. 너무 땅만 보지 말고 가끔 고개를 들어 나무들과 경치도 바라보라는 모임 리더님의 얘기는 아득히 먼 얘기처럼 느껴졌다. 이름도 흔하디 흔한 앞 산일만큼 존재감 없던 산이 직접 올라보니 그렇게 가파를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런 산에게 평범한 이름을 줬을까? 새삼 이름이 주는 무게감을 떠올렸다.
올라가다 보니 거대한 돌탑이 보였다. 어떤 사람이 70년대부터 33년간 쌓아 올린 돌탑은 거대한 탑이 되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려시대 왕건이 견훤을 피해 숨었다는 동굴도 구경했다. 올라가는 동안 사소한 이런 이벤트들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내려올 땐 이름 모를 절도 있었는데 다 내려온 줄 알고 기뻐서 소리 질렀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왁자지껄했던 모임이 오르막이 점차 가팔라질수록 침묵으로 변했다. 그 침묵이 영원의 침묵으로 이어질까 싶었던 무렵, 드디어 전망대에 오르게 되었다. 너무 늦어버려 노을은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웅장했다. 새삼 감동이 밀려왔다. 저 조그마한 점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나, 그리고 너를 떠올렸다. 하나의 점이 되기 위해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이 가엽기도,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그 점들이 모여 아름다운 선을 만들고 있으니 그리 슬프지만은 않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고향이었다. 답답한 지방도시에서 썩고 싶지 않았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고 더 많은 곳들을 보고 싶었다. 한국도 좁아서 세계의 중심이라던 뉴욕에서도 살아보았다. 세상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나의 한계는 어디일까 시험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곳들을 거쳐 나는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집, 나의 도시. 그곳은 여전히 그대로 나를 안아주었고 아름다웠다. 고생했다고, 이제야 왔냐고, 10년을 기다렸다고 말없이 나를 다독여주었다.
긴 감상은 필요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잠깐 감상을 나누고는 다시 헤어졌다. 언제나 그랬다. 그런 점에서 고향은 부모님을 닮았다. 긴 대화를 하지는 않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아끼고 그리워하고 돌아가는 우리. 다시 내려와서 우리는 밥을 먹고 헤어졌다. 긴 대화는 없었지만 올라갈 때와는 전혀 다른 관계가 되어 있었다.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러나 똑같은 것도 없었다. 산은 언제나 그대로 있었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올라가느냐에 따라 산은 다른 의미를 준다. 답을 원하는 자에게는 답을 줄 것이요, 부정하는 자에게는 부정을 줄 것이다. 그러니 일단 올라가 보자. 어떤 의미를 줄지는 올라가 봐야만 알 수 있으니까.